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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창세기4장) 카인과 아벨 | 최초의 예배가 살인을 부른 이유

by 킹덤빌더 2025.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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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나님은 카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을까요?

거절감에서 시작된 분노와 질투, 그리고 '남 탓'이 어떻게 인류 최초의 살인으로 이어졌는지

창세기 4장을 통해 죄의 본질을 파헤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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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동료가 나보다 먼저 승진했을 때.

SNS에서 친구가 나보다 더 행복해 보일 때.

혹은, 누군가 나의 노력을 인정해 주지 않을 때.

우리는 '거절감'과 '열등감'을 느낍니다.
그런데 그다음 스텝은 무엇인가요? "내가 뭐가 부족했을까?"라고 스스로를 돌아보나요?
아니면, "저 사람은 운이 좋았을 뿐이야", "세상이 불공평해", "내 기분이 이렇게 더러운 건 다 저 사람 때문이야!"라며 남을 탓하고 분노하지는 않나요?

 

아담이 "저 여자 때문에"라며 시작했던 그 '남 탓'의 씨앗.

그것이 에덴 밖 첫 번째 가정에서 어떻게 '살인'이라는 끔찍한 열매를 맺게 되었는지, 오늘 창세기 4장,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에서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01. 최초의 예배, 최초의 분노

에덴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 그들에게 '가죽옷'이라는 은혜와 '땅의 저주'라는 현실이 공존하는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첫 아들 '카인'(농부)과 둘째 아들 '아벨'(목자)이 태어납니다.

시간이 흘러, 두 형제가 하나님께 '예배(제사)'를 드립니다.
카인은 땅의 소산(곡식)을,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을 드렸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카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창 4:4-5)`

하나님은 왜 카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을까요?
(성경은 훗날, 제물의 종류(곡식/양)가 아니라 "믿음으로 아벨은...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고 증언합니다. `(히 11:4)`)
즉, 이것은 '예배의 태도',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제였습니다.

'거절감'.
카인의 첫 반응은 '회개'나 '질문'("하나님, 제가 무엇을 잘못했나요?")이 아니었습니다.
`"카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창 4:5)`

그의 분노는 하나님이 아닌, '자신보다 나아 보이는' 아우 아벨을 향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카인에게 '먼저' 찾아오십니다.
이것은 심판이 아닌 '기회'였습니다.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경고였습니다.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창 4:6-7)`

하나님은 카인에게 '죄'가 지금 네 문(마음) 앞에 웅크린 '맹수'와 같다고 경고하셨습니다.
"그것에 잡아먹히지 말고, 네가 그것을 '다스리라!'"

하지만 카인은 그 '관계'의 손길을 거부합니다.
그는 '분노'를 다스리는 대신, '분노'를 행동으로 옮깁니다.
그는 들판에서 아우 아벨을 속여, 돌로 쳐 죽입니다.

인류 최초의 살인.
'남 탓'이 낳은 최악의 결과였습니다.

 

02. '경고'하시고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

우리는 이 비극 속에서 두 가지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첫째, 하나님은 '죄와 분리된 거룩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관계'를 원하시지만, 그 관계는 '거룩함'을 기반으로 합니다.
하나님은 제물의 종류가 아닌, 그 예배를 드리는 자의 '믿음'과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죄로 가득한 마음, 믿음 없는 예배는 하나님과 연결될 수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죄를 '받지 않으시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에 죄와 함께하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 글의 '가죽옷'(희생)을 붙잡아야 했고,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더 나은 제사)을 의지해서만 그분과의 거룩한 관계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 분'이십니다.
카인이 분노에 휩싸였을 때, 하나님은 그를 바로 심판하지 않으셨습니다.
"죄가 문 앞에 있다. 너는 다스릴 수 있다!"
하나님은 카인이 스스로 죄를 이기고 '관계'를 회복할 수 있도록 '경고'하시고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것은 3장에서 아담을 부르신 "네가 어디 있느냐?"는 질문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죄에 빠진 인간을 먼저 찾아오시고, 관계를 회복하기를 끝까지 기다리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용서를 계획하고 계셨습니다.

