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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창세기 25장) 에서와 야곱 | '부모의 편애'는 왜 '태중의 죄'를 이기지 못했나 (장자권, 팥죽)

by 킹덤빌더 2025.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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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가정'에서 왜 갈등이 시작될까요? 

'나는 하나님이 될 수 없다'는 부모의 한계(편애)와, '개인적 경험'이 없던 3세대의 비극적인 선택(팥죽)을 통해 '심은 대로 거두는' 성경의 원리를 발견합니다.

 

 

"우리 부모님은 신앙이 정말 좋으신데, 왜 우리 형제는 이렇게 사이가 나쁠까?" 

"분명 '믿음의 가정'인데, 왜 이렇게 갈등이 많을까?"

우리는 자녀를 '내 맘대로' 할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자녀의 미래를 '통제'하려 하고, 심지어 '하나님의 복'까지도 내가 정해주려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될 수 없습니다.

창세기 25장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시대가 저물고(25:8), 그가 '믿음의 환경'(24장)을 통해 세워준 '이삭과 리브가'라는 완벽해 보이는 '믿음의 2세대' 가정이, 어떻게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려다(편애) 처참히 무너지는지를 보여주는, '관계'에 대한 가장 무서운 교과서입니다.

이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형제 싸움', 에서와 야곱 이야기의 시작입니다.

01. '태중의 죄'와 '부모의 실수'

아브라함이 죽고, '약속의 계승자' 이삭이 남았습니다. 

그는 22장에서 '죽음'을 '경험'하고 '여호와 이레'로 '개인적인 구원'을 만났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 '완벽한 믿음의 가정'에, 아버지 아브라함이 겪었던 '똑같은 시험'이 닥칩니다. 

 

"리브가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창 25:21)

이삭은 이 시험 앞에서 '성숙'한 모습을 보입니다. 

그는 '아버지의 실수'(16장, 하갈)를 반복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적인 꾀(Plan B)'를 내지 않았습니다. 

 

"이삭이...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창 25:21) 그는 '20년'을 기도하며 기다렸습니다. (25:20, 26)

그런데 20년 만의 기도 응답은, '기쁨' 이전에 '고통'이었습니다. 

 

"...아이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창 25:22)

왜 쌍둥이는 뱃속에서도 다투었을까요?

 

"우리는 태중에서도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경험'으로 다스려지기 전, '나를 보호하려는' 원초적인 '죄의 반응'이 먼저 나타난 것입니다.

리브가는 이 고통을 들고 '정직하게' 하나님께 묻습니다(18장의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은 이 '싸움'이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임을 알려주십니다.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창 25:23)

하나님은 '하나님의 계획'을 분명히 알려주셨습니다. 

하지만 '믿음의 2세대' 부모(이삭, 리브가)는 '하나님의 계획'이 아닌 '자신의 감정'을 '심기' 시작합니다.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이 조용한 사람이므로 그를 '사랑'하였더라" (창 25:28)

이것이 '믿음의 가정'이 저지른 '최악의 실수', '인간적인 편애'입니다.

02. '심은 대로 거둔다'는 법칙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입니다. 

24장에서 아브라함은 '믿음의 환경'을 '심었고', '리브가의 순종'을 '거두었습니다.' 

25장에서 이삭과 리브가는 '편애'를 '심었고', '가정의 파괴'를 '거두게' 됩니다.

부모가 '심은' 그 '편애'가, '팥죽 사건'으로 '열매'를 맺습니다. 

사냥에서 돌아와 '굶주린' 에서. '팥죽'을 쑤고 있던 야곱. 이것은 단순한 형제 싸움이 아닙니다. 

이것은 '부모의 편애'라는 '죄의 환경'이 낳은 '괴물'들의 모습입니다.

