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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창세기 3장) 하나님이 선악과를 만드신 진짜 이유 | 뱀의 유혹과 아담의 변명

by 킹덤빌더 2025.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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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이 먼저 시비를 걸었어요."
"팀장이 방향을 잘못 잡아서 프로젝트가 망했어요."
"환경이 이래서 제가 성공할 수가 없어요."

우리의 일상에서 '내 탓'이 아닌 '남 탓'을 하는 순간은 얼마나 많을까요?
실패와 잘못의 책임을 타인에게 돌리는 이 익숙한 '변명'.
우리는 왜 이렇게 방어적일까요?

놀랍게도, 이 '남 탓'의 습관은 인류의 역사와 그 시작을 함께합니다.
하나님께서 '쉼'으로 시작하게 하신 그 완벽했던 '관계'가 깨어지는 순간, 바로 에덴동산 중앙에 있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앞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창세기 3장은 단순히 '과일 하나 따먹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왜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는지(첫 번째 글에서 다룬 '관계'를 위해!),
그리고 우리가 왜 '너는 부족해'라는 거짓말에 그토록 쉽게 속는지,
마지막으로, 우리가 왜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고 '남 탓'을 하며 관계를 파괴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인류 최초의 보고서입니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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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완벽한 관계에 스며든 균열

지난 이야기에서 우리는 인간의 첫날이 '쉼'과 '관계'로 시작되었음을 보았습니다.

쉼이 있은 후 하나님은 아담에게 에덴을 '경작하고 지키는' 사명(일)을 주셨습니다.

심지어 모든 동물을 그에게 이끌어 오시며, 아담이 '무엇이라 부르는지' 보셨습니다. 아담이 부르는 것이 곧 그 동물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창 2:19-20)`.

이것은 단순한 명명(Naming)이 아니었습니다.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그 대상의 본질을 파악하고 통치권을 행사하는 행위, 즉 하나님의 '창조 행위'에 동참하는 어마어마한 권한의 위임이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였습니다.

이렇게 엄청난 자유와 '하나님을 대리하는' 권한을 누리던 아담에게,
하나님은 '단 하나의' 불가 행동을 명령하셨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창 2:17)`

이것은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 속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문제'에 대한 경고였습니다.
그것은 "나는 하나님인가, 아니면 하나님과 함께하는 존재인가?"라는 정체성의 문제였습니다.

이 '단 하나의 금지 명령'은 억압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너는 하나님이 아니다. 너는 나(하나님)와 함께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관계적 존재'이다"라는 것을 잊지 않게 하는 '관계의 마지노선'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누리되, 너와 나 사이의 이 '신뢰'의 선(Line)은 넘지 말아다오. 그것이 창조주와 피조물이 사랑으로 함께하는 관계의 약속이다."

그때, 가장 교활한 존재, 뱀(사탄)이 등장합니다.
뱀은 하와에게 다가가 아주 교묘한 질문을 던집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창 3:1)`

이 질문의 의도는 명확합니다.
아담이 누리던 그 엄청난 '권한(이름 짓기)'과 수천 가지의 '자유(YES)'는 지워버리고,
단 하나의 '마지노선(NO)'만 부각시키는 것입니다.
"너희 하나님, 되게 쪼잔하지 않아? 너희의 자유를 억압하고 관계를 통제하는 분 아니야?"

하와가 "아니, 다른 건 다 먹되 저것만 먹지 말래. 죽을까 하노라"라며 명령을 살짝 왜곡하며 대답하자,
뱀은 드디어 본색을 드러냅니다.
바로 인류 '최초의 마케팅'이 시작됩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창 3:4-5)`

이것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마케팅 슬로건이었습니다.
"너는 지금 부족해. 하지만 이 과일을 먹으면, 너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어!"
(즉, 더 이상 하나님과의 '관계'에 의존하지 않는 '독립된 존재'가 될 수 있어!)

