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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창세기 10장~11장) 하나님께서 바벨탑을 무너뜨린 이유

by 킹덤빌더 2025.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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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카인의 길은 돌이키지 못했을까요? 

인간은 환경에 지배당하기 때문입니다. 

바벨탑은 '죄의 환경'이 만든 비극입니다. 

오늘 창세기 10장~11장에서는 '나 홀로 신앙'이 위험한 이유와 교회의 중요성을 발견합니다.

 

 

"저는 그냥 혼자 조용히 믿고 싶어요."
"요즘 세상에 믿을 만한 교회(공동체)도 없는데, 그냥 '나 홀로 신앙'하면 안 되나요?"

우리는 '개인'의 자유가 그 무엇보다 중요해진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공동체'나 '환경'에 묶이는 것을 답답하게 여깁니다.

하지만 성경은 '믿음'이 '나 홀로' 가능하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오늘 창세기 10장(족보들)11장(바벨탑)의 이야기는, '믿음의 가정'과 '죄의 환경'이 한 사람의 운명을 어떻게 결정짓는지, 그리고 '나 홀로 신앙'이 왜 바벨탑을 쌓는 길로 이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강력한 경고입니다.

01. 죄의 환경'이 만든 거대한 탑

창세기 10장은 노아의 세 아들(셈, 함, 야벳)이 어떻게 온 땅으로 퍼져나갔는지 보여주는 '민족의 지도'입니다.

성경은 유독 '함'의 족보를 자세히 다루며, 그의 후손 '니므롯'을 주목합니다. 

그는 "세상에 첫 용사"였고, '바벨(바빌론)'에서 그의 왕국이 시작되었습니다 (창 10:8-10).

그리고 11장, 이 '함의 후예'들이 주축이 된 인류가 '시날 평지'에 모입니다.

그들은 '흩어짐'(하나님의 명령)을 '두려워'했습니다. (카인이 '성'을 쌓았던 그 불안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외칩니다.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창 11:4)`

 

이것은 '카인의 길'의 완성이었습니다.

 

1. "우리의 이름을 내자":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던(셋) 겸손이 아닌, '스스로의 업적'을 높이려는 교만(라멕).

2. "흩어짐을 면하자": '땅에 충만하라'(창 9:1)는 하나님의 '명령'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불순종.

이것이 '함의 계보'라는 '죄의 환경'이 만들어낸 필연적인 결과였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내려오셔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바벨)'하게 하십니다.
'하나님 없는 연합'은 더 큰 죄(홍수 직전)로 치닫는 '가속페달'이었기에, 하나님은 그들을 '흩으심'으로써 그 파멸을 막으십니다.

02.  '환경'을 보존하시고 '관계'를 준비하시는 하나님

왜 카인의 길(함의 족보)은 중간에 돌이키지 못했을까요?
하나님의 '택하심'(예정설)이라는 신비도 있지만, 동시에 성경은 아주 현실적인 답을 줍니다.

인간은 '환경'에 지배당하기 때문입니다.

 

'니므롯'과 '바벨'이라는, '우리 이름을 내자'고 외치는 '죄의 환경' 속에서 "아니,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야 해"라고 외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일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합니다.

첫째, 하나님은 '죄의 환경'을 흩으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없는 연합'이 얼마나 위험한지 아셨기에, 그들을 '강제로' 흩으셨습니다(심판이자 자비).

둘째, 하나님은 '믿음의 환경'을 보존하십니다.
하나님은 바벨탑의 혼돈 속에서 모든 것을 끝내지 않으셨습니다.
11장 후반부는 이 '혼돈(바벨)'의 이야기와 극명하게 대조되는 '셈의 족보'를 다시 길게 보여줍니다.
'죄의 환경'이 아닌, '관계의 환경'을 보존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관계할 자들'을 미리 준비하시되, 그들을 '믿음의 가정'이라는 '환경' 속에서 지키고 부르십니다.
이것이 '바벨(혼돈)'의 족보가 아닌 '셈(관계)'의 족보 끝에서, 마침내 '아브람'이라는 한 사람이 등장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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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나 홀로 신앙" vs "믿음의 가정"

바벨탑 사건과 두 족보는 '환경'의 중요성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 카인/함/바벨의 길

 

카인/함/바벨의 길은 겉으로 좋아보이지만 하나님과 멀어져 자신의 성을 쌓은 죄의 길입니다.

  •  "우리 이름을 내자." (교만)
  •  "흩어짐을 면하자." (불안, 불순종)
  • 이 환경의 특징은 '하나님 없는 자기 의'입니다. 이 환경 속에서는 '함께' 죄를 짓고, '함께'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 셋/셈/아브람의 길

 

셋/셈/아브람의 길은 세상의 눈으로 볼 때 답답한 삶을 사는 것과 같이 보이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신 믿음의 길입니다.

  •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 이 환경의 특징은 '죽음'의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붙잡는 것입니다.

 

이 두 길을 봤을 때 결국 내가 하나님의 택함 받은 인생인지 아닌지를 보려면, 결국 내 주변이 어떠한 환경인가를 보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인생은 그 주변의 사람들과 환경도 하나님께 묶여 있고, 하나님이 끌고 가심을 알 수 있습니다.

▶ 교회의 중요성

 

  • 우리는 '바벨'의 가치관(더 높이, 더 많이, 내 이름)이 지배하는 세상 속에 살고 있습니다.
  • 이런 환경 속에서 '나 홀로 신앙'을 지키겠다는 것은, 마치 시날 평지 한복판에서 "나는 탑을 쌓지 않겠다"고 버티는 것과 같습니다. 언젠가는 휩쓸려가게 됩니다.
  • 이것이 '교회'(믿음의 공동체, 믿음의 가정)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교회는 '바벨'의 가치관이 아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환경'이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 결국 여기서도, 하나님과의 관계(수직)와 주변 사람(공동체)과의 관계(수평)가 바로 서야 함을 볼 수 있습니다.

 

04. 결론

창세기 10-11장의 핵심은 '환경'과 '선택'입니다.

첫째, '죄의 환경'(바벨)은 개인의 믿음을 무너뜨립니다.
"우리 이름을 내자"는 교만과 "흩어지지 말자"는 불안은, '하나님 없는 연합'을 만들어내고 결국 심판에 이릅니다.

둘째, '믿음의 환경'(셈의 족보)은 한 사람을 준비시킵니다.
하나님은 '관계'를 이어갈 '믿음의 가정'을 보존하시고, 그 환경 속에서 마침내 '아브람'을 부르십니다.

셋째, '나 홀로 신앙'은 위험합니다.
우리는 '바벨'의 가치관에 저항할 수 있는 '믿음의 공동체(교회)'라는 환경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이름을 내자"며 스스로 높아지려던 바벨탑을 무너뜨리셨습니다.
그리고 '셈의 족보' 끝에 있던 '아브람'이라는 한 사람을 부르시며, 정반대의 약속을 하십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창 12:2)

우리는 '스스로' 우리의 이름을 높이려 할 것입니까? (바벨)
아니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름을 높여주실 것을 신뢰하며 그분과의 '관계'를 선택할 것입니까? (아브람)

 


'바벨'의 혼돈 속에서, 하나님은 '셈의 후손'인 '아브람'이라는 한 사람을 부르십니다.
인류의 역사가 '집단'에서 '한 개인'에게로 초점이 옮겨지는 위대한 순간입니다.

다음 이야기,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 부르심을 받은 한 사람, 아브라함 (창세기 12장)"에서 만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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