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난주간의 첫날, 성전 정화 사건을 묵상합니다. 신앙을 거래로 전락시킨 귀신 들린 탐욕(에크발로)을 쫓아내고, 잃어버린 자들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으로 내 기득권의 장벽을 허물어 가장 연약한 이웃을 품어내는 십자가를 나눕니다.
우리는 흔히 종교가 세상을 정화하고 약자를 보호할 것이라 기대합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의 이기심이 종교의 껍데기를 뒤집어쓸 때, 그곳은 세상보다 훨씬 더 잔인하고 폭력적인 곳으로 변질됩니다.
고난주간의 첫날 월요일,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콕 집어 상을 둘러엎으신 자들을 보십시오.
바로 "비둘기 파는 자들(12절)"입니다.
구약 율법(레위기 5:7)에서 비둘기는 소나 양을 바칠 돈조차 없는 가장 극빈층을 위한 최소한의 제물이었습니다.
당시 종교 기득권자들은 돈 많은 부자들만 착취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죄 용서를 받고 싶어 덜덜 떨며 동전 몇 닢을 쥐고 온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의 얄팍한 주머니마저 털어 폭리를 취했습니다.
종교의 이름으로 사회적 약자의 피를 빨아먹는 이 지독한 기득권의 폭력성, 이것이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 한 인간의 끔찍한 밑바닥입니다.
01. 성경본문
성전을 깨끗하게 하시다(막 11:15-19; 눅 19:45-48; 요 2:13-22)
12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13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14 맹인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주시니
15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하시는 이상한 일과 또 성전에서 소리 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어린이들을 보고 노하여
16 예수께 말하되 그들이 하는 말을 듣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
17 그들을 떠나 성 밖으로 베다니에 가서 거기서 유하시니라
02. 은혜를 돈으로 바꾸는 귀신 들린 탐욕을 쫓아내다

성경이 짚어내는 우리의 타락한 실존은, 하나님의 은혜마저 철저히 내 이익을 위한 비즈니스로 계산하려는 '영적 사기극'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매매하는 자들을 성전에서 "내쫓으시며(에크발로, ἐκβάλλω)"라고 기록됩니다.
소름 돋게도 이 '에크발로'라는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이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실 때(축사)' 사용하는 전용 단어입니다.
주님의 눈에 성전의 상업화는 단순히 윤리적으로 타락한 시장통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이만큼 헌금하고 헌신했으니 하나님은 내게 이윤(축복)을 주셔야 한다는 그 지독한 '거래적 신앙'.
무한하신 하나님을 내 통제 아래 두고 이용하려는 그 시스템 자체가 바로 사탄에게 장악당한 '귀신 들린 영적 상태'였던 것입니다. 주님은 상인들을 꾸짖으신 것이 아니라, 영적 전쟁을 치르듯 우리 안의 악한 우상숭배를 무자비하게 '축사(에크발로)'해 버리신 것입니다.
03. 열방을 향한 아버지의 심장이 찢어지다

그렇다면 창조주 예수님은 왜 이토록 맹렬하게 분노하셨을까요?
그 해답은 예수님이 상을 엎으신 그 시장통의 물리적 위치에 있습니다.
그곳은 성전 안쪽이 아니라 바깥마당, 바로 '이방인의 뜰'이었습니다.
13절에서 예수님이 인용하신 이사야의 원문을 보면 "내 집은 '만민(모든 이방 민족)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선포합니다.
성부 하나님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온 열방의 잃어버린 이방인들이 찾아와 교제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유대 기득권자들은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에 시끄러운 장사판을 벌려, 그들이 하나님께 접근조차 하지 못하도록 거대한 장벽을 쳐버렸습니다.
탕자(이방인)가 돌아오기만을 문밖에서 애타게 기다리시는 그 찢어지는 '아버지의 마음'이, 바로 자신들만의 배타적인 카르텔을 형성한 종교인들의 탐욕에 가로막혀 피눈물을 흘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분노는, 이방인을 품어 안으시려는 아버지 하나님의 맹렬한 사랑의 폭발이었습니다.
04. 무너진 장벽 너머로 밀려드는 맹인과 저는 자들