하와는 그 말을 듣고 나무를 다시 바라봅니다.
전에는 그저 '관계의 마지노선'이었던 나무가,
'부족함을 채워줄 무언가'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창 3:6)`

결국 그녀는 손을 뻗습니다.
자신이 먹고, 함께 있던 아담에게도 줍니다. 아담도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먹습니다.

그 순간, 그들의 눈이 밝아졌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처럼 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벌거벗었음'을 깨닫습니다.
그들이 얻은 것은 '지혜'가 아니라 '수치심'과 '두려움'이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했던 '관계'가 깨어진 첫 번째 증상이었습니다.

그들은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몸을 가리고, 하나님의 '낯(얼굴)'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습니다. 관계가 깨지자 '숨는 것'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부르십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이것은 아담의 위치(Location)를 묻는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전지하신 하나님이 그것을 모르실 리 없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관계가 어디로 갔느냐?"는 상처받은 사랑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의 첫 번째 부르심이었습니다.

그리고 인류 '최초의 변명'이 시작됩니다.

아담: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여전히 관계의 핵심을 피합니다.)
하나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아담: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창 3:12)

아담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와를 탓합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이 주신" 그 여자라고 말하며, 책임을 하나님께까지 돌립니다.

하나님이 하와에게 묻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하와: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창 3:13)

하와 역시 뱀을 탓합니다.
완벽했던 에덴에서, '관계'로 시작했던 인류는,
스스로 '책임'을 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남 탓'의 현장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02. '선택하는 사랑'을 원하신 하나님

우리는 이 비극적인 이야기 앞에서 묻게 됩니다.
"하나님은 왜 선악과를 만드셨을까? 다 아시면서, 왜 '함정'을 두셨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선악과는 '함정'이 아니라 '사랑의 관계'를 위한 유일한 장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발견하는 하나님은, 우리가 첫 번째 글('쉼' 이야기)에서 보았듯, 오직 '인격적인 관계'만을 원하시는 분입니다.
만약 에덴동산에 '선악과'가 없었다면, 즉 'NO'라고 말할 선택지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도록' 프로그래밍된 로봇과 같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로봇청소기에게 "주인을 사랑하라"고 프로그래밍한들, 그것을 진짜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진정한 '사랑의 관계'는 '자유의지'를 전제로 합니다.
언제든 "NO"라고 거절할 수 있는 자유가 있을 때,
그때 비로소 "YES"라고 하는 순종이 '사랑'이라는 어마어마한 가치를 갖게 됩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로봇'을 원하신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로 하나님을 '선택하여 사랑하는' 아들과 딸을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관계'를 위해, 거절당할 '위험'을 스스로 감수하신 것입니다.
선악과는 그 인격적인 사랑을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장치였습니다.

성경 전체의 맥락에서 이 '선택'의 요구는 성경 전체를 관통합니다.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수 24:15)`고 외칩니다.
엘리야는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거리려느냐" `(왕상 18:21)`고 촉구합니다.

하나님은 한 번도 우리의 자유의지를 무시하고 강제로 사랑을 요구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분은 지금도 우리의 마음 문밖에서 '선택'을 기다리시는 `(계 3:20)` 인격적인 분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까지 '관계'를 원하십니다.

 

03. '거짓'에 속고 '관계'를 파괴하는 인간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죄에 빠진 인간의 두 가지 적나라한 본성을 발견합니다.
바로 '최초의 마케팅'과 '최초의 변명'입니다.

▶ "너는 부족해" - 최초의 마케팅에 속은 인간

 

뱀의 유혹, `"너희가... 하나님과 같이 되어..."`는 인류 최초이자 가장 성공적인 마케팅이었습니다.
이 마케팅의 핵심 전략은 '결핍 자극'입니다.

"너는 지금 이대로는 부족해. 너는 하나님의 통제(관계) 아래 있어.
하지만 이 제품(선악과)을 사면(먹으면), 너의 잠재력이 폭발할 거야.
너도 그들(하나님)처럼 될 수 있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필요 없어!)"

