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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창세기 23장) 막벨라 굴 | 사라의 죽음, 아브라함이 '공짜 땅'을 거절한 이유

by 킹덤빌더 2025.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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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온 땅'을 약속하셨지만, 아브라함은 아내를 묻을 '땅 한 평' 없는 나그네였습니다. 

22장의 영적 최고봉 이후, 그가 '공짜 호의'를 거절하고 '거금'을 치러 '무덤'을 산 이유를 통해, '현실'에 박아 넣은 '약속'의 의미를 발견합니다.

 

지난 22장, 우리는 아브라함과 이삭이 '여호와 이레'라는 믿음의 최고봉에 오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산 위'의 은혜가 '산 아래'의 고통을 면제해 주지는 않습니다.

'믿음의 최고봉'(22장) 다음은, 언제나 '현실의 슬픔'(23장)입니다. 

아브라함의 '영적 동반자'이자 '약속의 어머니'였던 사라가 127세에 죽습니다. 

아브라함은 '슬퍼하며 애통'합니다(23:2). 

믿음이 슬픔을 없애주진 못합니다.

그리고 그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힙니다. 

그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살고 있었지만, 아내를 묻을 '단 한 평의 땅'도 법적으로 소유하지 못한 '나그네'였습니다.

하나님은 "보이는 모든 땅을 주겠다"(13장)고 하셨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이 아이러니 속에서, 아브라함의 '마지막 믿음'이 빛납니다.

01.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아브라함은 슬픔을 거두고 일어나, 그 땅의 원주민 '헷 족속'에게 나아갑니다.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할 소유지를 주어..." (창 23:4)

이것은 12장(애굽)과 20장(그랄)의 아브라함이 아닙니다. 

그는 더 이상 이방인(헷 족속)을 '두려워'하여 '거짓말(작은 촛불)'을 하지 않습니다. 

그는 "나는 나그네"라고 '정직하게' 자신을 낮추면서도, '약속의 땅'의 상속자로서 '당당하게' 거래를 요청합니다.

헷 족속은 극진한 '호의'를 베풉니다. 

 

"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금할 자가 없으리이다" (23:6)

그들은 '공짜로' 가장 좋은 땅을 쓰라고 제안합니다. 

이 '호의'를 받아들이면, 그는 돈 한 푼 안 들이고 아내를 장사 지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그 '호의'를 정중히 '거절'합니다.

그는 "충분한 값(은 400세겔)"을 '공개적으로', '법적으로' 지불하고 '에브론의 밭 막벨라 굴'을 '사겠다'고 고집합니다.

02.  '침묵'으로 '신뢰'하시는 하나님

이 '현실적인 부동산 거래' 속에서, 하나님은 '침묵'하십니다. 

12장, 20장처럼 아브라함이 실패할 때 '직접 개입'하지 않으십니다. 

22장처럼 '아브라함아!'라고 부르시지도 않습니다.

왜일까요? 

12장부터 22장까지의 '경험'을 통해, 이제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관점'으로 '스스로 행동'할 것을 '신뢰'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인간의 호의(공짜 땅)'라는 '작은 촛불'을 택할지, 아니면 '하나님의 약속(소유권)'이라는 '큰 불빛'을 택할지, 그 '성숙한 관계'의 결과를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03. '무덤'에 '미래'를 박아 넣은 아브라함

아브라함은 왜 '공짜 땅'을 거절하고, 당시 엄청난 거금(노동자 400년 치 연봉)이었던 '은 400세겔'을 굳이 지불했을까요?

'공짜 땅'은 '관계'에 귀속됩니다. 

헷 족속에게 '빚'을 지는 것이며, 그들의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떠나야 하는 '임시 거처'입니다.

'산 땅'은 '영원한 소유권'이 됩니다. 

'법적'으로 그의 땅이 됩니다.

아브라함은 14장에서 '소돔 왕'의 '재물(호의)'을 거절했듯이, 23장에서도 '헷 족속'의 '땅(호의)'을 거절합니다. 

그는 '인간의 호의'가 아닌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눈에 보이는' 가장 '화려한 땅(소돔)'을 택했던 롯(13장)과 정반대의 선택을 합니다.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약속을 위해, '가장 어두운 땅(무덤)'을 택합니다.

아브라함은 이 '무덤'을 '약속의 땅' 가나안에 박는 '첫 번째 닻'으로 삼은 것입니다. 

"나는 비록 '나그네'로 이 땅에 살지만, 나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다. 

나는 이 '무덤'을 '돈(은 400세겔)'을 주고 사서, '내 자손'이 이 땅의 '주인'이 될 것임을 '법적으로 선포'한다.'"

이것이 '믿음'은 '뜬구름'이 아니라, '슬픔'과 '죽음'이라는 '현실' 속에서 '약속'에 '값을 지불'하는 '구체적인 행동'임을 보여줍니다.

04. 결론

 

창세기 23장의 핵심은, '믿음의 최고봉'(22장)을 경험한 아브라함이, '현실의 슬픔(사라의 죽음)' 속에서 '나그네'라는 자신의 처지를 '정직하게' 인정하면서도, '인간의 호의(공짜)'에 타협하지 않고 '미래의 약속'에 '현재의 값(은 400세겔)'을 지불한, 가장 성숙하고 현실적인 '믿음의 행동'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장례 절차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창세기 12장, 13장, 15장, 17장에서 '반복적으로' "내가 이 가나안 온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단 한 평'의 땅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가나안 땅'의 중심부인 '헤브론'(막벨라 굴이 있는 곳)에 '값을 지불하고' 땅을 산 행위는, "나는 이 약속을 믿는다"는 '신앙 고백'이자 '법적인 선포'였습니다.

이 '막벨라 굴'은 훗날 '약속을 기억하는 닻'이 됩니다. 아브라함 자신, 이삭, 리브가, 레아, 그리고 '야곱'까지 모두 이곳에 묻힙니다.

훗날 야곱은 '애굽'에서 죽으면서 "나를 애굽이 아닌, '반드시' 가나안 땅의 이 막벨라 굴에 묻어달라"고 유언합니다(창 49장).

그 '무덤'은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우리의 진짜 고향은 '세상(애굽)'이 아니라 '약속의 땅(가나안)'이다"라는 '신앙 고백의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의 믿음이 어떻게 흘러흘러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지, 너무 기대가 되는 대목입니다.


아내 사라를 '약속의 땅'에 묻은 아브라함. 그에게는 이제 마지막 사명이 남았습니다.

'약속의 아들' 이삭의 '아내'를 구하는 일. 그는 '가나안(세상)'의 여자가 아닌, '본토(믿음의 환경)'의 여자를 찾기 위해 그의 '늙은 종'을 보냅니다.

다음 이야기,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 리브가를 만난 늙은 종 (창세기 24장)"에서 만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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