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순절 6일차, 중풍병자를 향한 예수님의 "죄 사함" 선언을 묵상합니다.
당장의 문제 해결(육신의 치유)보다 근본적인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죄 사함)을 먼저 주시는 은혜와, 자기보호의 계산기를 두드리는 서기관들의 모습을 통해 참된 신앙의 길을 나눕니다.
만약 당신이 오랜 빚에 시달리다 못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가장 유명한 해결사를 찾아갔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런데 그가 당신의 빚을 갚아주는 대신, "당신의 마음속 상처가 다 나았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어떨까요?
아마 당황스럽고 화가 날지도 모릅니다.
"아니, 지금 내 당장의 문제는 그게 아니라고요!"
오늘 본문의 분위기가 딱 그랬을 것입니다.
네 명의 친구가 지붕을 뚫고 중풍병자를 달아 내렸습니다.
모두가 '육신의 치유'라는 극적인 기적을 숨죽여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엉뚱하게도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선언하십니다.
사람들은 웅성거렸습니다.
왜 예수님은 당장 눈에 보이는 결핍이 아닌, 보이지 않는 '죄'의 문제를 먼저 꺼내셨을까요?
01. 성경본문
개역개정
마가복음 제 2 장
중풍병자를 고치시다(마 9:1-8; 눅 5:17-26)
1 수 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들린지라
2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3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4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리니
5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6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생각하기를
7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8 그들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1)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생각하느냐
9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10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11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12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02. 현상이 아닌 뿌리를 고치시는 분

오늘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우리 고통의 가장 깊은 뿌리를 다루시는 분'으로 묘사합니다.
우리는 늘 눈앞에 보이는 현상(가난, 질병, 관계의 실패)이 내 불행의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것만 해결되면 스스로를 완벽히 보호하며 살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의 진짜 병이 육신의 마비가 아니라, '관계의 마비'임을 아셨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것, 그래서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며 불안에 떠는 것.
주님은 중풍병자의 육신을 고치기 전에, 그를 짓누르고 있던 근본적인 불안과 영적 고아의 상태를 먼저 치유하신 것입니다.
"너는 이제 하나님과 다시 연결되었다. 더 이상 스스로를 보호하려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이것이 바로 죄 사함의 진짜 의미입니다.
03. 마음속으로 '계산'하는 서기관들

반면 성경에서 비치는 또 다른 인간의 모습이 있습니다.
바로 한쪽에서 마음속으로 예수님을 판단하던 서기관들입니다.
그들은 율법이라는 자기들만의 견고한 성을 쌓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파격적인 선언이 자신들이 가진 종교적 권력과 신학적 틀을 위협한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끊임없이 계산기를 두드립니다.
'저건 신성모독이야. 우리가 가진 교리에 어긋나.'
여러분, 어쩌면 육신이 굳어버린 중풍병자보다 더 심각하게 마비된 사람들은 바로 이 서기관들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자기보호본능'에 갇혀, 눈앞에 찾아오신 구원자를 보고도 기뻐하지 못했습니다.
내 생각, 내 상식, 내 신학이라는 그물로 나를 보호하려다 보니, 정작 하나님의 생명력 넘치는 교제 안으로는 한 발짝도 들어가지 못하는 굳어버린 신앙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상황에서 우리의 신앙을 돌아봐야 합니다.
나는 나를 위해 신앙을 가지고 있는가?
아니면 온전히 하나님과 함께하고, 그분의 영광을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가 말입니다.
04. '하마르티아', 하나님과 끊어진 것이 모든 결핍의 시작이다

예수님이 사하여 주시겠다고 한 '죄'의 원어를 살펴보면, 이 상황이 더욱 명확해집니다.
하마르티아 (ἁμαρτία): 헬라어 원어로 '과녁을 빗나가다'라는 뜻을 가집니다.
성경이 말하는 죄는 단순히 나쁜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존재가 하나님이라는 과녁(관계)에서 빗나가 단절된 상태를 말합니다.
과녁을 빗나간 화살이 바닥에 떨어져 무기력해지듯, 하나님과 끊어진 인간은 자기보호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영적으로 마비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빗나간 관계의 방향을 다시 하나님께로 정조준해 주신 것입니다.
05. 결론

여러분.
지금 당신은 어떤 마비 증상을 겪고 계시나요?
본문 속 서기관들처럼 내 상식과 경험이라는 틀에 갇혀 마음이 굳어 있지는 않나요?
육신의 문제만 해결해 달라고 조르느라, 정작 주님이 주시는 관계의 평안을 놓치고 있지는 않나요?
사순절 6일차, 오늘 우리는 이 두 가지를 실천해 보길 원합니다.
1. '계산기' 대신 '감사' 꺼내기:
내 뜻대로 상황이 풀리지 않아 마음속으로 불평(계산)이 시작될 때, 잠시 멈추세요.
"주님, 현상이 아니라 제 영혼의 뿌리를 먼저 만져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해 보세요.
2. 영혼의 마비를 푸는 일상 예배:
나를 보호하려 애쓰던 굳은 마음을 풀고
찬양과 말씀 안에 머물 때, 비로소 우리의 굳은 영혼이 자유롭게 뛰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가장 큰 기적은 병이 낫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를 다시 만나는 것입니다.
중풍병자를 일으키며 놀라운 권세를 보여주신 주님은, 이제 당시 가장 천대받던 세리의 세관으로 걸어가십니다.
그리고 또 한 번의 파격적인 부르심을 던지십니다.
다음 시간, [사순절 묵상 7일차]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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