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창세기

(창세기 1~2장) 창세기 7일째 안식의 의미 | 하나님은 왜 쉬셨을까?

by 킹덤빌더 2025. 10. 21.
반응형

 

 

'열심히 일해야 쉴 수 있다'는 세상의 말에 지쳤나요?

성경은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하나님이 7일째 쉬신 이유, 그리고 인간의 첫날이 '쉼'이었던 이유를 통해, '일'이 아닌 '관계'에서 시작되는 삶의 비밀을 발견하길 소원합니다.

창세기 1~2장이 말하는 안식의 의미를 알아보겠습니다.

 

 

"번아웃", 혹시 삶의 순서를 거꾸로 살고 있진 않나요?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쉼은 노동의 달콤한 대가이다."

우리는 평생 이 말을 들으며 자랐습니다. '쉼'을 얻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하고, '성과'를 내야 하며, '자격'을 증명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우리는 쉬는 것에도 죄책감을 느낍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낭비'라고 생각하며 불안해합니다.

휴가 중에도 노트북을 켜고, 잠들기 직전까지 스마트폰으로 업무를 확인합니다.

그렇게 열심히 달려왔는데, 왜 우리의 마음은 '번아웃'이라는 붉은 경고등으로 가득 차 있을까요?

왜 쉬어도 쉰 것 같지 않고, '진짜 안식'에 대한 갈증은 더 깊어질까요?

 

혹시, 우리가 삶의 가장 근본적인 '순서'를 잘못 꿰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여기, 세상의 모든 자기계발서와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는 책이 있습니다. 바로 성경의 첫 페이지, 창세기 1장과 2장입니다.

이 이야기는 '쉼'이 우리가 땀 흘려 쟁취해야 할 '목표(Goal)'가 아니라, 우리의 모든 삶이 시작되는 '근원(Source)'이라고 충격적인 선포를 합니다.

01. 7일간의 완성과 멈춤

이야기는 '혼돈' 그 자체에서 시작합니다. 형태도 없고, 텅 비어 있으며, 깊은 어둠이 무질서하게 깔려 있습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창 1:2)


이 절망적인 무대 위로, 첫 번째 목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빛이 있으라!"


그 순간, 어둠과 빛이 나뉘고 '질서'가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6일 동안 이 무대를 디자인하십니다.


첫째, 둘째, 셋째 날은 '공간'을 만드십니다. 빛과 어둠을 나누시고, 하늘(궁창)과 바다를 나누시며, 마른 땅(뭍)을 드러나게 하십니다. 텅 비었던 무대에 뼈대가 세워집니다.


넷째, 다섯째 날은 그 '공간'을 채우십니다. 하늘에는 해와 달과 별들을 두어 시간의 질서를 만드시고, 바다에는 물고기를, 하늘에는 새들을 풀어놓아 생명으로 가득 채우십니다.

 

그리고 여섯째 날, 창조의 클라이맥스입니다. 땅 위에는 온갖 동물들이 그 종류대로 뛰놀게 하시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잠시 숨을 고르시며 가장 특별한 선언을 하십니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창 1:26)

 

하나님은 이전의 창조물처럼 '말씀'으로만 만드시지 않고, 흙으로 직접 빚으시고 그 코에 '생기(생명)'를 불어넣으십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담은 존재, 그분과 '관계'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탄생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만든 이 모든 세상을 바라보시며 마지막 감탄사를 내뱉으십니다.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창 1:31)

 

더 이상 추가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완벽한(Perfect) 상태. 완전한 조화, 완전한 선함, 완전한 질서. 모든 것이 그분의 의도대로 완성되었습니다.

 

그리고, 일곱째 날입니다.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창 2:2)

하나님은 '멈추셨습니다.' 히브리어로 '샤바트(שָׁבַת)', 즉 '하던 일을 그치다'입니다.

이것은 피곤해서 지쳐 쓰러진 '휴식'이 아닙니다. 이것은 모든 것이 완벽하게 끝났음을 선포하는 '주권적인 멈춤'입니다.

 

하나님은 이 멈춤의 날을 그냥 두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창 2:3)

'거룩하게 하셨다(카다쉬)'는 것은 '구별하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6일간의 '일하는 시간'과 7일째의 '멈추는 시간'을 완전히 구별하셨습니다.

왜일까요? 

