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믿음은 결국 개인의 고백입니다."
12장의 실패를 '경험한' 아브람은 13장에서 왜 양보했을까요?
그저 '관찰만 한' 롯은 왜 '애굽 같은' 소돔을 택했을까요?
두 사람의 갈림길을 통해 욥의 고백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듣는 것'만으로는 진짜 '내 것'이 되지 않는 경험을 하곤 합니다.
"주식 투자, 그렇게 하면 안 돼"라는 말을 100번 듣는 것보다, 내가 '직접' 투자했다가 처절하게 실패해 보는 '경험' 한 번이 더 뼈아프게 남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지만, 결국 '개인의 신앙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욥이 모든 고난을 통과한 후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 42:5)라고 고백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지난 12장, 아브람은 '기근' 앞에서 '나의 꾀(작은 촛불)'를 냈다가 아내를 잃을 뻔하는 처절한 '실패'와, 그럼에도 '하나님의 자비(큰 불빛)'가 개입해 자신을 구원하고 '재물'까지 얻게 하시는 과정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영적인 민감성이 뛰어났던 아브람은 하나님과 함께 하심을 알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조카 롯은 어땠을까요?
그는 이 모든 과정을 '관찰'했을 뿐입니다.
오늘 13장은, 이 '경험한 자'와 '관찰한 자'가 갈림길에 섰을 때, 얼마나 다른 선택을 하는지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01. 같은 재물, 다른 선택

아브람은 12장의 실패와 함께 얻은 '막대한 재물'을 가지고 조카 롯과 함께 약속의 땅(벧엘)으로 돌아옵니다. (창 13:1-4)
그가 돌아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이전에 쌓았던 '제단'을 찾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것입니다. (실패를 통한 회개, 관계의 회복)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그들의 '재물'이 너무 많아져, 땅이 그들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창 13:6)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애굽의 재물'이 '관계의 갈등'의 원인이 된 것입니다.
롯(관찰한 자)에게: 이 재물은 '삼촌의 성공 신화', '애굽의 풍요'였습니다.
아브람(경험한 자)에게: 이 재물은 '실패의 증거물', '하나님의 아슬아슬했던 자비'였습니다.
목자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납니다.
이때, 아브람이 12장에서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그는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관계'를 선택합니다.
"우리는 한 친족이라...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창 13:8-9)
어떻게 이런 '초월적인 양보'가 가능했을까요?
그는 '애굽(세상)'이 얼마나 위험한지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 '애굽 같은 땅'은 '작은 촛불'에 불과함을 깨달았기에, 미련 없이 롯에게 넘겨줄 수 있었습니다.
그는 '큰 불빛'(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한 것입니다.
이제 롯의 차례입니다.
'직접 경험하지 못한 신앙'은 '세상적 좋아 보임'을 만났을 때 무너집니다.
어쩌면 롯은 아브람과 함께 한 잘못된 경험으로, 자신은 더 큰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는 사람의 마음의 불안함으로 재산을 지키기 위해 성을 찾아갔을 수도 있죠
어찌 되었든 성경은 아래와 같이 표현합니다.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창 13:10)
롯의 선택 기준은 명확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아닌, '눈에 보이는 풍요'. 그가 기준으로 삼은 '애굽 땅'.
그것은 바로 아브람이 12장에서 처절하게 실패하고 도망쳐 나온, 그 '작은 촛불'의 땅이었습니다.
롯은 그 '애굽 같은' 땅을 택해, '소돔'을 향해 떠나갑니다. '관찰만 한' 믿음은 결국 '세상적 좋아 보임'에 무너진 것입니다.
02. '개인의 고백'에 '개인적으로' 응답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이 갈등의 순간에 '개입'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아브람이 12장의 '경험'을 '고백'으로 살아내는지 '기다리십니다.'
아브람이 '애굽 같은 땅'(작은 촛불)을 미련 없이 포기하고 '개인적 신앙 고백'(양보)을 했을 때.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창 13:14)
하나님이 비로소 아브람에게 '다시', 그리고 '개인적으로' 나타나십니다.
그의 '고백'에 '응답'하신 것입니다.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창 13:14-15)
아브람은 '가장 좋은 부분(애굽 같은 땅)'을 포기했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눈에 보이는 모든 땅'을 약속하십니다.
믿음은 결국 '개인의 고백'입니다.
그리고 그 개인의 고백이 모두를 살리는 공동체의 복으로 내려옵니다.
03. '실패'를 '경험'해야 하는 이유
아브람과 롯은 '믿음'이 어떻게 '내 것'이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롯 (관찰자의 한계):
그는 삼촌의 하나님을 '귀로만 들었습니다.'
그는 아브람의 '실패'도, '자비'도 '관찰'만 했습니다. 그에게는 '나의 경험'이 아니었습니다.
'직접 경험하지 못한 믿음'은 위기(갈등)가 오자, '하나님의 약속'이 아닌 '세상적 유익(좋아 보임)'을 택합니다.
아브람 (경험자의 성숙):
그는 12장의 '실패'를 통해 '애굽(세상)'이 얼마나 위험한지 '직접 경험'했습니다.
그 '실패의 경험'이 있었기에, '애굽 같은 땅'의 유혹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경험된 믿음'은 '관계(평화)'를 위해 '권리(좋은 땅)'를 양보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모든 신앙인은 들음에서 나지만, 실제로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경험을 해 봐야 하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12장의 '실패'가, 13장의 '성숙'을 위해 하나님이 허락하신 가장 강력한 '신앙 경험'일 수 있습니다.
04. 결론
창세기 13장, 아브람과 롯의 갈림길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첫째, '믿음'은 공동체로 '관찰'될 수 있지만, 결국 '개인의 경험'이자 '고백'입니다.
둘째, '직접 경험하지 못한 신앙'(롯)은 '세상적 좋아 보임'(애굽 같은 땅)의 유혹 앞에서 무너집니다.
셋째, 때로는 '처절한 실패의 경험'(아브람의 12장)이, '세상을 이기는 믿음'(아브람의 13장 양보)을 위한 가장 강력한 '백신'이 될 수 있습니다.
'관찰'만 한 롯은 '좋아 보이는' 소돔으로 갔고, '실패를 경험'한 아브람은 '모든 땅'을 약속받았습니다.
우리는 지금 '관찰자'의 자리에 머물러 있습니까?
아니면 '실패'를 통해서라도 하나님을 '경험'하며 '나의 고백'을 쌓아가고 있습니까?
'애굽 같은 땅' 소돔을 향해 떠난 롯. 그 '안전해 보이던' 선택은, 그를 인류 최초의 '국제 전쟁' 한복판으로 밀어 넣습니다.
그리고 아브람은 '자신을 떠난' 롯을 구하기 위해 '믿음의 군대'를 일으킵니다.
다음 이야기, "조카 롯이 사로잡혔음을 듣고..." : 아브람의 전쟁과 미스터리한 왕 '멜기세덱' (창세기 14장)"에서 만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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