이것은 오늘날 모든 광고와 소셜 미디어(SNS)가 우리에게 속삭이는 말과 정확히 똑같습니다.

 

"이 명품 가방을 사야 너의 가치가 증명돼."
"이 차를 타야 성공한 사람으로 보여."
"SNS 속 저들처럼 멋진 몸매, 멋진 여행을 즐겨야 해. 넌 지금 부족해.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그분과의 '관계' 안에서 이미 주어진 완벽한 가치를 잊어버리고, 뱀(세상)이 제시하는 '다른 무엇'을 통해 나의 부족함을 채우려 합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하와의 모습은, '좋아요'를 갈망하며 끝없이 SNS를 새로고침하는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 "내 탓이 아니야" - 최초의 변명과 '관계 파괴'의 시작

 

죄를 지은 인간의 첫 번째 반응은 '회개'가 아닌 '숨는 것'과 '변명(남 탓)'이었습니다.

아담: "그 여자 탓입니다. (더 나아가) 그 여자를 주신 하나님 탓입니다."
하와: "저 뱀 탓입니다."

이것은 프로이트가 말한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 중 '투사(Projection)'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자신의 결점이나 실패를 인정하는 것은 자아(Ego)에 큰 고통을 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고통을 피하기 위해, 나의 잘못을 무의식적으로 외부(다른 사람, 환경)에 떠넘깁니다. 이것이 '남 탓'의 본질입니다.

 

'남 탓'은 당장의 고통은 피하게 해주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관계 회복')을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아담과 하와는 서로를 탓하며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를 스스로 깨뜨렸고, 동시에 서로(아담과 하와) 간의 수평적 관계 역시 파괴해 버렸습니다.

04. 결론

물론 이 이야기를 읽다 보면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면서 왜 이 일이 일어나도록 두셨는가?"라는 아주 중요하고도 깊은 신학적 질문(예정론과 자유의지 등)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 주제는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매우 중요하고 방대한 이야기이며, 앞으로 다른 이야기에서도 다룰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그 질문보다 '하나님이 왜 선악과를 두셨는가(관계의 설정)'와 '죄가 어떻게 시작되고 어떤 증상을 보이는가(관계의 파괴)'라는 핵심에만 먼저 집중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창세기 3장, 선악과 이야기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첫째, 선악과는 '함정'이 아니라, '로봇'이 아닌 '인격적인 사랑의 관계'를 나누기 위한 하나님의 '자유의지' 선물(초대)이었습니다. 또한,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이 아님을 기억하고 창조주와의 '관계' 안에 머물게 하는 '마지노선'이었습니다.

둘째, 죄의 본질은 '하나님처럼 되려는 교만'이며, 그 시작은 '너는 부족해'라는 뱀의 마케팅(거짓말)에 속아 넘어가는 것입니다.

셋째, 죄의 가장 즉각적인 증상은 '남 탓'입니다. 책임을 회피하고 서로를 비난하며 '관계'를 파괴하는 것, 이것이 아담과 하와로부터 이어진 우리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 질문은 "네가 왜 그런 짓을 했어?"라는 추궁이 아니라,
"네가 왜 나를 피해 그곳에 숨어 있느냐?"는 깨어진 '관계'에 대한 아픔이 담긴, 관계를 회복하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이었습니다.

그때 아담이 만약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먹었습니다"라고 '남 탓'이 아닌 '자신의 책임'을 인정했다면,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이 질문은 오늘 우리에게도 유효합니다.
우리는 지금도 삶의 문제 앞에서 '남 탓'을 하며 관계 밖으로 숨을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 앞으로 나아와 "제가 잘못했습니다"라고 솔직하게 책임을 인정하고 '관계'를 회복할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다음 글에는

'남 탓'으로 일관한 인류에게는 결국 심판(결과)이 주어집니다.
뱀과 여자, 그리고 남자(땅)에게 내려진 저주.
하지만 그 절망적인 심판 속에서, 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할 가장 놀라운 '첫 번째 복음'을 숨겨두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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