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순절 39일차, 고난주간 토요일, 십자가의 죽음을 묵상합니다.
어설픈 적용과 실천을 멈추고, 나를 대신하여 지옥의 심판을 받아내시며 끝까지 아버지를 부르신 창조주의 그 숭고한 죽음 앞에 영혼을 온전히 엎드려 말씀의 본래 뜻을 대면합니다
가장 태양이 밝게 빛나야 할 정오(제육시), 십자가가 세워진 골고다 언덕에 돌연 칠흑 같은 어둠이 임하여 세 시간이나 온 땅을 덮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이 어둠을 아들의 처참한 죽음 앞에 창조 세계가 슬퍼하며 빛을 잃은 감상적인 현상으로 오해하곤 합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의 맥락 속에서 이 어둠(스코토스, σκότος)은 감상적인 자연 현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출애굽 당시 애굽 전역을 덮쳤던 아홉 번째 재앙이자, 아모스 선지자가 예언했던 여호와의 날에 임할 우주적인 심판의 가시적인 표증입니다.
성부 하나님은 지금 아들을 불쌍히 여기며 눈물을 흘리시는 것이 아닙니다.
온 인류의 추악한 죄악을 홀로 뒤집어쓴 아들을 향해, 창조주가 쏟아부을 수 있는 가장 무섭고 맹렬한 진노의 저주를 사정없이 퍼붓고 계신 것입니다.
십자가는 슬픔의 자리가 아니라, 우리의 죗값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집행되는 가장 무서운 형장입니다.
01. 성경본문
마태복음 27장
45 제 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더니
46 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ㄴ)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47 거기 섰던 자 중 어떤이들이 듣고 가로되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48 그 중에 한 사람이 곧 달려가서 해융을 가지고 신 포도주를 머금게 하여 갈대에 꿰어 마시우거늘
49 그 남은 사람들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엘리야가 와서 저를 구원하나 보자 하더라2)
50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02. 우주적 단절의 절규,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그 맹렬한 진노의 어둠 한가운데서, 창세 전부터 단 한 번도 끊어진 적 없던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이 찢어지는 비명이 터져 나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십자가의 가장 끔찍한 고통은 손과 발에 박힌 쇠못이 아니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 즉 하나님과의 완전한 분리입니다.
평생토록 하나님을 친밀하게 (아바 아버지)라 부르시던 아들 예수님은, 이 순간만큼은 철저히 버림받은 죄인의 신분으로서 아버지를 부르지 못하고 철저한 단절의 늪으로 내던져지셨습니다.
우리가 당해야 할 그 영원한 지옥의 저주와 고독을,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세 시간 동안 온몸으로 받아내신 것입니다.
03. 지옥의 심연 속에서 붙든 이름, "나의 하나님"

그러나 이 처절한 버림받음 속에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위대한 역설이 숨어 있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고통에만 집중하지만, 이 절규를 시작하는 첫 단어는 다름 아닌 "나의 하나님, 엘리, Ηλι"입니다.
이것은 십자가가 품고 있는 순종의 절정입니다.
철저한 버림받음과 지옥의 고통 속에서도, 예수님은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거두거나 원망하지 않으십니다.
뼈가 부서지는 저주의 한복판에서도 끝까지 "나의 하나님"이라 부르시며 자신을 버린 성부를 끝까지 붙드십니다.
지옥의 심연 속에서도 끊어지지 않은 이 완벽하고 숭고한 순종의 외침이, 불순종으로 에덴을 떠났던 우리 인류를 다시 생명으로 묶어낸 가장 위대한 구속사의 닻이 되었습니다.
04. 빼앗긴 생명이 아닌 주권적인 내어줌

진노의 잔을 모두 마신 예수님은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가십니다.
전통적으로 우리는 예수님이 채찍질과 출혈을 견디지 못해 기진맥진하여 숨을 거두셨다고 상상합니다.
그러나 헬라어 원문 (아페켄 토 프뉴마, ἀφῆκεν τὸ πνεῦμα)의 정확한 뜻은 "그가 스스로 그의 영을 넘겨주셨다(내어보내셨다)"입니다.
예수님은 사망이라는 권세에 굴복하여 수동적으로 생명을 빼앗기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죗값을 완벽하게 다 치르신 후, 우주의 통치자로서 당신의 영혼을 성부께 주권적으로 반납하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나약한 선지자의 패배나 소진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망의 권세를 정복하고 구속사를 완성하신 만왕의 왕의 가장 능동적이고 승리 찬 대관식이었습니다.
05. 결론

