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브라함이 찾던 의인 10명은 없었습니다.
소돔의 총체적 타락, 롯의 끔찍한 타협, 그리고 롯의 아내가 '뒤를 돌아본' 이유. '죄의 환경'이 '경험하지 못한 신앙'을 어떻게 지배하는지 발견합니다.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우리는 '내 의지'로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다고 믿고 싶어 하지만, '주변 환경'이 얼마나 강력하게 우리를 지배하는지 매일 경험합니다.
지난 18장, 우리는 "믿음의 가정(사라) 안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신앙'은 현실(늙음) 앞에서 웃어버린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것입니다.
"하물며 '소돔'이라는 '죄의 환경'에 노출된 사람들은 어떠하겠습니까?"
아브라함은 '의인 10명'의 가능성을 믿고 기도했지만, 오늘 19장은 그 '화려한 도시'가 어떻게 '단 한 명의 의인'도 없는, '관계가 완전히 파괴된' 곳이었는지, 그리고 '좋아 보였던' 롯의 선택이 어떤 비참한 결말을 낳았는지 적나라하게 고발합니다.
01. '타협'과 '폭력'의 도시

두 천사가 저녁에 소돔에 도착합니다.
'좋아 보이는 땅'을 택했던 롯. 그는 성문에 앉아있다가 그들을 보고, '아브라함처럼' 엎드려 '영접'하고 '간청'하여 자기 집으로 모십니다. (19:1-3) 여기까지 롯은 '믿음의 사람'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날 밤, 소돔의 '민낯'이 드러납니다.
"...그 성 백성 곧 소돔 백성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19:4)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 모여'. 이것은 '몇몇 불량배'가 아닙니다.
'도시 전체'의 '총체적 타락'입니다.
그들은 '손님(타인)'을 '관계'의 대상이 아닌 '폭력'의 대상으로 요구합니다. ("상관하겠다")
이때, 롯의 반응은 더욱 끔찍합니다. 그는 '죄의 환경'에 이미 '지배'당해 있었습니다.
그는 손님을 지키기 위해, "아직 남자를 가까이하지 아니한 '내 두 딸'을 내어주겠다"는, '세상의 방식'에 물든 최악의 '타협'을 제안합니다. (19:8)
사람들은 "네가 뭔데 우리를 판단하느냐"며 롯마저 공격하려 듭니다.
천사들이 롯을 '강제로' 집으로 끌어들이고 문을 닫습니다.
'의인 10명'은커녕, '롯'마저도 이미 그 환경에 동화되어 '의인'이라 부르기 힘든 상태였습니다.
02. '자격'이 아닌 '관계'로 얻은 구원
천사들은 "이 성을 멸할 것"이라며 롯과 그의 가족(사위들)을 재촉합니다.
하지만 롯의 사위들은 이 심판을 '농담'으로 여깁니다. (19:14) 롯 자신도 '지체'합니다. (19:16)
그 '화려한 땅'에 대한 '미련'. 결국 천사들이 롯과 그의 아내, 두 딸의 손을 '잡아' 도시 밖으로 '강제로 끌어냅니다.'
그리고 마지막 명령을 하십니다.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19:17)
하늘에서 불과 유황이 비처럼 쏟아집니다.
그때,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19:26)
이 모든 사건이 끝난 후, 성경은 롯이 구원받은 '진짜 이유'를 단 한 문장으로 요약합니다.
"하나님이...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곧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19:29)
롯의 구원은 '그의 의로움'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18장의 아브라함과의 관계(중보기도)를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03. '환경'에 '관심'을 빼앗긴 사람들
이 이야기는 '환경'이 '개인'을 어떻게 지배하는지 보여줍니다.
소돔 사람들: 그들은 '하나님 없는 성(바벨탑, 카인의 성)'을 짓고 '서로 아웅다웅' 살았습니다. 그들에게 '타인(손님)'은 '보호'의 대상이 아닌 '폭력'의 대상일 뿐, '관계'가 완전히 단절된 상태였습니다.
롯: 그는 '좋아 보이는 땅'을 택했지만, 그 '환경'에 '지배'당했습니다. 그는 '정의'를 지키는 대신 '딸을 내어주는' 끔찍한 '타협'을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롯의 아내 (소금 기둥): 그녀가 바로 '경험하지 못한 신앙'의 비극적 결말입니다.
'믿음의 가정(사라)' 안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신앙'은 '현실(늙음)' 앞에서 무너졌는데, 하물며 '죄의 도시(소돔)'에 살던 롯의 아내는 어땠을까요?
그녀는 '방주(하나님의 보호)'가 아닌 '소돔(죄의 환경)'에 있었습니다.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미래)'보다, 그녀의 '관심'은 '불타는 소돔'(자신이 쌓아온 세상, 재산, 과거)에 있었습니다.
그녀의 몸은 나왔지만, '관계(관심)'는 '죄의 환경'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04. 결론
창세기 19장, 소돔의 심판은 우리에게 이것을 말해줍니다.
첫째, 18장에서 아브라함이 찾던 '하나님과 관계 맺은 의인'은 단 10명도 없었습니다.
둘째, '눈앞의 화려함'(13장 롯의 선택)은 '총체적 타락'(19장 소돔)과 '반드시 심판이 있다'는 하나님의 공의로 귀결되었습니다.
셋째, 롯의 구원은 '그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이루어진, '중보기도(관계)'의 힘이었습니다.
넷째, '롯의 아내(소금 기둥)'는, '경험하지 못한 신앙'이 '죄의 환경'에 '관심'을 빼앗겼을 때, 어떻게 '구원의 문턱'에서 멸망하는지 보여주는 가장 비극적인 증거입니다.
우리의 '관심'은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뒤(과거, 세상)'를 돌아보고 있습니까?
아니면 '산(하나님의 명령, 미래)'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까?
소돔에서 간신히 탈출한 롯.
하지만 '죄의 환경'에 '지배'당한 그의 이야기는, 인류 역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또 다른 '관계의 파괴'(두 딸과의 근친상간)로 이어집니다.
한편, 아브라함은 '그의 믿음'과 '현실' 사이에서 '또다시' 12장과 똑같은 실패를 반복합니다.
다음 이야기, "롯의 두 딸, 그리고 아브라함의 '또 다른' 거짓말 (창 19 후반-20장)"에서 만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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