에서 (이삭의 편애를 받은 자): 

'보이지 않는 약속(장자권)'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자신을 편애하는 이유(사냥한 고기)'처럼, '눈에 보이는 만족(팥죽)'을 택하며 '약속'을 '경멸'합니다. (25:34)

야곱 (리브가의 편애를 받은 자): 

'보이지 않는 약속'의 '가치'는 알았지만, '어머니가 자신을 편애하는 방식(꾀)'처럼, '하나님의 때'가 아닌 '인간의 꾀'로 그 약속을 '훔치려'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경멸한 자'와 '훔치려 한 자'. 이들은 '아버지의 하나님'을 '귀로만 들었을' 뿐, '개인적으로 경험'하지 못했기에, '태중의 죄'를 이기지 못하고 각자의 '보호 본능'대로 반응한 것입니다.

03. '부모의 사명'은 '하나님'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이삭과 리브가는 '하나님'이 되려고 했습니다. (좀 자극적이라 생각 될 수 있겠지만 끝까지 읽어주세요)

하나님이 "어린 자를 섬기리라"고 하셨음에도, 이삭은 그 '하나님의 계획'을 무시하고 '자신의 입맛(육체)'을 따라 맏아들 '에서'를 세우려 했습니다. 

리브가는 그 '하나님의 계획'을 알았지만,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의 꾀(인간)'를 따라 둘째 '야곱'을 세우려 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처럼 사랑할 수 없습니다." 

'편애'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는 이삭과 리브가가 하나님이 되려고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부모의 사명'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자녀를 맘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들도 그들 인생을 사니까요."

"우리가 할 일은, '빨리 그들이 하나님과 인격적인 만남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1장에서 발견한, 하나님께 '먼저 받은 은혜(쉼)'를 통해, '넘쳐 흐르는 은혜'를 '나누는' 통로가 될 뿐입니다.

이삭과 리브가는 '은혜(쉼)'를 나누는 대신, '통제'와 '편애'를 심었습니다.

 

04. 결론

창세기 25장의 핵심은 '믿음의 2세대'가 마주한 '새로운 위기'입니다.

첫째, (이삭의 성숙) '아버지의 실패(16장 Plan B)'를 본 아들은, '기도하며 기다리는(20년)' 성숙함을 보였습니다.

둘째, (부모의 실패) 하지만 그 '믿음의 가정'조차, '하나님의 계획'을 '자신의 감정'으로 통제하려는 '인간적인 편애'라는 '죄의 본성'으로 인해 '깨어진 환경'이 되었습니다.

셋째, (에서의 비극) '경험 없는' 세대는 '보이지 않는 약속(장자권)'을 '눈앞의 만족(팥죽)' 때문에 '가볍게(경멸)' 여깁니다. 

이것이 '롯'의 길이며, '육체'의 길입니다.

넷째, (야곱의 실수) '경험 없는' 세대는 '보이지 않는 약속'의 '가치'는 알지만, 그것을 '하나님의 때'가 아닌 '자신의 꾀'로 얻으려 합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옛 실수이며, '인간의 힘'의 길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귀로만 들었던' 두 아들. '에서'는 '에돔 민족'으로, '야곱'은 '이스라엘 민족'으로 나뉘어, 아브라함의 두 아들(이삭/이스마엘)처럼 '또 다른 두 민족'의 갈등의 뿌리가 됩니다.

 

오늘날 많은 가정들이 부모가 살아있는 동안은 형누나동생과 가깝게 지내다가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멀어지거나 다툼이 생기는 경우도 부모가 하나님의 사랑을 올바로 전하지 못해서는 아닐까요?

이제 이삭과 에서는, '부모의 편애'와 '잘못된 선택'의 대가를 치르며, '아버지의 하나님'이 아닌 '나의 하나님''개인적으로 경험'해야만 하는, 길고도 고통스러운 '광야의 여정'을 떠나야 합니다.



'부모의 편애'와 '인간의 꾀'는 멈추지 않습니다.

'눈이 어두워진'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약속'이 아닌 '축복'을 '훔치려는' 야곱과 리브가의 '치명적인 거짓말'이 시작됩니다.

다음 이야기, "내 아들의 목소리는 야곱의 목소리이나..." : '축복'을 '훔친' 야곱 (창세기 27장)"에서 만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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