여러분. 오늘 당신은 십자가 밑에서 기적을 구경하려는 관망자입니까, 아니면 나를 위해 지옥의 심연을 통과하신 그 맹렬한 사랑 앞에 영혼을 찢고 엎드린 예배자입니까?
사순절 39일차, 어설픈 행동의 다짐을 멈추고 오직 십자가의 찢어짐에 내 영혼을 온전히 결박하기 위해 결단해 봅시다.
- 요구하는 기도를 멈추고, '스코토스(어둠)'의 은혜 안에 머무는 5분 침묵: 오늘 5분간, 하나님께 내 문제의 해결과 기적만을 요구하던 가벼운 입술을 다물어 보십시오. "주님, 나를 대신하여 우주적인 진노의 어둠(스코토스)을 온몸으로 받아내신 그 먹먹한 은혜 앞에 나의 모든 교만을 내려놓습니다. 나를 위해 하나님에게 버림받으면서도 끝까지 언약을 놓지 않으신 주님의 그 숭고한 순종 앞에, 오늘 내 영혼이 오직 십자가의 피로만 흠뻑 젖게 하옵소서."
- 오해와 조롱 앞에서도 변명하지 않고 '나의 권리'를 내어주기: 주님이 십자가에서 영혼을 능동적으로 내어주신(아페켄) 그 사랑에 압도되었다면, 오늘 이웃을 대하는 방식도 달라져야 합니다. 오늘 누군가 나의 진심을 오해하거나 십자가 밑의 군중들처럼 나를 비난할 때, 내 억울함을 증명하려 맞서 싸우지 마십시오. "주님, 나를 향해 조롱하던 자들을 위해 스스로 생명을 내어주신 그 침묵의 십자가를 오늘 내가 살아내게 하옵소서." 나를 변호하려는 얄팍한 권리를 포기하고, 오늘 나를 오해하는 이웃마저 묵묵히 품어내는 십자가의 넉넉한 죽음을 실천해 보십시오.
기독교는 내 열심으로 하나님의 기적을 이끌어내는 종교가 아닙니다. 살 길이 없어 죽어가는 나를 위해 우주적 진노의 어둠 속으로 기꺼이 몸을 던지신 창조주, 그 처절하고도 완벽한 대속의 사랑 앞에 전 존재를 던져 항복하는 가슴 벅찬 침잠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읽을 때마다 무엇인가를 깨닫고 내 삶에 적용하여 실천하려 애씁니다.
그러나 골고다 언덕에 세워진 이 십자가의 심연 앞에서는, 인간의 어설픈 다짐이나 실천의 언어들이 모두 무의미해집니다.
나를 대신하여 우주적인 진노의 어둠을 받아내신 분. 하나님께 완벽하게 버림받으면서도 끝까지 나의 하나님을 놓지 않으셨던 분. 그리고 마침내 나의 구원을 위해 스스로 영혼을 내어주신 분.
오늘 고난주간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무엇을 '하기' 이전에 이 압도적인 구속의 은혜 앞에 그저 벌거벗은 영혼으로 잠잠히 엎드려야 합니다. 내 공로와 의지가 완전히 산산조각 나는 그곳에서, 십자가의 흘리신 피가 내 영혼을 적시는 그 먹먹한 침묵 속으로 온전히 침잠하는 오늘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P.S. 킹덤빌더즈: 세상의 소음이 멈추고 십자가의 침묵이 덮이는 밤 내 삶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 하나님을 원망하며 영혼의 깊은 어둠 속을 헤매고 계셨다면, 당신을 영원한 빛으로 인도하기 위해 기꺼이 지옥의 흑암 속으로 들어가신 구원자의 십자가 앞으로 오십시오. 유튜브 채널 '킹덤빌더즈' 매일 밤 11시 30분, 구경꾼의 조롱이 멈추고 나를 향한 창조주의 찢어지는 사랑이 심장을 관통하는 은혜의 자리로 초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