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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9장) 무지개 언약과 노아의 실수

by 킹덤빌더 2025.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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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 한 사람의 동행함으로 온 가족이 구원받았습니다. 

이 놀라운 은혜에도 불구하고 왜 '함'은 무너졌을까요? 

공동체의 은혜와 '개인적 관계'의 중요성, 그리고 노아의 실수를 덮은 셈의 믿음을 발견합니다.

 

혹시 이런 말 들어보셨나요?
"우리 부모님이 정말 신실한 신앙인인데, 저는 잘 모르겠어요."
"우리 교회는 정말 좋은데, 제 삶은 왜 이렇죠?"

우리는 종종 '좋은 공동체'나 '훌륭한 리더'의 울타리 안에 있으면, 나도 저절로 안전하고 괜찮을 것이라 착각합니다.
하지만 '단체로 받은 은혜'가, '나 한 사람의 하나님과의 관계'를 대신해 줄 수 있을까요?

오늘 창세기 9장의 이야기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한 사람의 믿음'으로 구원받은 '노아의 가족'이, 그 구원 직후에 왜 그토록 처참하게 무너지는지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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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방주에서 나온 후에..."

길고 끔찍했던 홍수가 끝났습니다.
방주의 문이 열리고,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새 땅을 밟습니다.
이 구원은 오직 '노아 한 사람'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창 6:9)`

노아의 동행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하지 못했을 수도 있는 그의 아내와 아들들(함, 셈, 야벳)까지 모두 홍수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한 사람'을 통해 베푸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가족 구원'의 은혜입니다.

노아는 새 땅에서 가장 먼저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립니다.
하나님은 그 향기를 받으시고, 다시는 물로 세상을 심판하지 않겠다는 '관계의 약속'을 하십니다.
그 증표로 하늘에 '무지개'를 두십니다.

완벽한 새 출발, 완벽한 '공동체적 은혜'입니다.
이제 이 가족은 행복하기만 하면 됩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새 땅에서 농사를 시작한' 노아가 포도나무를 심습니다.
그리고 그 포도주에 '취해', 자신의 장막 안에서 '벌거벗고' 잠이 듭니다. (아담의 수치가 반복됩니다.)

'하나님과 동행'했던 위대한 의인, 가족을 구원한 영웅 노아.
그 역시 '무너질 수 있는 약한 인간'이었습니다.

이때, 둘째 아들 '함'이 아버지의 그 '벌거벗은 수치'를 봅니다.
그는 밖으로 나가 다른 형제들에게 그 사실을 '알립니다(떠벌립니다)'. (죄의 폭로)

그러나 '셈과 야벳'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옷을 가져다가, 뒷걸음질 쳐 들어가 아버지의 수치를 '보지 않고' '덮어줍니다.' (은혜의 행동)

02. '준비'하시고

이 엇갈린 반응 속에서 우리는 '관계'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발견합니다.

 

첫째, 하나님은 '언약(관계)'에 신실하십니다.
하나님은 노아 가족의 '미래'를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그들이 홍수 이후에도 여전히 죄를 지을 것임을 아셨습니다.
`"...(인간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창 8:21)`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다시는 심판하지 않겠다"는 '무지개 언약'을 일방적으로 주십니다.
하나님의 '관계 유지' 의지는 우리의 '상태'와 상관없이 신실하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개인적 관계'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노아 한 사람을 통해 가족 '전체'를 구원하셨지만,
그 구원의 '경험'이 각자의 '믿음'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다 같이 '감사(관계)'가 나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함'이 아닌, '셈과 야벳'을 주목하십니다.

셋째, 하나님은 '항상 준비'하고 계십니다.
노아가 술에서 깨어 '함'의 아들 '가나안'을 저주하고, '셈'을 축복할 때,
이것은 단순한 술주정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관계를 덮어줄 줄 아는' 셈의 계보를 통해,
당신의 구원 계획(예수 그리스도)을 이어가도록 '미리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03. '공동체' 속 '개인'의 민낯

노아의 가정은 오늘날 우리의 '교회'나 '가정' 공동체의 완벽한 축소판입니다.

▶ 은혜를 '경험'한 자 vs 은혜를 '아는' 자 (함 vs 셈)

 

함:

그는 '홍수 심판'이라는 어마어마한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그 은혜가 '자신의 것'이 되지 못했습니다.
즉, '내가 직접 하나님과의 관계에 붙들려 있지 않으면', 아버지(노아)의 믿음, 공동체(방주)의 구원이 나를 지켜주지 못합니다.
'함'은 아버지의 수치를 보자, 그를 '덮을' 은혜가 아닌 '폭로'할 죄성(카인의 본성)이 먼저 튀어나왔습니다.

 

셈과 야벳:

그들은 똑같이 은혜를 '경험'했지만, 그 은혜의 '본질'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가죽옷'으로 아담의 수치를 덮으셨던 하나님의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수치를 '덮어주는 것'만이 관계를 회복하는 유일한 길임을 알았습니다.


'의인'도 무너지는 인간의 연약함

 

노아의 실수는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알려줍니다.
'하나님과 동행'했던 위대한 의인조차도, '포도주'(안일함, 자기만족)에 취해 '수치'를 드러낼 수 있습니다.
인간은 언제나 무너질 수 있는 약한 존재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완벽함'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신실하심(무지개)'과 '덮으심(셈의 행동, 가죽옷)'에 달려있습니다.

 

04. 결론

 

창세기 9장, 노아의 실수 이야기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첫째, 한 사람의 위대한 믿음(노아)은 공동체(가족)를 구원의 자리로 이끌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둘째, 하지만 '공동체적 은혜'의 경험이 '개인적 관계'의 성숙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함'이 될 가능성을 안고 있습니다.

셋째, "내가 직접 하나님과의 관계에 붙들려 있지 않으면", 우리는 아버지의 믿음, 교회의 울타리 속에서도 결국 '수치를 폭로하는 자'로 무너지고 맙니다.

넷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셈'과 같이 그 은혜의 본질(덮어줌)을 아는 자들을 '준비'하셔서, 그분의 '관계 회복' 계획을 이어가십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모습입니까?
'방주'라는 공동체 안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안도하고 있습니까? (함)
아니면, 공동체의 리더(노아)나 지체(형제)가 무너졌을 때, 그 수치를 '폭로'하고 있습니까, '덮어주고' 있습니까? (셈)

하나님의 '무지개'는, 우리의 '완벽함'이 아닌 우리의 '연약함' 위에 떠 있습니다.


'함'의 후예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바벨탑'을 쌓기 시작합니다.
반면, '셈'의 후예들은 흩어짐 속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셈의 후손, '한 사람'을 부르십니다.

다음 이야기, "하나님을 대적하여 성을 쌓다 : 교만의 상징, 바벨탑 (창세기 11장)"에서 만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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