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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창세기 12장) 영적 민감성과 무모한 순종

by 킹덤빌더 2025.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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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탑의 '우리 시간' 속에서, 아브라함은 어떻게 하나님의 '특별한 때(Kairos)'를 인지했을까요?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의 특징인 '영적 민감성'과, 노아처럼 '무모해 보이는' 순종의 비밀을 발견합니다.

 

 

우리도 매일 달력을 보며 살아갑니다. (Chronos, 흘러가는 시간)
출근 시간, 점심시간, 퇴근 시간, 주말...
그런데 문득, 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지금이다!"라는 강렬한 '어떤 때'를 느낄 때가 있지 않습니까?

"지금 이직해야 해."
"지금 이 사람과 결혼해야 해."
"지금이 바로 그 때야."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시간'(Kairos, 특별한 의미의 시간)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이 '영적 민감성'입니다.
그들은 '그냥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 하나님의 Kairos를 인지합니다.

지난 이야기에서 '우리(인간)의 시간'에 갇혀 '바벨탑'을 쌓던 세상.
그 혼돈 속에서, 하나님은 어떻게 당신의 Kairos를 한 남자에게 알리셨을까요?

01. '바벨의 시간'을 멈춘 '하나님의 시간'

세상은 '바벨'의 가치관으로 분주합니다.
"우리의 이름을 내자! 흩어짐을 면하자!"
모두가 '나의 시간'(Chronos) 속에서 '나의 성'을 쌓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그 혼돈의 중심, '갈대아 우르'(바벨론 문명권)에 '셈의 족보'를 잇는 한 남자, '아브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우리가 지난 글에서 보았듯, 하나님께서 '믿음의 환경' 속에서 미리 '준비'하고 '조성'하신 사람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시간'(Kairos)이 그의 삶에 '침투'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일방적으로' 찾아오십니다.

`"너는 너의 본토와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창 12:1)`

이것은 '제안'이 아니었습니다. '명령'이었습니다.
그가 의지하던 모든 '안전망'(본토, 친척, 아비 집)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75세의 노인에게, 목적지도 알려주지 않은 채 '떠나라'는 것.
이것은 세상의 눈으로 볼 때, 홍수 전에 산에서 배를 짓던 노아의 행동만큼이나 '무모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람의 반응은 놀랍습니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창 12:4)`

그는 '토를 달지 않고' 떠납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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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환경'을 조성하시고 '때'를 알리시는 하나님

아브라함은 '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는 것을.
이것이 바로 '영적 민감성'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 Kairos를 알아챌 수 있도록 '준비'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계획 안에서 '택하신 사람'을 부르실 때, 그 주변 환경까지도 조성하십니다.
아브람은 '바벨'의 환경이 아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던 '셈의 족보'(믿음의 환경) 속에서 자라났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음성'에 반응하도록 훈련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바벨'과는 정반대의 약속을 하십니다.

- 바벨: "우리가 우리 이름을 내자!" (실패)
- 아브람: "내가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겠다!" (창 12:2) (성취)

하나님은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흩어진 바벨'을 다시 '관계' 안으로 모으시려는 하나님의 큰 그림이, '한 사람'의 '영적 민감성'을 통해 시작된 것입니다.

 

03. '민감한' 사람 vs '웃는' 사람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영적으로 민감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민감성'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으며, 심지어 가장 가까운 '믿음의 가정' 안에서도 차이가 납니다.

▶ 아브라함 (Kairos에 순종하다)

 

그는 '본토, 친척, 아비 집'이라는 '눈에 보이는 안전'(바벨의 가치)을 버렸습니다.
대신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안전'(믿음)을 택했습니다.
그는 가나안 땅에 도착하자마자 '성'을 쌓지 않고,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창 12:8)
그가 '셋의 계보'임이, '믿음의 환경'에서 자란 사람임이 증명되는 순간입니다.

▶ 사라 (Chronos에 갇히다)

 

이 영적 민감성은 심지어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에게도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훗날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시겠다'는 Kairos의 약속을 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믿었지만' (창 15장),
사라는 '웃었습니다.' (창 18장)

사라의 웃음은 '기쁨'이 아닌 '비웃음'이었습니다.
"내가 늙었고 내 남편도 늙었는데, 어떻게?"
그녀는 하나님의 '특별한 때'(Kairos)를 믿지 못하고, 자신의 '흘러가는 시간'(Chronos, 생물학적 시간)에 갇혀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가정' 안에서도 '개인적 관계'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지난 9장 이야기와 연결)
하나님의 은혜는 '환경'을 통해 주어지지만, 그 은혜에 반응하는 것은 '각자의 민감성'에 달려있습니다.

04. 결론

창세기 12장, 아브라함의 부르심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첫째, '바벨탑'(우리의 이름)이 무너진 곳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내가 네 이름)이라는 '관계의 한 사람'을 통해 다시 일하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관계할 자'를 부르실 때, 그가 반응할 수 있도록 '믿음의 환경'(셈의 족보)을 미리 '조성'하십니다.

셋째,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의 특징은 '영적 민감성'입니다.
그들은 세상의 '흘러가는 시간'(Chronos) 속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때'(Kairos)를 인지합니다.

넷째, 이 '인지'는 세상이 볼 때 '무모한 순종'(노아의 방주, 아브람의 이주)으로 나타납니다.
그것은 '무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보았기에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순종'입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시간을 살고 있습니까?
여전히 '바벨'의 가치관을 따라 '나의 시간'(Chronos) 속에서 '내 성'을 쌓는 데 분주합니까?
아니면, 나의 '안전망'을 버리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Kairos)에 민감하게 귀 기울이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무모한' 약속을 따라나선 아브라함.
하지만 그 위대한 믿음의 첫걸음 직후, '기근'이라는 현실적인 위기가 닥칩니다.
그리고 그는, 그 위기 앞에서 '믿음의 조상'답지 않은 치명적인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다음 이야기, "그가 아내를 '누이'라 하였으니" : 약속의 사람, 아브라함의 첫 번째 실패 (창세기 12장 후반)"에서 만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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