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요병, 번아웃에 지쳤나요?
일은 본래 '사명'이었지만 '고역'이 되었습니다. 창세기 3장이 말하는 노동의 저주, 그리고 에덴에서 쫓겨난 것이 왜 '역설적 자비'였는지 그 비밀을 풀어봅니다.
일요일 저녁, TV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웃고 있지만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집니다.
"내일 또 출근이구나."
알람 소리에 억지로 몸을 일으키는 아침, 만원 지하철에 몸을 싣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지칩니다. 이른바 '월요병'입니다.
주 5일을 그렇게 버티고 나면, 우리는 녹초가 됩니다. '번아웃'이죠.
우리의 삶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일'.
우리는 왜 이 '일' 때문에 이토록 고통받고 소진되는 걸까요?
왜 '일'은 기쁨의 성취가 아니라, 버텨내야 할 '고역'이 되었을까요?
동시에, 우리는 아무리 성공하고 돈을 벌어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속 깊은 '공허함'을 느낍니다. 마치 정착하지 못하는 '실향민'처럼 말입니다.
창세기 3장은 이 두 가지 근본적인 고통, '고역스러운 일'과 '뿌리 뽑힌 공허함'의 기원을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01. "땅이 네게 가시덤불을 낼 것이라"

지난 이야기에서 우리는 '관계의 총체적 파괴'와 하나님의 '가죽옷' 은혜를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뱀과 하와에게 죄의 결과를 선고하셨습니다. 이제 아담의 차례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아다마)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창 3:17)`
이것은 충격적인 선고입니다.
아담(Adam)은 '흙(Adamah)'에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는 '땅'을 경작하고 지키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는 땅과 연결된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버리자(죄), 그가 발 딛고 일해야 할 '일의 터전(땅)'과의 관계마저 끊어진 것입니다.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창 3:17-18)`
'일' 자체가 저주가 된 것이 아닙니다.
'일의 터전'이 저주를 받아, 이제 '일'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방해, 경쟁, 무의미한 수고)와의 싸움이 되었습니다.
'기쁨의 사명'이었던 일은, 이제 '땀을 흘려야'(고통) 겨우 먹고사는 '생존을 위한 고역'으로 전락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선고가 이어집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창 3:19)`
'죽음'이 선포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야기가 끝나지 않습니다. 가장 비극적이고도 역설적인 장면이 남았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창 3:22)`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십니다(추방)'.
그리고 동산 동쪽에 '그룹들(천사들)'과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막아버리십니다.' (창 3:24)
하나님의 임재가 가득했던 '본향(에덴)'에서 쫓겨난 인류.
이제 그들은 저주받은 땅에서 '가시덤불'과 싸우며, '땀'을 흘리며,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02. '공의'로 심판하시고, '자비'로 막으시는 하나님
여기서 우리는 또다시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를 동시에, 그리고 아주 역설적으로 발견합니다.
▶ 공의: 깨어진 관계, 깨어진 터전
'일'은 본래 하나님의 창조에 동참하는 거룩한 '사명'이었습니다.
아담은 '이름을 짓는' 창조적 파트너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배신하자, 하나님은 그가 일해야 할 '터전(땅)'과의 관계가 깨어지는 '결과(저주)'를 공의롭게 선포하십니다.
뿌리(하나님)가 뽑히니, 줄기(인간관계)가 망가지고, 이제 잎사귀(일의 터전)마저 마르게 된 것입니다.
▶ 역설적 자비: 왜 생명나무를 막으셨는가?
하나님이 "그가 생명 나무 열매를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고 걱정하신 장면은, 얼핏 보면 '좋은 것(영생)'을 빼앗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심판처럼 보이는, 가장 큰 '자비'였습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만약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피해 '숨고',
서로를 '남 탓'하며 원망하고,
'가시덤불'과 싸우며 고통스럽게 일하고,
'번아웃'에 지쳐가는...
