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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창세기 22장) 여호와 이레 | '복'과 '복의 근원' (아브라함의 순종과 이삭의 신뢰, 번제의 의미)

by 킹덤빌더 2025.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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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 하나님은 왜 그를 '번제'로 바치라 하셨을까요? 

'복'과 '복의 근원'을 묻는 아버지의 마지막 시험, 그리고 그 시험을 '경험'으로 승화시킨 아들의 온전한 신뢰(순종)를 발견합니다. 

여호와 이레의 깊은 의미를 탐구합니다.

 

 

당신의 삶에서, 하나님이 "그것만은 안 됩니다"라고 할 만큼 '가장 사랑하는 독자'는 무엇입니까? 

그것이 '자녀'일 수도, '성공'일 수도, 혹은 '안정'일 수도 있습니다.

지난 21장, 아브라함은 100세에 '기적의 아들' 이삭을 얻었습니다. 

그의 '관심'은 이제 '합법적으로' 이삭에게로 향했습니다. 

16장에서 '자식 없음'이라는 '결핍'에 관심이 쏠려 실패했던 그가, 이제 21장에서 '자식 있음'이라는 '성취'에 관심이 쏠리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때, '그 일들 후에'(창 22:1),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관계'를 향한 '마지막 질문'을 던지십니다. 

 

"아브라함아, 너는 '내가 준 복(이삭)'을 사랑하느냐, '복을 준 나(하나님)'를 사랑하느냐?"

이것은 단순히 '누구를 더 사랑하느냐'는 유치한 질문이 아닙니다.

이것은 16장에서 '자식'이라는 '결핍'에 '관심'이 쏠려 '인간적인 꾀(하갈)'를 냈던 아브라함에게, 이제 '성취(이삭)'를 손에 쥔 '그 후에', 그의 '관심'이 '복'이 아닌 '복의 근원(하나님)'께로 완전히 정렬되었는지 '확인'하시는, '믿음의 조상'을 완성하는 '졸업 시험'이었습니다.

01. '전부'를 요구받은 아버지

하나님의 명령은 잔인할 만큼 구체적이었습니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모리아 땅으로 가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창 22:2)

우리는 여기서 '번제'라는 단어의 의미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번제'는 제물의 '일부'가 아닌, '전부(100%)'를 재가 될 때까지 태워 그 '모든 것'을 남김없이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완전한 헌신'의 제사입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이삭을 죽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너의 유일한 희망, 너의 미래, 너의 약속, 너의 '전부'인 이삭을, '아무것도 남기지 말고' 나에게 줄 수 있느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이것은 16장의 '잘못된 관심'에 대한 가장 강력하고도 근본적인 '관계의 시험'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납니다. (창 22:3) 

12장(애굽)이나 16장(하갈)에서처럼 '인간적인 꾀(작은 촛불)'를 내지 않았습니다. 

15장(횃불 언약)에서처럼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라고 '항변'하지도 않았습니다.

왜일까요? 

그는 12장부터 21장까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내 꾀'는 실패하고(12, 16, 20장),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15, 17, 21장)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해할 수 없는' 명령 속에서도, '하나님은 신실하시다'는 '큰 불빛'을 신뢰했습니다.

02. '온전한 신뢰'로 묶인 아버지와 아들

3일 길을 걸어, 모리아 산에 오릅니다. 

성경은 "두 사람이 함께 동행하더니"(22:6, 8)라고 두 번이나 강조합니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두 사람'을 주목해야 합니다. '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들' 이삭입니다.

'청년' 이삭(나무를 짊어질 힘이 있는)이 묻습니다. 

"내 아버지여...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창 22:7)

이것은 '관찰자'의 순진한 질문입니다. 

아브라함이 대답합니다.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이레)하시리라" (창 22:8)

이것은 '경험자'의 위대한 신앙 고백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준비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히브리서 11:19은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믿었다고 증언합니다.)

그리고 이삭은 어떻게 합니까? 

그는 아버지를 제압할 '힘'이 있는 청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의 그 고백'을 '신뢰'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관계는 '온전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관계였습니다. 

