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명이 발달할수록 하나님과의 경험은 무뎌집니다.
화려한 도시를 기웃거린 디나, 하나님께 묻지 않고 복수한 아들들. '하나님이 함께하고 싶어 하시는' 마음을 외면하고 '순서'를 잊었을 때 벌어진 비극을 묵상합니다.
우리는 편리하고 화려한 세상을 살아갑니다.
하지만 문명이 발달하고 내 삶이 안정될수록, 이상하게도 하나님과의 생생했던 경험은 점점 무뎌집니다.
과거의 '한 번의 경험'만으로는 평생을 살 수 없는데 말입니다.
신앙의 핵심은 '매일' 하나님께 묻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하셨던 것처럼, 광야에서 구름기둥이 멈추면 서고, 떠오르면 갔던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보여주심'을 기다렸다가 나가는 '순서'를 지켜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고 싶어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 창세기 34장의 야곱과 그의 자녀들은, 이 '함께하고 싶은 마음'을 외면하고, '화려한 도시'의 유혹에 눈을 돌립니다.
01. 화려함이 주는 유혹

브니엘의 아침을 맞았던 야곱. 형 에서와 화해한 후, 그는 '벧엘(하나님의 집)'로 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눈에 보기에 좋고 편안한 '세겜 성' 앞에 장막을 치고, 돈을 주고 땅을 사서 '정착'해 버립니다. (창 33:18-19)
하나님께 "여기에 머물러도 됩니까?"라고 묻지 않았습니다.
그 영적 긴장감이 풀린 틈을 타, 딸 디나가 움직입니다.
"레아가 야곱에게 낳은 딸 디나가 그 땅의 딸들을 보러 나갔더니..." (창 34:1)
그녀는 왜 나갔을까요?
세겜 성은 화려했습니다.
문명이 발달한 도시였습니다.
그녀는 그곳 여자들이 어떻게 사는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장신구를 하는지 '궁금'했습니다.
이것은 에덴동산의 하와를 유혹했던 뱀의 목소리와 같습니다.
"저 화려함이 너를 더 행복하게 해 줄 거야. 저곳에 네가 모르는 즐거움이 있어."
믿는 사람이라도 '하나님께 묻지 않고' 세상의 화려함을 기웃거릴 때, 우리는 무방비 상태로 노출됩니다.
결국 디나는 그 땅의 추장 세겜에게 끔찍한 일을 당합니다.
'화려함'이 그녀를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02. 묻지 않는 아버지, 잔인해진 아들들

이 끔찍한 비극 앞에서도, 아무도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야곱 (침묵하는 아버지):
딸의 소식을 듣고도, 아들들이 올 때까지 '잠잠'합니다.
그는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해야 내 안전이 보장될까?'를 계산하며 '하나님 없는 사람'처럼 행동합니다.
시므온과 레위 (복수하는 아들들): 그들은 분노했습니다.
하지만 그들도 하나님께 심판을 맡기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할례'라는 거룩한 언약의 표징을, 살인을 위한 '속임수의 도구'로 사용합니다.
그들은 세겜 성의 남자들을 속여 할례를 받게 하고, 가장 고통스러울 때 칼을 들고 들어가 몰살시킵니다.
그리고 성을 약탈합니다.
순서가 틀리니, 믿음의 자녀들이 세상 사람들보다 더 악랄해졌습니다.
하나님이 없으면, 인간은 본능(분노, 욕심)대로 움직일 뿐입니다.
03.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고 싶어' 하십니다

이 장에서 하나님은 철저히 '침묵'하십니다.
왜냐하면 야곱의 가족 중 누구도 하나님께 말을 걸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침묵은 '방관'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아, 여기가 내가 있을 곳이 아니구나!"라는 것을 깨닫기를 기다리셨습니다.
성경 전반에 걸쳐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마음은 분명합니다.
"나는 너와 함께하고 싶다."
에덴동산에서 거니셨던 하나님, 광야에서 성막을 짓게 하신 하나님, 그리고 임마누엘 예수님까지.
하나님은 야곱이 세겜의 화려함이나 안락함이 아닌, '하나님과 함께하는 자리(벧엘)'로 돌아와, 다시 묻고 듣는 관계를 회복하기를 간절히 원하고 계셨습니다.
04. 결론
창세기 34장의 비극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첫째, 문명이 발달하고 삶이 편해질수록, 하나님과의 경험은 무뎌지기 쉽습니다.
야곱은 세겜의 편안함에 취해 '영적 야성'을 잃었습니다.
둘째, 세상의 화려함(문명)은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합니다.
"이것이 널 지켜줄 거야, 이것이 널 행복하게 할 거야." 하지만 디나의 사건처럼, 그 화려함 뒤에는 치명적인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셋째, '믿음의 여정'에 있는 사람도 '순서'가 틀리면 세상과 똑같이 변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께 먼저 묻는 순서'가 빠지면, 우리는 야곱처럼 비겁해지거나, 시므온처럼 잔인해집니다.
넷째,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고 싶어' 하십니다.
이 비극은 야곱을 다시 부르시는 하나님의 아픈 확성기였습니다.
이 유혹 많은 세상에서 우리를 지키는 방법은 유일합니다.
작은 결정 하나라도 하나님께 먼저 묻는 것입니다.
"하나님, 제가 거기로 가도 될까요?" "하나님,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질문이 멈추는 순간, 우리는 세겜에 멈추게 됩니다.
비극을 겪은 야곱. 그는 이제 정신을 차립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그는 가족들에게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라고 명령합니다.
드디어 회복되는 관계, 그리고 라헬의 죽음과 베냐민의 탄생.
다음 이야기,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 다시 제단을 쌓은 야곱과 12아들의 완성 (창세기 35장)"에서 만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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