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돔을 탈출한 롯, 그리고 12장과 똑같은 거짓말을 반복한 아브라함. 두려움이 닥칠 때 우리는 '믿음의 순서'를 잊습니다.
이 처참한 실패에도,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발견합니다.
"다시는 화내지 말아야지" 다짐했지만, 똑같은 문제로 또 폭발한 나.
"이제는 걱정하지 말아야지" 믿음을 고백했지만, 통장 잔고 앞에서 또 두려워하는 나.
우리는 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까요?
믿음이 성장하는 것 같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 '과거의 나쁜 습관'으로 돌아갑니다.
우리는 '믿음의 순서'를 잊기 때문입니다.
두려움(문제)이 닥쳤을 때, '하나님께 정직하게 고백'(15장 아브람)하는 것이 '순서'인데, 우리는 마치 '그 일을 꼭 해결해야만 하는 사람'처럼 '스스로의 꾀'(12장 아브람)를 내는 '순서'로 돌아갑니다.
오늘 19장 후반부와 20장은, '죄의 환경'에 완전히 지배당한 롯과, '위대한 믿음(18장)' 직후에 '똑같은 실패(12장)'를 반복하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통해, 이 '잊혀진 순서'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끌고 가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보여줍니다.
01. 소돔을 '탈출'했지만, 소돔을 '벗어나지 못한' 실패

19장, 소돔에서 '강제로' 구출된 롯과 두 딸. 그들은 '심판'은 피했지만, '죄의 환경'에 완전히 '지배'당한 마음은 그대로였습니다.
그들은 산 속 동굴에 숨어 '관계'가 단절된 채, '두려움'에 빠집니다.
그들의 '관심'은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적 생존(대 잇기)'이었습니다.
두 딸은 "이 땅에는 우리와 결혼할 남자가 없다"며 '하나님께 묻는 순서'를 잊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해결'하는 '소돔의 방식'을 택합니다.
아버지에게 술을 먹여 '근친상간'을 저지르고, '모압'과 '암몬'의 조상이 됩니다.
'좋아 보였던'(13장) 롯의 선택은, '환경'에 지배당하고 '믿음의 순서'를 잊어버린 채, '관계의 완전한 파괴'라는 비극으로 끝납니다.
02. "그가 '또' 아내를 누이라 하였으니"
'그 직후에', 18장의 '하나님의 파트너' 아브라함은 '그랄' 땅으로 이주합니다.
그는 '그랄 왕 아비멜렉'을 두려워합니다.
17장에서 "나는 '전능한 하나님(엘 샤다이)'이라"는 음성을 들었고, 18장에서 "의인 10명"을 두고 하나님과 '협상'까지 했던 그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또다시' '믿음의 순서'를 잊었습니다.
그는 '두려움'을 하나님께 '고백'하지(15장) 않았습니다.
그는 '스스로 일을 해결'하려 했습니다(12장). 그는 12장에서 썼던, 아내를 잃을 뻔했던 그 '작은 촛불'을 '또' 켭니다.
"그의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창 20:2)
이것은 18장의 중보자, 17장의 언약자, 15장의 의인, 14장의 승리자, 13장의 양보자... 그 아브라함이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최고의 믿음' 뒤에도 '최악의 실패'가 올 수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03. '엘 샤다이'가 아닌 '신실하신 하나님'
아브라함은 '전능한 하나님(엘 샤다이)'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약속의 통로(사라)'를 '또' 팔아넘겼습니다. 아브라함은 '실패'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실패 속에서 '신실하신 하나님'은 어떻게 일하십니까?
하나님은 12장에서처럼, '또다시' '직접 개입'하십니다. '이방 왕' 아비멜렉의 '꿈'에 나타나십니다.
"네가 데려간 그 여인은 남편이 있는 자라... 네가 죽을 것이다." (창 20:3)
하나님은 아비멜렉을 꾸짖으시며 '약속'을 지켜내십니다.
왜일까요?
아브라함이 잘해서가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엘 샤다이'를 믿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한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15장 '횃불 언약'에서, 아브람이 잠든 사이 '혼자' 쪼갠 고기 사이를 지나가셨습니다.
"네가 실패해도, 내가 '혼자' 이 관계를 책임지겠다."
20장은, 그 '신실함'이 '엘 샤다이(전능함)'보다 더 근본적인 하나님의 성품임을 증명하는 장입니다.
04. 결론
창세기 19-20장의 이 어두운 실패담은 우리에게 이것을 말해줍니다.
첫째, '죄의 환경'(롯)과 '오래된 두려움'(아브라함)은 우리가 '믿음의 순서'를 잊게 만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고백'하는 대신, '스스로 해결'하려는 죄의 본성으로 돌아갑니다.
둘째, '위대한 믿음'을 고백한 '다음 날'에도, 우리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 있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믿음의 기복'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넷째, 우리의 구원은, 우리가 '순서'를 잊고 '실패'할 때조차 '자신이 한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이 '두 개의 실패'라는 '가장 어두운 밤'이 지나고 나서야,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아브라함의 '연약함'을 뚫고, 마침내 '약속의 빛'을 비추십니다.
인간의 '반복되는 실패'(롯의 딸들, 아브라함의 거짓말)라는 '가장 어두운 밤'이 지나자, 마침내 '하나님의 때'(Kairos)가 밝아옵니다. 17장과 18장에서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사라가 '비웃었던' 그 '웃음'이 '현실'이 됩니다.
다음 이야기,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 사라가 웃다, 이삭의 출생 (창세기 21장)"에서 만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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