도대체 왜, 전능하신 하나님께 '멈춤'이 필요했을까요? 왜 그 '멈춘 시간'을 '거룩하다'고까지 하셨을까요?

02. 일의 완성이자 관계의 시작

 

우리는 이 질문 앞에서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두 가지 오해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은 피곤해서 쉬신 것이 아닙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신" (사 40:28) 분이 하나님이라 증언합니다. 

그분의 쉼은 '에너지 고갈'의 결과가 아닙니다.

둘째, 하나님은 '일 중독'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영원히 창조를 계속하실 수도 있었지만, '완성'을 선포하시고 스스로 '멈추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7일에 쉬신(멈추신)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요?

▶ 첫째, '완벽한 완성'을 선포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쉼'은 그분의 '주권'을 상징합니다. "더 이상 손댈 것이 없다. 이것으로 완전하다." 6일간의 창조는 부족함이 없는 완벽한 상태였습니다.

이 '완성'의 선포는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줍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의 '기본값(Default)'은 '선함'과 '완벽함'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 완벽함은 이후 인간의 불순종으로 깨어지게 됩니다.)

둘째, '관계'를 시작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왜 6일 동안 완벽한 무대(세상)를 만드시고, 그 무대의 주인공(사람)을 창조하셨을까요? 그것은 '관계'를 맺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지은 '사람'과 인격적인 사랑을 나누기를 원하셨습니다.

6일 동안의 '일'은 이 '관계'라는 목적을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사람이 살 수 있는 모든 조건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일'이 끝났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시작되어야 할까요? 바로 창조의 목적인 '관계(교제)'입니다.

하나님이 7일째를 '거룩하게 구별하신'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날은 '일을 위한 날'이 아니라, 창조주와 피조물이 서로를 깊이 누리고 교제하는 '관계를 위한 날'로 따로 떼어놓으신 것입니다.

일(Work)이 6일 동안의 주제였다면, 관계(Relationship)와 누림(Enjoyment)이 7일째의 주제였습니다.

'쉼'은 곧 '관계의 회복'입니다.

 

이 창세기 2장의 '안식(샤바트)'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가 됩니다.

 

십계명 (출애굽기 20장):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명령하십니다.

왜일까요?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출 20:11)

즉, "너희는 일을 멈추고, 나(하나님)가 너희의 창조주이며 주권자임을 기억하고 나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날로 삼으라"는 명령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마태복음 11장): 이 안식의 개념은 예수님에게서 완성됩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일하지 않는 날'이라는 율법적 안식에 갇힌 사람들에게 이렇게 선포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

성경이 말하는 궁극적인 '쉼'은 '일의 중단'을 넘어,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 그 자체가 우리의 참된 안식입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일'이 아닌 '관계'에 관심이 있으셨습니다.

그분은 '관계'를 위해 멈추셨고, 그 멈춤의 시간으로 우리를 초대하셨습니다.

03. "인간의 첫날이 쉼이었던 충격적 이유" 

자, 이제 오늘 이야기의 가장 충격적인 반전이자 하이라이트입니다.

하나님은 6일째에 창조를 '마치셨고', 사람은 그 '6일째의 끝자락'에 만들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아담이 눈을 뜨고 맞이한 그의 생애 첫 번째 '온전한 하루'는 무슨 날이었을까요?

 

놀랍게도, 바로 하나님이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신' '일곱째 날', 즉 '안식의 날'이었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의미를 가집니다.

 

하나님은 '일'을 마치시고 '쉼(관계)'으로 들어가셨지만, 인간은 '쉼(관계)'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인간의 첫날은 '노동'이나 '성과'가 아니었습니다.

아담은 에덴동산을 경작하기도 전에 (창 2:15), 동물들의 이름을 짓기도 전에, 그가 태어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하나님이 완벽하게 차려놓으신 '쉼'과 '관계'의 식탁에 참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는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그 자체만으로, 창조주의 충만한 '안식(관계)'을 누릴 자격이 있었습니다.

▶ 왜 우리는 거꾸로 살고 있습니까?

 

이 창세기의 순서는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의 방식과 정확히 반대입니다.

창세기의 순서: [존재 → 쉼/관계 → 정체성 확립 → 일(사명)]

세상의 순서: [일/성과 → 가치/자격 획득 → 쉼(보상) → 존재 증명]

우리는 왜 이 순서를 거꾸로 살게 되었을까요?

