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믿음의 조상'도 죄를 대물림합니다.
이삭은 왜 26장에서 아버지와 '똑같은' 거짓말을 했을까요?
25장의 '편애'가 27장에서 '축복 사기극'으로 폭발합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비극 속에서, 그럼에도 일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발견합니다.
"그 아비에 그 아들" "사과는 나무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자녀가 '나의 좋은 점'만 닮기를 바라지만, 현실에서는 '나의 가장 나쁜 습관'이나 '실패'를 자녀가 '똑같이' 반복하는 모습을 보며 소스라치게 놀라곤 합니다.
우리는 '죄'를 대물림합니다.
지난 25장, 우리는 이삭과 리브가가 '부모'로서 '편애'라는 '죄'를 심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그보다 한 걸음 더 들어가, '아들' 이삭이 '아버지' 아브라함의 '실패'를 어떻게 그대로 물려받았는지(26장), 그리고 그 '죄의 환경'에서 자란 '손자' 야곱이 어떻게 그 '죄'를 사용하여 가정을 파괴하는지(27장)를 보겠습니다.
이것은 '믿음의 조상' 가문이 '죄'라는 바이러스에 어떻게 감염되고, '믿음의 순서'를 잊었을 때 어떻게 '스스로 해결'하려다 무너지는지에 대한 처절한 기록입니다.
01. '아버지의 실패'를 '경험'한 아들, 이삭

아브라함의 시대가 가고, '약속의 아들' 이삭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그가 22장에서 '개인적인 구원(여호와 이레)'을 '경험'했음에도, '죄의 본성'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기근'이 닥칩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12장에서 겪은 '똑같은 시험') 하나님이 '이삭'에게 '개인적으로' 나타나십니다.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창 26:2-3)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습니다.
'아버지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는 '개인적인 경험'을 했습니다.
그는 이 '믿음의 순서'(하나님의 뜻 발견)를 지켰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가 '두려움'에 처하자, '순서'를 잊었습니다.
그는 그랄 땅에서, '스스로 일을 해결해야만 하는 사람'처럼, 아버지 아브라함이 12장(애굽)과 20장(그랄)에서 썼던 '작은 촛불(인간의 꾀)'을 '똑같이' 켭니다.
"...그의 아내 리브가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니" (창 26:7)
놀랍게도, '아비멜렉'(20장의 그 왕, 혹은 그 아들)이 '또' 나타나 그를 책망합니다.
'믿음의 조상' 가문이 '똑같은 죄'로 이방 왕에게 '두 번'이나 책망받는 수치스러운 순간입니다.
'믿음'은 '환경'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죄'는 대물림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때와 마찬가지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이삭이 아니었습니다.
이삭의 '반복되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신실하게' 그를 보호하시고, 그가 100배의 축복을 얻게 하시며(26:12),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26:24)고 다시 '관계'를 확인해 주십니다.
이것이 26장의 핵심입니다.
인간은 '개인적인 경험'을 하고도 '똑같은 죄'를 반복할 만큼 연약하지만, 하나님은 그 '반복되는 실패'에도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02. '아버지가 심은' 죄, '아들이 거둔' 파괴
시간이 흘러, 이삭이 늙고 '눈이 어두워'졌습니다.
그의 '육체의 눈'이 어두워지자, '영적인 눈'도 어두워졌습니다.
그는 25장에서 하나님이 하신 "큰 자(에서)가 어린 자(야곱)를 섬기리라"는 '약속(큰 불빛)'을 '잊었습니다.'
그는 '믿음의 순서'를 잊고, '스스로 해결'하려 했습니다.
'자신이 사랑하는(편애)' 맏아들 에서를 불러, '자신이 좋아하는(입맛)' 사냥한 고기를 가져오면 '축복'하겠다고 '사적인 거래'를 합니다. (27:1-4)
'아버지' 이삭이 '하나님의 뜻'을 '육체의 욕망'으로 어기려던 그 순간, '어머니' 리브가가 이 말을 '엿듣습니다.'
리브가는 어땠습니까?
