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죄가 가득한 세상을 보신 하나님의 첫 마음은 '진노'가 아닌 '슬픔'이었습니다.
'성을 쌓던' 카인의 길 끝에서, 하나님은 왜 '노아'를 미리 준비하셨을까요?
관계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왜 이토록 불안할까요?
안정적인 직장을 얻어도, 집을 사도, 자녀가 좋은 대학에 가도... 우리는 여전히 '다음'을 걱정합니다.
마치 '점'과 '점' 사이의 아슬아슬한 '선' 위를 걷는 것처럼, 내일 당장 닥칠지 모르는 위기에 전전긍긍합니다.
우리는 '한 치 앞도 못 보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 이야기의 '카인'처럼, 스스로 '성'을 쌓습니다.
더 많은 돈, 더 높은 지위, 더 견고한 인맥이라는 '성'.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인생은, 스스로의 '성'을 쌓으며 '끝(파멸)'을 향해 달려갈 수밖에 없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어떠실까요?
그분은 우리가 보는 '점'이 아니라, '인생 전체'라는 그림을 보십니다.
그리고 그 그림 속에서, 모든 것을 '예비'하고 '준비'하시는 분입니다.
오늘 '노아'의 이야기는, 그 하나님의 '준비하심'에 대한 가장 장엄한 이야기입니다.
01.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눈물

세상은 '카인의 길'로 완전히 뒤덮였습니다.
라멕이 노래했던 그 '폭력'이 온 땅을 덮었습니다(창 6:11, 원어로 '하마스').
사람들은 '성을 쌓는 것'에만 몰두할 뿐,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성경은 그 시대의 모습을 이렇게 진단합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창 6:5)`
죄는 이제 '행동'을 넘어, '마음의 모든 계획'까지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관계'를 위해 지음 받은 인간이, '관계 파괴'의 전문가가 되어버렸습니다.
이것을 보신 하나님의 첫 번째 반응은 '진노'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슬픔'이었습니다.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창 6:6)`
'한탄하다(Grieve)'... '마음에 근심하다(Heartbroken)'...
이것은 차가운 심판관의 언어가 아니라, 자식이 망가지는 것을 보는 아버지의 '마음 아파하심'입니다.
그토록 원했던 '관계'가 완전히 파괴된 것에 대한 깊은 슬픔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결단하십니다.
이 오염을 이대로 둘 수 없다.
창세기 1장의 '창조'를 되돌리는 '재창조(De-creation)', 즉 홍수를 통해 이 세상을 '정화(Cleaning)'하시기로 말입니다.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입니다.
인류의 '선'은 '끝'을 향해 달려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점'이 아닌 '전체 그림'을 보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창 6:8)`
02. '준비'하시고 '관계'를 이어가시는 하나님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발견합니다.
첫째, 하나님은 '슬퍼하시는'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그분은 인간의 타락을 무감각하게 바라보지 않으십니다. '관계'가 깨어진 것을 누구보다 '마음 아파하십니다.'
그분의 심판은 '분노의 폭발'이 아니라, 이 오염된 관계를 '리셋'하고 새롭게 시작하기 위한 고통스러운 외과수술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예비하고 준비하시는' 분이십니다.
인간들이 '카인의 길'을 선택하며 스스로 '성'을 쌓고 파멸로 달려갈 때, 하나님은 그들을 멍하니 보고만 계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노아'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노아는 '셋의 계보', 즉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던' 그 관계의 길을 걷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창 6:9).
온 세상이 '성을 쌓는' 일에 미쳐있을 때, 노아는 세상의 눈에 '멍청해 보일지라도' 묵묵히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켜왔던 것입니다.
- 하나님은 언제나 '관계'를 이어갈 '남은 자(Remnant)'를 준비하십니다.
- 타락한 세상 속에서 '노아'를 준비하셨고,
- 우상숭배의 도시에서 '아브라함'을 준비하셨으며,
- 노예가 된 민족 중에서 '모세'를 준비하셨고,
- 죄로 가득한 인류를 위해,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를 준비하셨습니다.
- 하나님은 '관계'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03. '성을 쌓는' 인생 vs '방주를 짓는' 인생
카인과 노아의 모습은 '관계'가 끊어진 인간과 '관계'를 잇는 인간의 모습을 극명하게 대조합니다.
▶ '성을 쌓는' 인생 (카인의 길)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인생은, '불안'합니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고 외쳤던 카인은, 반대로 "남들이 나를 죽일까 봐"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보호(표)'를 믿지 못하고, 자신의 '성'을 쌓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없는 인간'의 실존입니다.
'남 탓'과 '경쟁' 속에서 타인을 '지옥'으로 여기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더 높은 '성(돈, 권력, 지위)'을 쌓아 올립니다.
하지만 이 길은 결국 '끝으로 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더 큰 폭력(라멕)과 심판(홍수)이 기다릴 뿐입니다.
▶ . '방주를 짓는' 인생 (노아의 길)
'하나님과의 관계'를 잇는 인생(노아)은 다릅니다.
그는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방주를 지으라"고 하셨을 때, 이것은 세상의 눈으로 볼 때 가장 '멍청한' 짓이었습니다.
맑은 날에 산꼭대기에서 거대한 배를 짓는 모습. 얼마나 많은 조롱을 받았을까요?
- 노아는 '세상의 평가(불안)'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관계)'에 순종했습니다.
- 그는 '자신을 위한 성'을 쌓지 않고, '하나님이 설계하신 방주'를 지었습니다.
- 방주(Ark)는 노아의 '업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구체화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설계하시고(6:14), 하나님이 직접 그 문을 닫으셨습니다(7:16).
- 노아의 '순종'은 그 '은혜'에 탑승하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04. 결론
창세기 6장, 노아 이야기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첫째, 홍수 심판의 시작은 하나님의 '진노'가 아니라, '관계 파괴'에 대한 '마음 아파하심(슬픔)'이었습니다.
둘째, 인간은 '점'만 보며 불안에 떨지만, 하나님은 '전체 그림'을 보시며 '관계'를 이어갈 '노아'를 미리 '준비'하십니다.
셋째, '관계가 끊어진 인생'(카인)은 불안해서 '자신만의 성'을 쌓다가 파멸에 이르지만, '관계를 잇는 인생'(노아)은 세상이 멍청하다 해도 '하나님의 방주'를 지어 구원에 이릅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짓고 있습니까?
'남 탓'과 '경쟁'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불안에 떨며 '나만의 성'을 더 높이 쌓고 있습니까?
아니면, 세상이 조롱하더라도 묵묵히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분이 설계하신 '방주'에 오르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오늘도, 이 타락한 세상 속에서 '동행'할 자들을 찾으시며, 그들을 '준비'시키고 계십니다.
심판이 끝나고, 노아는 방주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무지개'라는 놀라운 '관계의 약속'을 주십니다.
하지만, 그 위대한 믿음의 사람 노아조차도, 포도주에 취해 '수치'를 드러내는 연약한 인간이었습니다.
다음 이야기,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 : 무지개 언약과 노아의 실수 (창세기 9장)"에서 만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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