 

'행위(Doing)'로 '존재(Being)'를 증명하려는 불안


현대 심리학, 특히 자기계발 분야는 '성과 중심주의'에 깊이 빠져 있습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이다 (I am what I do)."

"나는 나의 성과이다 (I am my achievement)."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무엇을 가졌는가'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려 합니다.

이것이 바로 '번아웃'의 근본적인 원인입니다.

 

성과가 잘 나오면 내 존재가 빛나는 것 같지만, 성과가 멈추거나 실패하면 내 존재 자체가 쓸모없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존재 불안'을 덮기 위해 우리는 멈추지 못하고 스스로를 '소진(Burnout)'시킵니다.

 

하지만 창세기는 말합니다. 너의 가치는 너의 '행위(Doing)'에 있지 않고, 너의 '존재(Being)'에 있다. 너는 이미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가치 있는 존재이며, 너의 시작은 '일'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쉼(관계)'이었다.

'경쟁'과 '비교'가 만든 '성실의 덫'

 

우리는 '과시적 성실(Hustle Culture)'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고, 남들보다 더 바쁘게 살아야 성공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쉼'은 '게으름'이나 '도태'로 여겨지기 쉽습니다.

 

이런 사회적 압력 속에서 우리는 '일'을 위한 '쉼'이 아닌, '쉼'조차 '더 잘 일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켜 버렸습니다.

하지만 창세기는 선포합니다. 

쉼은 일을 위한 수단이 아니다. 

오히려 쉼(하나님과의 관계) 그 자체가 우리의 정체성이며, 그 관계에서 흘러나오는 힘으로 '일(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2장 15절은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라고 말합니다. 

 

일(노동)은 죄의 결과로 주어진 '저주'가 아닙니다. 

죄가 들어오기 전에도 '경작하고 지키는' 사명(일)은 존재했습니다.

순서가 중요합니다.

'쉼(관계)' 안에서 정체성을 확인한 사람은, '일'을 자신을 증명하는 수단이 아니라 '세상을 돌보는 사명'으로 감당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인간 본연의 모습입니다.

결론

"기억하십시오. 당신의 시작은 '관계'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머리속에 창세기의 처음은 하나님의 전능하심, 말씀으로 창조하심이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전능하심에 있으니까요. 하지만 여기에 머문다면 도깨비방망이 하나님만 남게 됩니다.

 

창세기 1장과 2장을 통해 저에게 주신 하나님의 마음은

"너를 일만 하게 만든 존재가 아니란다"

"나와 관계를 맺자" 입니다. 

창세기는 단순한 책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확실히 나타나 있는 책입니다.

 

그러니 기억합시다.

 

첫째, 하나님이 7일에 쉬신(멈추신) 이유. 그것은 일이 완벽하게 '완성'되었음을 선포하시고, 창조의 목적인 '사람'과의 '관계'를 누리기 시작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둘째, 인간의 첫날이 쉼이었던 이유. 그것은 우리의 존재 가치와 모든 삶의 원동력이 '성과'나 '일'이 아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시작됨을 우리의 정체성으로 새기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기억합시다. 우리 인간에게는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가 모든 것의 시작입니다.

 

우리는 사랑받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쉴 자격을 얻기 위해 일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사랑받는 존재(관계)이기에 그 힘으로 일(사명)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안식을 쟁취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안식(관계) 안에서 평안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지금 혹시 '번아웃'으로 모든 것이 소진되었다고 느껴지십니까? '일'을 통해 무언가를 증명하려는 노력을 잠시 멈추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첫날, 하나님이 당신을 위해 준비해 두셨던 그 완벽한 '쉼'과 '관계'의 자리로 돌아가십시오. 당신의 진짜 삶은, 바로 그 '쉼'에서 다시 시작될 수 있습니다.

 


 

창세기의 다음 이야기는 이 완벽한 '쉼'과 '관계' 속에서 시작한 인간에게, 하나님은 단 하나의 '금지 명령'을 주시는 이야기 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억압하기 위함이었을까요, 아니면 진정한 자유를 주시기 위함이었을까요?

다음 이야기, "선악과가 꼭 필요했던 진짜 이유 (창세기 2장 16-17절)"에서 그 깊은 비밀을 묵상해 보겠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