그녀는 '하나님의 뜻'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녀 역시 '하나님의 때'를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25장에서 '자신이 사랑하는(편애)' 야곱을 위해, '아브라함의 꾀'(16장 하갈), '이삭의 꾀'(26장 거짓말)와 '똑같은' '인간의 꾀(작은 촛불)'를 냅니다.
"...염소 새끼를 가져오면... 아버지가 잡수시고... 죽기 전에 네게 축복하게 하라" (창 27:6-10)
야곱은 "저주받을까 두렵다"고 말하지만, "그 저주는 내게로 돌리라"는 어머니의 '죄의 확신'에 '동참'합니다. '편애'라는 '죄의 환경'이 '가족 사기극'으로 폭발한 것입니다.
03. "목소리는 야곱인데, 손은 에서로다"
야곱이 아버지 이삭을 '속입니다.' '눈이 어두운' 이삭은 '의심'합니다.
"네가 내 아들 에서냐?" (27:21) "목소리는 야곱의 목소리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 (27:22)
이삭은 '영적 분별력'을 잃었습니다.
그는 '들리는 음성(야곱)'이 아닌 '만져지는 촉감(에서)'을, '하나님의 약속(어린 자)'이 아닌 '자신의 편애(큰 자)'를 '선택'합니다.
그는 '육체'에 속아, '보이지 않는 약속'을 '훔치러 온' 야곱을 '축복'하고 맙니다.
그 '축복'이 끝나자마자 에서가 돌아옵니다.
모든 '사기극'이 밝혀집니다.
이삭은 "심히 크게 떨며"(27:33) 자신의 실수를 깨닫습니다.
에서는 "소리 내어 울며"(27:34) 축복을 구하지만, '팥죽 한 그릇'에 '약속'을 팔아버린 그는 '눈물'로도 그 '관계'를 되돌릴 수 없었습니다. (히 12:16-17)
에서는 '야곱'을 '죽이겠다'고 결심합니다. (27:41)
야곱은 '축복'을 '훔쳤'지만, '가족'을 '모두 잃고' '도망자'가 됩니다.
'편애'를 심은 가정은, '완전한 파괴'를 거두었습니다.
04. 결론
창세기 26-27장의 핵심은 '죄의 대물림'과 '하나님의 신실하심'입니다.
첫째, (26장) '개인적인 경험'을 해도, 우리는 '죄의 본성'과 '환경'에 약하며 '아버지의 실패'를 '반복'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순서'(고백)를 잊고 '스스로 해결'(꾀)하려는 것은 우리의 고질병입니다.
둘째, (27장) '부모의 편애'는 '가정'이라는 '믿음의 환경'을 파괴하는 '가장 무서운 죄'입니다.
'심은 대로 거둡니다.' '편애'는 '속임수'를 낳고, '속임수'는 '가정의 파괴'를 낳았습니다.
셋째, (27장) '하나님의 약속'은 '인간의 꾀'로 훔칠 수 없습니다.
야곱은 '축복'을 훔쳤지만, 그 대가로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작은 촛불'은 '성공'처럼 보이지만, '모든 위협(에서)'을 자신에게로 끌어모았습니다.
넷째, (하나님의 신실하심) 하지만 이 모든 '인간의 실패' 속에서도,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26장에서 하나님은 '실패한' 이삭을 '보호'하셨고, 27장에서 하나님은 '죄악된 방법'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약속'("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이 이루어지도록 '허용'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삭의 실수'도, '리브가와 야곱의 꾀'도 사용하셔서, 당신의 '주권적인 계획'을 이루어 가십니다.
이제 야곱은 '어머니의 꾀'라는 '환경'에서 벗어나, '축복'은 잃어버리고 '저주'만 남은 것 같은 '도망자' 신세가 되어,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스스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만 했습니다.
'축복'을 훔치고 '죽음'을 피해 달아나는 야곱. 그의 인생 '가장 밑바닥', '가장 어두운 밤'에, 그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하나님의 집'을 만나게 됩니다.
다음 이야기,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 도망자 야곱, '하나님의 집'을 만나다 (창세기 28장, 벧엘)"에서 만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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