 

03.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카인의 모습에서 우리는 아담보다 훨씬 '심화된' 죄의 본성을 발견합니다.

▶  '남 탓'의 최종 진화: 방어에서 공격으로

 

아담의 '남 탓'은 "저 여자 때문에"라며 '숨는' 소극적, 방어적 죄였습니다.
하지만 카인의 '남 탓'은 다릅니다.

그는 자신의 제사가 거절당한 '근본 원인'(자신의 믿음 없음)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대신 "내 제사가 거절당한 것은, 하나님이 '저 녀석(아벨)'을 편애하기 때문이야!"라며 책임을 외부로 돌립니다.

 

나의 문제를 인정하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 나의 분노와 열등감을 '아벨'에게 투사합니다.

"저 녀석만 없으면, 내 문제가 해결될 거야."

아담의 '남 탓'이 '책임 회피'였다면, 카인의 '남 탓'은 '문제 제거(살인)'라는 적극적, 공격적 죄로 진화했습니다. 이것이 '남 탓'이 보여줄 수 있는 최악의 모습입니다.

▶ '관계'를 포기한 죄인의 선언문

 

살인 후, 하나님이 다시 카인에게 찾아오십니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창 4:9)`
이것 역시 "네가 어디 있느냐?"(창 3:9)와 같은,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관계적 질문이었습니다.

카인의 대답은 인류 역사상 가장 뻔뻔하고도 비극적인 대답입니다.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창 4:9)`

이 질문은 단순한 거짓말이 아닙니다.
이것은 **죄인의 공식 선언문**입니다.
"나는 그(아우)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나는 그에게 아무 책임이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남 탓'의 본질입니다.
'남 탓'은 "나는 당신과 관계를 끊겠다"는 선언이며, "나는 내 아우를 지키는 자가 아니다"라는 카인의 고백과 같습니다.

04. 결론

창세기 4장, 카인과 아벨 이야기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첫째, 죄의 본성은 가만히 있지 않고 반드시 '자라나고 심화'됩니다.
'불순종'(아담)은 '남 탓'으로, '남 탓'은 '질투와 분노'로, '분노'는 '살인'과 '관계의 완전한 포기'로 이어졌습니다.

둘째, '남 탓'은 죄가 내 문 앞에 엎드려 있다는 '경고 신호'입니다.만약 내가 누군가를 원망하고 있다면, 그것은 "저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내 안의 죄"를 다스려야 할 때라는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셋째, 하나님은 거룩하시기에 죄(믿음 없는 예배)를 받지 않으시지만, 죄인(카인)에게 먼저 찾아와 기회를 주시는 분입니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이 카인의 차가운 질문은 오늘 우리에게도 똑같이 들려옵니다.
우리는 가정에서, 직장에서, 공동체에서 어려움을 겪는 나의 '아우'를 향해 "그건 내 알 바 아니야"라고 선을 긋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내 안의 분노와 질투를 '남 탓'으로 돌리며, 가장 가까운 관계를 죽이고 있지는 않습니까?

'남 탓'을 멈추고 내 안의 죄를 직면할 때,
그리고 '내 힘'(카인의 제사)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가죽옷, 예수의 피)를 의지할 때,
우리는 비로소 '아우를 탓하는 자'에서 '아우를 지키는 자'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카인은 결국 땅에서 유리하는 자(방랑자)가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그에게도 '표'를 주어 보호하십니다.
죄는 카인의 후손들(라멕)을 통해 더욱 잔인해지지만, 하나님은 아담에게 '셋'이라는 새로운 아들을 주시며 '관계 회복'의 계보를 이어가십니다.

다음 이야기, "죽음의 행진과 생명의 계보 (카인의 후예들과 셋의 출생)"에서 만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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