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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창세기 16장) 하갈 | '믿음의 평균'과 '사람의 조바심'이 만든 비극(이스마엘)

by 킹덤빌더 2025.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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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장의 위대한 약속 직후, 아브람은 왜 하갈을 택했을까요? 

'보이지 않는 약속'보다 '보이는 사람(사래)'의 고통이 더 컸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평균'에 무너진 공동체, 그리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한 조바심의 결과를 발견합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무서운 순간은 언제일까요? 

그것은 '세상의 유혹'이 아니라, '믿음의 공동체'가 '인간적인 방법'을 제안할 때일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뜻도 맞지만, '현실적으로' 이렇게 하는 게 좋지 않겠어?" "다들 그렇게 해. 이게 합리적인 거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보다, '눈에 보이는 공동체 사람들'의 논리와 고통이 더 크게 다가올 때. 

우리는 15장의 위대한 신앙 고백을 했던 아브람조차도, 이 함정에 무너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믿음은 개인적이지만, 공동체의 믿음은 결국 '모든 사람의 믿음의 평균'으로 귀결되는 것 같습니다.

01. '평균'이 된 믿음

15장에서 아브람은 '개인'으로서 신앙의 최고점을 찍었습니다. 

그는 '정직하게 항변'했고, '별'을 믿어 '의'가 되었으며, '횃불 언약'이라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보증까지 받았습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습니다. (창 16:3) 

'하나님의 시간'(Kairos)은 오지 않고, '인간의 시간'(Chronos)만 흘러갑니다. 

'별'은 여전히 보이지 않고, '아내의 늙어감'만 보입니다.

이때, '공동체'(사래)가 무너집니다. 

사래가 아브람에게 '인간적인 꾀'(당시의 문화적 해결책)를 냅니다.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창 16:2)

이것은 사래의 '악의'가 아니라, '고통'과 '조바심'에서 나온 최선의 'Plan B'였습니다. 

문제는 아브람의 반응입니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창 16:2)

15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던 그가, 16장에서는 '사람의 말'을 듣습니다. 

왜일까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아내의 고통'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15장의 '아브람 개인'의 믿음은, 16장의 '아브람+사래'라는 '공동체'의 믿음이 되자, 그 '믿음의 평균'은 '조바심'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02. '남 탓'과 '자기보호'로 깨어진 관계

하나님은 '삼위일체'의 관계를 인간과도 누리고, '인간끼리도' 누리길 원하십니다. 

하지만 아브람과 사래의 '인간적인 꾀'는, '성공'(하갈의 임신)처럼 보인 그 순간, '관계의 지옥'을 만듭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끼리' 합의한 이 계획이, '인간끼리의 관계'를 가장 먼저 파괴합니다. 

'죄의 속성'인 '남 탓'과 '자기보호 본능'이 폭발합니다.

하갈 → 사래: 하갈이 임신하자, 주인을 '멸시'합니다. (관계 파괴 1)

사래 → 아브람: 사래가 아브람을 '남 탓'합니다. "내가 받는 모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 (창 16:5) (관계 파괴 2)

아브람 → 사래: 14장에서 롯을 위해 '책임'졌던 아브람이, "당신의 여종이니 당신의 처분대로 하라"며 '책임 회피'와 '자기보호'를 합니다. (관계 파괴 3)

사래 → 하갈: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고, 하갈은 '도망'칩니다. (관계 파괴 4)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한 '사람의 조바심'은, '믿음의 계보' 안에 또 하나의 '죄(갈등)의 계보'(이스마엘)를 만들어내고야 맙니다.

 

03.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 (엘 로이)

이 '관계의 지옥' 한가운데, 하나님은 '침묵'하십니다. 

그분은 아브람이나 사래에게 나타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어디에 계실까요? 

하나님은 그 '인간적인 꾀'의 가장 큰 '피해자', 광야로 도망친 '하갈'에게 '먼저' 찾아가십니다.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창 16:8)

하나님은 약속의 사람(아브람)이 저지른 이 '관계의 파괴'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그 고통 속에서 '이방 여종' 하갈을 '보시고', 그녀의 고통을 '들으시며'(이스마엘: 하나님이 들으심), 그녀와도 '관계'하십니다.

하갈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하나님께 이름을 붙여드린' 여인이 됩니다. 

"주는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엘 로이)이라" (창 16:13)

아브람과 사래는 '눈에 보이는' 하갈을 택했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을 잊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광야에서, '보잘것없는' 하갈을 '살펴보고' 계셨습니다.

04. 결론

창세기 16장의 처절한 실패는, 15장의 위대한 성공 직후에 일어났습니다.

첫째, '믿음'은 '개인적'이지만, '공동체의 믿음'은 '평균'으로 수렴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보이는 사람'의 고통과 논리에 더 쉽게 설득당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의 조바심'은, '하나님을 돕는' 지혜가 아니라 '관계를 파괴하는' 죄입니다. '남 탓'과 '자기보호'라는 죄의 본성이 즉각 폭발합니다.

셋째, 이 실패로 인해 '믿음의 계보' 안에 또 다른 '갈등의 계보'(이스마엘)가 시작됩니다.

넷째, 그렇기에 우리는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어제의 위대한 고백(15장)이, 오늘의 유혹(16장)을 막아주지 못합니다. '공동체의 평균'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나의 관계'가 매일 하나님께 붙들려 있어야 합니다.

 

하갈과 같이 여러분의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어떠한 분이십니까?

하나님을 기억하고 있는 사건이 있나요?


'인간의 꾀'로 이스마엘을 낳은 아브람. 그가 86세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13년' 동안 그에게 침묵하십니다. 

아브람이 99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인간의 힘'이 완전히 소진된 그에게 '다시' 찾아오십니다.

다음 이야기,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 13년의 침묵 끝에 찾아오신 하나님 (창세기 17장)"에서 만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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