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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창세기18장) 아브라함의 중보기도와 사라의 웃음 (하나님이 찾는 의인, 소돔)

by 킹덤빌더 2025. 1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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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처럼, 하나님과의 관계(수직)는 이웃을 향한 관심(수평)으로 이어집니다. 

18장,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파트너'로서 '타인'을 중보합니다. 

하지만 사라는 왜 웃었을까요? '경험하지 못한 신앙'의 한계와, 하나님이 찾으시는 '진짜 의인'의 의미를 발견합니다.

 

 

십자가의 모양을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하나님을 향한 '수직적 관계'와, 사람을 향한 '수평적 관계'가 만나는 지점.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진 사람의 마음은, 결코 '나'에게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 마음은 반드시 '주변'으로, '타인'을 향해 흘러넘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삶이 그러하셨듯이 말입니다.

지난 17장, 아브라함은 '엘 샤다이(전능한 하나님)'를 만나 '관계'를 재설정했습니다. 

오늘 18장에서, 그의 믿음은 '믿음의 아버지'로서 흔들리지 않는 수준으로 '차고 넘쳐', 드디어 '주변'을 향하기 시작합니다. 

그의 '관심'이 '나의 이름'이 아닌 '하나님의 이름(영광)'으로, '나의 결핍'이 아닌 '다른 이들의 생명'으로 옮겨가는, 놀라운 성숙의 현장입니다.

01. '민감한' 아브라함, '웃어버린' 사라

가장 더운 날, 아브라함이 장막 문에 앉아있습니다. 

그때 '세 사람'(하나님과 천사들)이 맞은편에 섭니다. 

17장을 통해 '영적 민감성'을 회복한 아브라함. 그는 그들이 '보통 손님'이 아님을 '인지'하고, '달려가' 극진히 '대접'합니다(18:2-8). (십자가의 '수평적' 실천)

그 '손님들'은 '이삭'의 출생을 '다시' 예언합니다. 

"내년 이맘때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그때, 장막 문 뒤에서 듣고 있던 '사라'가 '속으로 웃습니다.' (18:12)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과 사라의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아브라함: 17장의 '관계 회복'을 통해 '하나님의 일(중보기도)'에 '관심'이 생긴 '경험한 자'.

사라: 여전히 '경험하지 못한 신앙'으로, '하나님의 약속'이 아닌 '자신의 노쇠함(현실)'에 '관심'이 갇힌 '관찰자'.

믿음의 가정 안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신앙'은 이토록 '현실' 앞에서 쉽게 웃어버립니다.

02. .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손님들'이 일어나 '소돔'을 향해 떠나갑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파트너'로서의 '신뢰'를 담아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18:17)

하나님은 '소돔'의 죄악이 너무 커서 '심판'할 수밖에 없다고 '공유'하십니다.

하나님을 떠나 죄를 짓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십니다.

그 순간, 아브라함의 '흘러넘치는 믿음'이 터져 나옵니다. 

그는 '하나님 앞을 가로막고' 나섭니다.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 하나이까?" (18:23)

이것은 15장의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라는 '나의 결핍'을 위한 항변이 아닙니다. 

이것은 "주께서 의인을 멸하시면, '세상의 심판자'이신 '하나님의 이름(영광)'은 어찌 됩니까?"라는,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관심'이자 '다른 이를 살리는 일'에 동참하는 '파트너'의 중보기도였습니다.

"의인 50명... 45명... 40명... 30명... 20명... 10명..."

03. 하나님이 '찾는 의인' vs 아브라함이 '찾는 의인'

이 위대한 중보기도 속에는,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미묘한 '동상이몽'이 숨어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찾던 '의인': 그는 아마도 '도덕적으로 착한 사람' 10명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롯이 갔으니, 그 정도는 있지 않을까?"

하나님이 찾으시는 '의인': 하지만 하나님이 찾으시는 '의인'은 '착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것은 15장 6절("그의 믿음을 그의 의로 여기시고")에서 보았듯이,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지지 않은 사람", "하나님을 믿고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소돔 땅은 어떠했을까요? 

그곳은 하나님을 떠나 '자기의 성(바벨탑, 카인의 성)'을 짓고, '서로 아웅다웅'하며 '남 탓'을 넘어 '집단적 폭력'을 일삼는, '관계가 완전히 단절된'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습니다.

"믿음의 가족 안(사라)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신앙'이 그 모양인데, 하물며 '소돔' 땅은 어떠하겠습니까?"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는, 역설적으로 '소돔에는 단 한 명의 의인(하나님과 관계 맺은 자)도 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심판의 정당성'을 아브라함 스스로 깨닫게 하는 과정이었습니다.

04. 결론

창세기 18장의 핵심은 '믿음의 방향'입니다.

첫째,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17장)는 반드시 '수평적 관심'(18장)으로 흘러넘칩니다. (십자가의 모양)

둘째, '성숙한 믿음'(아브라함)은 '나의 결핍'이 아닌 '하나님의 정의'와 '타인의 생명'에 '관심'을 둡니다.

셋째, '경험하지 못한 믿음'(사라)은 '하나님의 약속'이 아닌 '나의 현실'에 갇혀 웃어버립니다.

넷째, 하나님이 찾으시는 '의인'은 '착한 사람'이 아니라 '관계가 끊어지지 않은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은 '의인 10명'이라는 마지막 희망을 붙잡았습니다. 

과연 '화려한 땅' 소돔에는, '하나님과 관계 맺은 자'가 단 10명이라도 있었을까요?

'경험하지 못한 신앙'을 가졌던 롯과, '소돔의 환경'에 완전히 지배당한 그의 가족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요?

 


두 천사는 아브라함의 '희망'을 뒤로하고, '죄의 도시' 소돔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날 밤, '의인 10명'은커녕 '단 한 명의 의인'도 찾을 수 없는, '홍수 이전'과 똑같은 '총체적 타락'을 목격합니다.

다음 이야기, "'내게 상관하지 말라' : 소돔의 죄악과 롯의 구출, 그리고 '소금 기둥' (창세기 19장)"에서 그 끔찍한 심판의 현장을 만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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