이 배타적인 장벽이 무너지자마자 어떤 구속사적 기적이 일어납니까?
14절, 거래의 테이블이 엎어지자 "맹인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주시니"라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구약 시대에 성전 출입이 제한되었던 상하고 찢어진 자들이, 가짜 종교의 벽이 무너지자마자 창조주 품으로 밀려 들어와 값없는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개혁주의생명신학은 선포합니다.
교회는 의인들끼리 모여 기득권을 누리고 거래하는 클럽이 아닙니다.
이방인과 맹인과 저는 자들, 즉 세상에서 가장 자격 없고 상처받은 자들이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와 십자가의 피로 씻음 받는 거룩한 은혜의 병원입니다.
05. 결론

여러분.
오늘 당신은 하나님과 거래하며 교회 밖의 사람들을 막아서는 기득권자입니까, 아니면 상한 자를 향해 애통해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품은 자입니까?
사순절 35일차, 내 안의 거래적 신앙을 축사(에크발로)하고 아버지의 긍휼을 회복하기 위해 구체적인 실천을 결단해 봅시다.
1. '거래적 신앙'이라는 귀신을 내어 쫓는(에크발로) 5분 축사 기도:
오늘 하루 중 5분, 기도의 응답을 받아내기 위해 하나님께 내밀었던 나의 공로와 조건의 테이블을 스스로 둘러엎으십시오.
"주님, 나의 헌신을 무기 삼아 주님과 거래하려 했던 그 귀신 들린 탐욕을 예수 이름으로 쫓아냅니다(에크발로). 내가 누리는 종교적 기득권으로 이방인과 새가족이 하나님께 나아오는 길을 가로막았던 영적 교만을 회개합니다. 오늘 내 안의 모든 계산적인 테이블을 엎어버리시고, 오직 값없는 십자가의 은혜로만 나를 채워 주옵소서."
2. '비둘기를 드리는 자(소외된 이웃)'를 향해 이방인의 뜰 열어주기:
아버지의 마음이 내 안에 부어졌다면, 오늘 인간관계 속에서 내가 무의식적으로 쳐놓은 배타적인 장벽을 허물어야 합니다.
오늘 내 직장이나 공동체 안에서, 주류에 끼지 못하고 겉도는 '이방인' 같은 동료나, 가장 연약하여 무시받는 '비둘기를 바치는 자'가 누구인지 찾아보십시오.
"주님, 탕자를 기다리시던 그 애통한 아버지의 마음으로, 오늘 내가 저 사람을 향해 닫힌 뜰의 문을 열게 하옵소서."
오늘 그에게 먼저 다가가 곁을 내어주고, 조건 없는 친절과 식사를 베풀며 그의 무너진 마음의 성전을 따뜻하게 세워주는 기적을 실천해 보십시오.
기독교는 내 투자로 축복을 얻어내고 우리끼리 성벽을 높이는 비즈니스가 아닙니다. 자격 없는 나를 위해 기꺼이 육체를 찢으사 생명의 문을 여신 십자가 앞에서, 내 이웃마저 그 열린 문으로 초대하는 벅찬 사랑의 교제입니다.
P.S. 킹덤빌더즈: 계산기가 부서지고 아버지의 마음이 부어지는 밤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지만 내 뜻대로 보상이 주어지지 않아 억울하고 메말라 계셨다면, 거래의 판을 엎으시고 탕자를 향한 애통함으로 당신을 안아주시는 창조주의 품으로 오십시오.
유튜브 채널 '킹덤빌더즈' 매일 밤 11시 30분, 내 안의 배타적인 장벽이 무너지고 잃어버린 자를 향한 아버지의 심장이 뜨겁게 뛰기 시작하는 은혜의 자리로 초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