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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창세기 30장) 합환채 사건 | 하나님 없는 인간의 자기보호 본능 (야곱, 레아, 라헬의 갈등)

by 킹덤빌더 2025.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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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난 야곱, 왜 하란에서는 무기력했을까요? 

남편을 원한 레아, 자식을 원한 라헬, 회피하는 야곱. '결핍'을 스스로 채우려는 인간의 처절한 '자기보호'와, 그 속에서도 일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합니다.

 

 

우리는 언제 가장 공격적이 되거나, 비굴해질까요? 

바로 '내가 나를 지킬 수 없다'고 느낄 때입니다. 

내 뒤에 든든한 '빽(하나님)'이 없다고 느껴질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자기보호' 모드를 켭니다.

누군가는 소리를 지르고(공격), 누군가는 거래를 하고(협상), 누군가는 입을 다물어 버립니다(회피).

오늘 창세기 29-30장의 야곱 가정은, 바로 이 '자기보호 본능'이 충돌하는 전쟁터입니다. 

야곱은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났지만, 일상(하란)에서는 그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사랑이어야 할 가정은 '생존을 위한 거래처'로 변해버렸습니다.

도대체 이 아수라장 속에서,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계셨을까요?

01. 하나님이 사라진 가정의 풍경

야곱의 가정에는 두 아내(자매)와 두 여종이 뒤엉켜 있습니다. 겉으로는 '아들을 낳는' 축복의 현장 같지만, 속은 썩어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사건의 절정은 '합환채(Mandrake)' 소동입니다. (창 30:14) 레아의 아들 르우벤이 들에서 '합환채'를 구해옵니다. 당시 사람들은 이것이 임신을 돕고 사랑을 불러오는 '신비한 약초'라고 믿었습니다.

자식이 없어 불안했던 라헬은, 언니에게 그것을 달라고 요구합니다. 남편의 사랑이 없어 불안했던 레아는, "내 남편을 빼앗은 것도 작은 일이냐?"며 거절합니다.

결국 두 자매는 끔찍한 **'거래'**를 합니다. "라헬이 이르되, 그러면 언니의 아들의 합환채 대신에 오늘 밤에 내 남편이 언니와 동침하리라"

남편은 물건처럼 거래되었고, 하나님을 향한 '기도' 대신 '미신(합환채)'이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이곳에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오직 '나의 결핍'을 채우려는 아귀다툼뿐입니다.

 

02. '결핍'이 만든 세 가지 '자기보호'

우리는 이 세 사람에게서,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진 인간이 불안 속에서 어떻게 자신을 방어하는지 봅니다.

▶ 라헬의 자기보호 : "공격과 소유"

 

그녀는 남편에게 소리칩니다. 

 

"나에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죽겠노라!" (30:1) 

 

그녀에게 자식은 하나님의 선물이 아니라, 자신의 무너진 자존심을 세워줄 '방패'였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능력'보다 '합환채(세상 방법)'가 더 확실한 보호 수단이라고 믿었습니다.

▶ 레아의 자기보호 : "성취와 거래"

 

그녀는 낳은 아들들을 보며 말합니다. 

"이제는 남편이 나와 연합하리로다." 

 

그녀에게 자식은 남편의 사랑을 삥 뜯어내기 위한 '협상 카드'였습니다.

그녀는 끊임없는 '출산(성취)'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며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방어했습니다.

▶ 야곱의 자기보호 : "회피와 침묵"

 

가장 안타까운 것은 야곱입니다. 

벧엘의 하나님을 만났던 그는, 가정의 제사장으로서 중심을 잡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두 아내의 싸움과 거래(오늘 밤은 이리로, 내일은 저리로)에 무기력하게 끌려다닙니다. 

이것은 평화가 아닙니다. 

골치 아픈 현실을 직면하기 싫어 도망치는 '비겁한 회피'입니다.

세 사람 모두 '하나님께 기대어' 있지 않았기에, 각자의 방법으로 '스스로를 보호'하느라 서로를 할퀴고 있었습니다.

03. 그 혼돈 속에서 '일하고 계신' 하나님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디 계셨을까요? 

하나님은 이들의 '수준 낮은 믿음'에 실망하여 떠나셨을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진흙탕' 속에서 묵묵히 '집'을 짓고 계셨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공평'하게 일하셨습니다.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한 레아를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습니다." (29:31) 

라헬의 투정과 미신을 들으신 것이 아니라, 나중에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30:22)며 그녀의 태도 여셨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인간의 '악'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인간들의 동기는 '질투', '경쟁', '성취욕'이라는 불순물덩어리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불완전한 재료들을 사용하셔서, 훗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이스라엘 12지파'라는 거대한 기초석을 놓으셨습니다.

특히, 사랑받지 못한 레아의 네 번째 아들 '유다'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를 준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난장판' 속에서도, 당신의 '구원 계획(Plan A)'을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04. 결론

창세기 29-30장의 핵심은 '자기보호의 실패'와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첫째, 하나님을 만났다고 해서(야곱) 저절로 삶이 변하지 않습니다. 

매일의 삶에서 그분과 '교제'하며 그분께 '기대지' 않으면, 우리는 위기의 순간에 다시 '옛 자아(속이는 자, 회피하는 자)'로 돌아갑니다.

둘째, 하나님 없는 '자기보호'는 관계를 파괴합니다. 

내가 나를 지키려고 할수록, 가까운 사람은 적이 됩니다. (라헬과 레아처럼)

셋째, 하나님은 우리의 '어떠함'보다 크십니다. 

우리가 서로 싸우고, 실수하고, 넘어지는 그 비참한 시간조차도,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시는 '재료'로 사용하십니다.

넷째, (레아의 변화) 결국 승리는 '합환채'를 가진 라헬이 아니라, 시선을 돌려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유다)라고 고백한 레아에게 있었습니다.

'남편'에게서 눈을 떼어 '하나님'을 바라볼 때, 그녀의 지옥 같은 '자기보호 전쟁'은 끝이 났습니다.

지금 불안하십니까? 

내가 나를 지켜야 할 것 같아 날이 서 있습니까? 

그 '보호 본능'을 내려놓으십시오. 당신은 이미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당신이 아웅다웅하는 그곳에서도, 하나님은 당신을 위한 '집'을 짓고 계십니다.


야곱의 가정이 12명의 아들로 북적거릴 때, 하나님은 이제 야곱에게 '경제적 독립'을 허락하십니다.

하지만 그 과정 또한 라반과의 치열한 '두뇌 싸움'이었습니다.

야곱은 과연 '자신의 꾀'로 부자가 되었을까요, 아니면 '하나님의 도우심'이었을까요?

다음 이야기, "얼룩무늬와 점 있는 것" : 야곱의 유전공학(?)과 꿈속의 하나님 (창세기 30장 후반-31장)"에서 만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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