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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로마서 1장 18-23절) 묵상 | 하나님의 진노와 일반 계시

by 킹덤빌더 2025.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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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진노가 불의한 사람들에게 나타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보여주지 않아서 못 믿었다"고 변명하지만, 성경은 만물 속에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분명히 있다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을 알되 영화롭게 아니하는 죄의 뿌리를 묵상합니다.

 

 

병원에 가서 "그냥 좀 피곤해요"라고 했는데, 의사가 정밀검사 후 "말기 암입니다"라고 한다면 어떨까요? 

로마서 1장 18절이 바로 그런 충격적인 진단서입니다.

바울은 인류를 향해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로부터 나타난다"고 선언합니다.

사람들은 억울해합니다.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이 눈에 보여야 믿죠.

안 보여줘 놓고 화를 내면 어떡합니까?"

오늘 본문은 이 억울한 항변에 대한 하나님의 법정 진술입니다. 

과연 우리는 몰라서 못 믿은 걸까요, 아니면 알면서도 거부한 걸까요?

01. 성경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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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
로마서 제 1 장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4)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25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26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27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28   또한 그들이 5)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   비방하는 자요 6)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32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02. 억울하다는 피고인들

 

사람들의 변명은 한결같습니다. 

"몰랐습니다."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 알 수 없었고, 그러니 내 마음대로 산 게 죄가 되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단호하게 "핑계할 수 없다"고 못 박습니다. (20절) 

하나님은 자신을 꽁꽁 숨겨두신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20절)

일반 계시: 웅장한 우주, 정교한 자연의 섭리, 우리 양심의 소리... 이 모든 것이 "신은 존재한다"고 소리치고 있습니다.

억압: 문제는 증거가 부족한 게 아니라, 인간이 "불의로 진리를 막고 있다(18절)"는 것입니다.

마치 물속에 있는 공을 억지로 누르고 있듯, 하나님을 인정하기 싫어 그 앎을 의도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03. 진노는 '거룩한 반응'입니다

 

우리는 '진노'라고 하면 감정적으로 화를 내는 모습을 상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진노는 다혈질적인 분노가 아닙니다. 

'거룩'이 ''를 만났을 때 일어나는 필연적인 거부 반응입니다.

빛이 오면 어둠이 사라져야 하듯,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와 공존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창세기에서 묵상한 '물과 기름'의 상태를 기억하시죠?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죄(기름)가 되었기에, 불(진노)이 붙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이 진노는 우리를 망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너희 상태가 지금 이만큼 위험하다"는 것을 알리는 경고등입니다.

04. 죄의 뿌리는 '감사치 않음'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근원적인 죄는 무엇일까요? 

살인? 도둑질? 

바울은 21절에서 죄의 뿌리를 정확하게 타격합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21절)

① 영화롭게 아니함

하나님을 창조주로 인정하지 않고, 내 인생의 주인 자리에서 몰아낸 것입니다.

이것이 아담의 원죄(내가 하나님 되기)입니다.

② 감사하지 아니함 

내게 주어진 생명, 시간, 자연 모든 것이 선물인데, "내 능력으로 얻은 내 것"이라고 착각하는 교만입니다.

③ 우상 숭배 

하나님을 몰아낸 빈자리에 무엇을 채웠습니까?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23절)

우리가 창세기에서 봤던 '투영'이 여기서 등장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두렵고 부담스럽습니다.

내 맘대로 조종할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내 입맛대로 조종할 수 있는 신(금송아지, 돈, 성공)을 만들어 섬깁니다.

이것은 종교심이 아니라, 하나님을 피하기 위한 가장 고도화된 '자기보호 본능'입니다.

05. 결론

 

바울은 이런 인간들을 향해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22절)"라고 일침을 가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지성은 결국 고장 난 나침반과 같습니다.

첫째, 핑계를 멈추십시오. 

"보여주면 믿겠다"는 말을 거두십시오. 

하나님은 이미 자연 만물과 당신의 양심, 그리고 역사를 통해 충분히 보여주셨습니다. 

문제는 증거가 없는 게 아니라, 당신이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기 싫어하는 그 마음입니다.

둘째, 감사를 회복하십시오. 

죄의 반대말은 '착한 일'이 아니라 '감사'입니다.

내가 누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인정(영화롭게 함)하고 감사할 때, 꼬여버린 창조의 질서가 제자리를 찾습니다.

오늘, 고개를 들어 하늘을 한번 보십시오. 

그리고 그 만물을 지으신 분께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해 보십시오. 

그것이 복음으로 들어가는 첫걸음입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인간들에게, 하나님이 내리신 가장 무서운 형벌은 무엇일까요? 

벼락을 내리는 것일까요? 

지옥불을 던지는 것일까요? 

 

놀랍게도 하나님은 "그냥 내버려 두십니다." 

가장 무서운 심판, '유기(내버려 둠)'에 대하여.

다음 이야기, "내버려 두사 : 하나님이 손을 떼실 때 일어나는 비극 (로마서 1장 24-32절)"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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