이삭은 평생을 '하나님과 동행'하는 아버지를 '관찰'했습니다. 

그는 '우리 아버지는 미친 게 아니다'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한 이상과 하나님과의 관계도 충분한 관계였음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이삭도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제단을 쌓고,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나무 위에 놓을 때, 이삭은 '저항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아버지'의 믿음에 '아들'이 '순종'으로 동참하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관계'를 보여주는 가장 경이로운 그림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 예수님'을 우리를 위한 '번제물'로 내어주시고, '아들 예수님'께서 '십자가(나무)'를 지고 '순종'하신 그 '완전한 사랑의 관계' 말입니다.

03. '아버지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다

이 이야기는 '두 개의 시험'이 동시에 진행된 현장입니다.

첫째, '아버지' 아브라함의 '졸업 시험'입니다. 

그가 칼을 들어 아들을 '번제'로 드리려던 '그 순간'.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이제야 나를 경외하는 줄을 내가 아노라" (창 22:12)

'복'이 아닌 '복의 근원'을 택한 아브라함. 그의 '관계(관심)'가 '하나님'께로 완전히 정렬되었음을 '확인'받습니다.

둘째, '아들' 이삭의 '입학시험'입니다. 

'롯'이나 '사라'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관찰'만 하다가 '세상(소돔)'과 '현실(늙음)' 앞에서 무너졌습니다. 

하지만 '이삭'은 '관찰'을 넘어, '순종'으로 그 '시험'에 '참여'했습니다.

그가 '죽음'을 받아들이고 눈을 감았을 때, "아브라함아!"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숫양'이 자신을 '대신'하여 '번제'가 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여호와 이레" (여호와께서 준비하신다)

이 고백은,

'경험자' 아브라함에게는 "역시 하나님은 약속대로 준비하시는 분이다!"라는 '믿음의 확인'이었고,

'관찰자' 이삭에게는 "하나님이 정말 나를 구원하셨다!"라는 '최초의 개인적 구원 경험'이었습니다.

'아버지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는 순간.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 시험을 통해 아브라함에게 주고자 하셨던 '진짜 상급', 즉 '믿음의 계승'이었습니다.

 

04. 결론

창세기 22장의 핵심은 '두 개의 관계'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첫째, (하나님과 아브라함) "너의 '관심'이 '이삭'이 아닌 '나'를 향해 있느냐?"는 '관계의 마지막 질문'에, 아브라함은 '완전한 순종(번제)'으로 답했습니다.

둘째, (아브라함과 이삭) '아버지'의 '경험된 믿음'은 '아들'의 '온전한 신뢰'로 이어졌습니다. 

이 부자(父子) 관계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관계를 그림처럼 보여줍니다.

셋째, (하나님과 이삭) '아버지의 하나님'은 이 사건을 통해 '이삭 자신의 하나님'이 되었습니다. 

롯과 달리, 이삭은 '개인적인 구원'을 '경험'했습니다.

넷째, 이 '아버지'와 '아들'의 '온전한 신뢰'와 '희생'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 예수님'을 우리를 위한 '번제물(숫양)'로 내어주시고, '아들 예수님'께서 '십자가(나무)'를 지고 '순종'하신 '완전한 사랑의 관계'를 가장 완벽하게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여호와 이레."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가장 큰 절망' 속에서 '숫양'을 준비하셨듯, 우리의 '가장 큰 절망(죄)' 속에서 '어린 양 예수'를 준비하셨습니다.

 


'믿음의 최고봉'을 경험한 아브라함. 하지만 '믿음의 여정'은 '죽음'이라는 현실 앞에서 또 다른 '관계'의 시험을 만납니다.

그의 '영적 동반자'였던 '사라'가 죽습니다. 그는 '약속의 땅'에서, 아내를 묻을 '단 한 평의 땅'도 갖지 못한 '나그네'였습니다.

다음 이야기,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 사라의 죽음과 '최초의 땅' (창세기 23장)"에서 만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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