이 '죄로 오염된 상태' 그대로 생명나무 열매를 따먹고 '영원히 살게(영생)' 되었다면?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영원한 지옥'이었을 것입니다.
고통과 미움과 수고가 '영원히' 끝나지 않는 상태.
그것이야말로 최악의 저주입니다.
하나님은 그 최악의 시나리오를 '막으신' 것입니다.
그들을 에덴에서 '추방(격리)'시키시고, '생명나무'를 막으심으로써,
이 '죄의 상태'가 영원히 고정되는 것을 막으셨습니다.
'죽음'(흙으로 돌아감)이라는 '끝'을 설정하신 것은, 역설적으로 '새로운 시작'을 위한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첫 번째 아담'이 잃어버린 이 생명나무는,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에서 '두 번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회복됩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계 2:7)
하나님은 '추방'을 통해, 훗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완전한 회복과 진짜 영생'의 길을 열어두신 것입니다.
03. 고역'에 소진되고 '본향'을 그리워하는 인간
이 추방 사건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두 가지 근본적인 인간의 모습을 설명해 줍니다.
▶ '사명'이 '생존'이 될 때 : 번아웃(Burnout)
'일'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명'의 자리를 잃어버리자, 그것은 '먹고사는 생존 수단'으로 전락했습니다.
동시에 인간은 '일'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합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이다."
- 우리는 '일의 성과'로 나의 가치를 증명하려 합니다.
- 하지만 우리의 '일터(땅)'는 여전히 저주 아래 있습니다. '가시덤불과 엉겅퀴'(뜻대로 되지 않는 프로젝트, 방해하는 상사, 치열한 경쟁, 불의)가 가득합니다.
- 우리는 이 저주받은 땅과 싸우며 '땀을 흘리고', 결국 '소진(번아웃)'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 '월요병'은 '일' 자체가 싫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 빠진 일', '사명이 생존'이 되어버린 그 '고역'을 감당하기 힘든 우리의 영혼의 비명입니다.
▶ '본향'에서 쫓겨난 존재 : 실향민(Exile)
우리는 모두 '에덴(하나님의 임재)'에서 쫓겨난 아담의 후예입니다.
우리는 '영적 홈리스(Homeless)' 즉, '실향민'입니다.
- 파스칼은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는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빈 공간이 있다"고 했습니다.
- 우리가 아무리 많은 돈을 벌고, 성공을 하고, 쾌락을 즐겨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 깊은 곳의 '공허함'과 '근본적인 불안'.
- 그것은 우리가 '본향'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에덴'을, 즉 '하나님과의 완전한 관계'를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04. 결론
창세기 3장 후반부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첫째, '일' 자체가 저주가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면서 '일의 터전(땅)'이 저주를 받아, '기쁨의 사명'이 '생존의 고역(번아웃)'으로 변질된 것입니다.
둘째, '에덴에서의 추방'과 '죽음'은 끔찍한 심판인 동시에, '죄의 상태로 영원히 사는' 최악의 비극을 막으신 하나님의 '역설적 자비'였습니다.
하나님은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막으셨지만,
우리는 지난 글에서 그분이 이미 '가죽옷'(희생)과 '최초의 복음'(여자의 후손)을 통해 '관계 회복의 길'을 약속하셨음을 보았습니다.
지금 '일'에 소진되어 번아웃을 겪고 계시나요?
혹은 무엇을 성취해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 속에 계시나요?
그것은 우리가 '저주받은 땅'에서 '추방된 존재'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그 자리에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다시 '생명나무'로 인도할 새로운 길을 이미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에덴에서 쫓겨난 인류. 그들에게는 이제 '가죽옷'이라는 하나님의 은혜와 '땅의 저주'라는 현실이 함께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인류 최초의 '자녀'가 태어납니다.
하지만 이 첫 번째 가정에서, 인류 최초의 '살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다음 이야기, "내 아우가 어디 있느냐? : 최초의 예배, 그리고 최초의 살인자 (카인과 아벨)"에서 만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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