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하는 동안, 하나님은 에서의 마음을 만지고 계셨습니다.
'나를 낮추고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 왜 문제 해결의 제1순서인지, 야곱의 변화와 에서의 용서를 통해 발견합니다.
우리는 문제가 생기면 '사람'부터 찾아갑니다.
뇌물을 준비하고, 인맥을 동원하고, 머리를 굴려(꾀) 상대를 설득하려 합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관계는 더 꼬이기만 합니다.
우리는 '인생의 순서'를 잊었기 때문입니다.
문제 해결의 제1순서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풀면, 하나님은 나보다 '앞서가셔서' 사람과의 관계를 풀어주십니다."
오늘 창세기 33장은 이 놀라운 '영적 법칙'이 증명되는 현장입니다.
밤새 환도뼈가 깨지며 하나님과 '수직적 관계'를 푼 야곱. 그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하나님은 이미 저만치 앞서가셔서, 4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오던 형 '에서'의 마음을 녹이고 계셨습니다.
01. 낮아짐의 승리

브니엘의 아침 해가 돋았습니다.
야곱은 다리를 절고 있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건강하고 꾀 많은 야곱이었지만, 이제는 하나님 앞에 꺾인 약한 존재 '이스라엘'입니다.
눈을 들어보니 에서가 400명의 장정을 거느리고 오고 있습니다. (창 33:1)
예전의 야곱이라면 가족들 뒤에 숨었겠지만, 이제 그는 다릅니다.
그는 가족들 '앞서' 나아갑니다.
그리고 형 에서에게 가까이 가기까지 '일곱 번 땅에 굽혀' 절합니다. (창 33:3)
이것은 비굴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만난 자의 '진정한 겸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난 자의 '역설적 당당함'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라고 하나님께 항복한 사람은, 사람 앞에서도 자존심을 세우지 않습니다.
자신을 철저히 낮춥니다.
그 절뚝거리는 모습, 땅에 엎드린 동생의 모습. 그것이 다가오던 에서의 눈에 들어옵니다
02. 하나님이 만지신 마음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납니다.
죽일듯이 달려올 줄 알았던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입 맞추고, 둘은 함께 '웁니다.' (창 33:4)
20년의 원한이 눈물과 함께 씻겨 내려갑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저는 여기서 '에서의 마음'을 주목해 봅니다.
야곱이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과 씨름하느라 끙끙대던 그 밤.
하나님은 잠자고 있던, 혹은 행군하고 있던 '에서의 마음'과 씨름하고 계셨던 것은 아닐까요?
에서는 야곱의 엄청난 예물을 거절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내 동생아, 내게 있는 것도 족하니 네 소유는 네게 두라" (창 33:9)
"내게 있는 것도 족하다."
이것은 에서 역시 하나님의 은혜(일반 은총) 안에서 '만족'을 누리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에서의 삶을 축복하심으로 그의 마음에 '여유'를 주셨고, 야곱의 '깨어진 모습(절뚝거림)'을 통해 '긍휼'을 불러일으키셨습니다.
야곱이 하나님께 매달리는 동안, 하나님은 이미 에서의 마음을 '용서'로 준비시키고 계셨습니다.
03. 형님의 얼굴이 하나님의 얼굴 같습니다

야곱의 고백은 이 화해의 정점을 찍습니다.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브니엘)을 본 것 같사오며..." (창 33:10)
이것은 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얼굴(브니엘)을 본 사람만이, 원수의 얼굴에서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나를 낮춤: 야곱은 자신을 '종'이라 부르고 에서를 '주'라 부르며 철저히 낮춥니다.
하나님을 높임: 그는 자신의 재산과 자녀를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33:5, 11)이라고 고백하며 하나님을 높입니다.
이 '순서'가 맞았기에, 관계가 풀렸습니다.
만약 야곱이 얍복 강가의 씨름 없이(자아의 깨어짐 없이), 꾀와 뇌물로만 에서를 만났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그 400명의 군사는 야곱을 치는 칼날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04. 결론
창세기 33장은 '관계 회복의 법칙'을 보여줍니다.
첫째, '순서'가 생명입니다.
사람과의 문제를 풀기 전에,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씨름)를 풀어야 합니다.
'수직적 관계(하나님)'가 풀리면, '수평적 관계(사람)'는 하나님이 푸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앞서 행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골방에서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가 두려워하는 그 사람(에서)의 마음을 이미 만지고 계십니다.
셋째, '나를 낮추는 것'이 승리하는 길입니다.
환도뼈가 부러져 절뚝거리는 야곱이, 꼿꼿한 야곱보다 강했습니다.
깨어진 자아, 낮아진 태도가 20년 묵은 원한을 녹였습니다.
넷째, 하나님은 야곱뿐만 아니라 '에서'의 삶도 주관하고 계셨습니다.
우리가 미워하거나 두려워하는 그 사람에게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십니다.
지금 관계의 문제로 두려워하고 계신가요?
상대방을 설득하려 하기 전에, 먼저 얍복 강가로 가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내 자아가 깨지고, 그분의 얼굴을 구하십시오.
당신이 눈을 뜰 때, 하나님은 이미 당신보다 앞서가셔서 그 사람의 마음 문을 두드리고 계실 것입니다.
극적인 화해 후, 야곱은 에서를 따라가지 않고 '숙곳'과 '세겜'에 머뭅니다.
평안해 보이는 그곳에서, 야곱은 '영적 긴장'을 놓아버립니다.
그리고 그 방심은, 그의 딸 '디나'가 겪는 끔찍한 사건과 아들들의 잔인한 복수극으로 이어집니다.
다음 이야기, "우리는 그들과 같이 될 수 없노라" : 세겜 성의 비극과 야곱의 침묵 (창세기 34장)"에서 만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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