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이미 태중에서부터 택함 받은 자녀입니다.
거룩한 척, 착한 척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기꾼 야곱에게 먼저 찾아오신 벧엘의 하나님.
포도나무 가지처럼 그분께 붙어 있는 것, 그것이 관계의 전부임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사랑받기 위해 부단히 애를 씁니다.
더 착해 보이려고, 더 능력 있어 보이려고, 더 믿음 좋아 보이려고 '가면'을 씁니다.
하지만 진짜 깊은 사랑은 언제 느껴지나요?
화장기 없는 민낯으로, 가장 초라한 모습으로 있을 때 나를 안아주는 그 사람 앞에서 우리는 무장해제 됩니다.
오늘 창세기 28장의 야곱이 그렇습니다.
그는 평생을 '척'하며 살았습니다.
형인 척, 매끈한 피부를 털로 가리고, 목소리를 변조하며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벗겨지고 홀로 남은 광야의 밤. "거룩한 척, 착한 척, 믿음 있는 척" 할 필요가 없는 그 적나라한 자리에서, 하나님은 야곱을 찾아오십니다.
01. 모든 '위장'이 사라진 밤

야곱은 '장자권'을 훔쳤지만, 그 대가로 따뜻한 집과 어머니의 품을 잃었습니다.
브엘세바를 떠나 하란으로 가는 800km의 도망길. 해가 저물어 '루스'라는 황량한 곳에 멈춥니다. (창 28:11)
그는 이제 '염소 가죽'을 두른 가짜 에서가 아닙니다.
어머니 뒤에 숨은 막내아들도 아닙니다.
그는 차가운 광야에 던져진, 불안에 떠는 '도망자'일 뿐입니다.
그는 돌 하나를 가져다 베개로 삼고 눕습니다.
가장 딱딱하고, 차갑고, 외로운 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나를 포장하던 모든 것'이 사라지자, 비로소 하나님이 들어오실 공간이 생겼습니다.
그가 잠들었을 때, 꿈을 꿉니다. 땅 위에 사닥다리가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내리락합니다. 그리고 그 위에 서신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나는 여호와니...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창 28:13-14)
02. 우리는 '이미' 택함 받은 자녀입니다
이 장면은 충격적입니다.
야곱은 방금 전까지 거짓말쟁이였고 사기꾼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를 꾸짖지 않으십니다.
"너 왜 그랬니?"라고 묻지도 않으십니다.
오히려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셨던 그 엄청난 '축복'을 쏟아부어 주십니다.
왜일까요?
우리는 이미 태중에서부터 택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태어나기도 전에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창 25:23)고 약속하셨습니다.
야곱은 장자권을 훔치려고 아등바등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였고, '이미' 복을 받은 자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어떠함(행위)'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다 아십니다.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지,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그래서 하나님은 자격 없는 야곱에게, 가장 듣고 싶었던 약속을 해주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창 28:15)
이것은 '내가 너와 함께하고 싶다'는 하나님의 절절한 프러포즈입니다.
03. 포도나무 가지처럼 '기대어' 사는 삶
잠에서 깬 야곱은 전율합니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창 28:16)
그는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잘할 때'만 계신 분이 아니구나.
내가 죄를 짓고 도망쳐 나온 이 처참한 자리에도 '이미' 와 계셨구나.
그는 돌기둥을 세우고 하나님께 서원합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나를 지키시고... 돌아오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창 28:20-21)
이것은 거래가 아닙니다.
이것은 "이제 하나님께 기대어 살겠습니다"라는 고백입니다.
마치 포도나무에 가지가 붙어 있듯이, 나의 힘과 꾀로 사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힘에 '매달려' 살겠다는, 연약하지만 진실한 '관계의 시작'입니다.
04. 결론
창세기 28장을 다시 묵상하며, 우리는 가장 중요한 진리를 발견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은 '조건'이 없습니다.
우리는 태중에서부터 택함 받은 자녀입니다. '자격'은 이미 주어졌습니다.
둘째,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척, 착한 척'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가면'을 쓴 예배보다, 돌베개를 베고 누운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만나러 오십니다.
셋째, 신앙은 '내가 무엇을 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대는 것'입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듯이, 그분의 약속을 신뢰하고 그분과 연결되어 있는 것. 그것이 전부입니다.
넷째, 하나님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 그거면 충분합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고 하셨고, 야곱은 "당신은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라고 응답했습니다.
이 서로를 향한 '마음'이 만나는 곳, 그곳이 바로 '벧엘(하나님의 집)'입니다.
지금 혹시 실패하고 넘어져 차가운 돌베개를 베고 계신가요?
괜찮습니다.
꾸미지 마십시오.
그저 그 자리에 함께 계신 하나님께 마음을 열고 기대십시오.
그분은 당신을 떠나지 않으십니다.
이제 하나님께 '기대어 사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 야곱.
하나님은 그를 훈련시키기 위해, 그보다 더 '자신의 힘'으로 사는 고수, 외삼촌 '라반'을 만나게 하십니다.
그곳에서 야곱은 자신이 뿌린 씨앗(속임수)을 거두며, 진짜 '관계'를 배워갑니다.
다음 이야기, "내가 외삼촌에게 속았나이다" :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의 훈련소 (창세기 29장)"에서 만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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