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브리서 1장 1-3절을 통해 압도적인 그리스도의 영광을 묵상합니다.
예수님을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만만한 종교적 개념으로 축소하려는 우리의 영적 안일함을 직면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삶을 목적지로 이끌고 가시는(페로) 만물의 통치자 앞에 엎드리는 경외와 안식을 나눕니다.
우리는 불편하거나 어려운 사람과 소통할 때, 직접 만나 얼굴을 보는 것보다 문자 메시지나 이메일로 연락하는 것을 훨씬 편하게 느낍니다.
문자는 내가 답장할 시간을 통제할 수 있고, 감정을 숨긴 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아주 훌륭한 안전장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이런 현상이 일어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핍박의 위협 앞에서, 살아계신 예수님과 매일 동행하는 좁은 길 대신 과거의 유대교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율법의 조문과 제사 의식은 내가 지켜야 할 규칙만 있을 뿐, 내 전 존재를 걸고 살아있는 인격체와 부딪힐 필요가 없는 '종교적인 문자 메시지'처럼 안전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01. 성경본문
개역개정
히브리서 제 1 장
하나님이 아들을 통하여 말씀하시다
1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2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02. : 파편화된 조각을 넘어선 눈부신 실체

오늘 성경에서는 예수님을 '파편화된 종교적 지식을 끝내고, 아버지의 온전한 성품을 드러내신 눈부신 실체'로 선포합니다.
과거 구약 시대에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마치 퍼즐 조각처럼 부분적이었지요.
그러나 마지막 날,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직접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여러 선지자 중 가장 뛰어난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밀랍에 도장을 꾹 눌러 찍어낸 것처럼, 아버지의 가장 깊은 본질과 영광을 1밀리미터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보여주시는 '본체의 형상(카락테르)'이십니다.
주님은 우리와 적당한 거리를 두는 문자 메시지가 아니라, 우리의 영혼 깊은 곳까지 뚫고 들어오시는 그분 자신의 완전한 현현(顯現)입니다.
03. 살아계신 왕을 '안전한 교리'로 길들이려는 인간의 욕망

반면 성경 주석들이 짚어내는 우리의 본성은 '압도적인 하나님을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만만한 종교로 축소하려는 교만'에 있습니다.
우리가 왜 머리로는 신학을 알면서도 삶에서는 생명력을 잃어버릴까요?
살아계신 통치자의 간섭을 받는 것보다, 예수님을 내가 연구하고 분류할 수 있는 '신학적 개념'이나 '종교적 교리'로 축소시키는 것이 훨씬 다루기 편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야생의 사자처럼 길들일 수 없는 왕이신 예수님을, 주일마다 내가 필요할 때 찾아가서 위안을 얻고 돌아오는 온순한 애완동물처럼 만들어버렸습니다.
성경을 깊이 연구한다면서도, 정작 그 말씀이 내 삶을 뒤흔들고 내 자아를 부수도록 허락하지는 않습니다.
생명력 있는 교제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앙상한 종교적 안일함과 지식의 교만만이 남게 된 것입니다.
04. '페로'와 '앉으셨다', 내 삶을 이끄시는 완벽한 보증

본문은 우리가 다루기 쉽게 길들일 수 있는 예수님이 아니라, 우주를 압도하시는 왕의 두 가지 모습을 보여줍니다.
만물을 붙드시며 (페로, φέρων):
그리스 신화의 아틀라스가 고통스럽게 지구를 떠받치고 있는 정적인 모습이 아닙니다.
이 단어는 우주와 우리 삶의 역사를 궁극적인 목적지를 향해 '역동적으로 이끌고 몰아가시는' 전능한 통치력을 의미합니다.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에카디센, ἐκάθισεν):
구약의 제사장들은 죄를 씻기 위해 성소에 서서 끊임없이 일해야 했지만, 우리 주님은 십자가에서 모든 구원을 완벽하게 성취하셨기에 보좌에 영광스럽게 앉으셨습니다.
이 말씀은 선언합니다.
내 구원을 유지하기 위해 내가 애타게 진리를 붙들고 끙끙대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을 완성하시고 보좌에 앉으신 왕께서, 지금 이 순간에도 흔들리는 내 인생을 당신의 목적지를 향해 거침없이 이끌고(페로) 가십니다.
05. 결론

여러분.
지금 당신의 신앙은 예수님을 분석하고 쥐고 있으려는 피곤한 종교입니까, 아니면 나를 이끌고 가시는 압도적인 왕의 통치 아래 머무는 안식입니까?
오늘 살아계신 주님과 생생하게 교제하기 위해 오늘 우리는 다음 두 가지를 실천해 보길 원합니다.
1. '통제권'을 내려놓는 멈춤의 질문:
숨 막히는 현실 속에서 '내가 이 상황을 어떻게 통제하고 해결할까?'라는 강박이 밀려올 때, 하던 일을 멈추고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던져 보십시오.
"지금 내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목적지를 향해 이끌어 가시는(페로) 진짜 왕은 누구이신가?" 내가 쥐고 있던 종교적 통제권과 지식의 끈을 풀고, 보좌 우편에 앉으신 왕께 내 삶을 온전히 내어 맡기는 훈련입니다.
2. '개념'에서 '관계'로 나아가는 침묵 기도:
성경 지식이나 교리를 머리로 되뇌는 것을 잠시 멈추고, 오늘 단 5분이라도 아무 말 없이 주님의 임재 안에 가만히 머물러 보십시오. 예수님을 내가 연구할 대상이 아니라, 나를 사랑으로 통치하시는 살아있는 인격체로 마주하는 시간입니다.
침묵 속에서 나를 압도하시는 그분의 크심을 느낄 때, 우리의 굳어버린 신앙은 다시 펄떡이는 생명으로 진동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내가 진리를 쥐고 있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진리이신 그분이 나를 붙들고 가심을 신뢰하십시오.
박제된 신앙에서 벗어나, 지금 내 삶을 역동적으로 이끄시는(페로) 살아계신 주님을 마주하고 싶으시다면 유튜브 채널 '킹덤빌더즈'로 오십시오. 매일 밤 11시 30분, 압도적인 은혜 앞에 내 삶을 맡기는 생생한 교제가 우리를 기다립니다!
마무리 멘트와 다음 글 예고
히브리서를 통해 영광스러운 주님의 실체를 확인한 우리는, 이제 다시 평일의 사순절 여정으로 돌아가 세상 속에서 예수님이 어떻게 배척받고 오해받으셨는지를 마주하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