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순절 20일차, 마태복음 17장의 변화산 사건을 묵상합니다.
영광스러운 은혜를 내 마음대로 통제(초막)하려던 영적 도피주의를 회개하고, 내 얄팍한 계획을 멈춘 채 산 아래의 현실 속에서 오직 주님의 말씀에 압도당하는 참된 생명력을 나눕니다.
뜨거운 수련회나 특별 기도회가 끝나는 마지막 날 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비슷한 감정을 느낍니다.
"아, 내일이면 다시 저 지긋지긋한 직장으로, 숨 막히는 가정으로 돌아가야 하네. 그냥 이 은혜로운 공간에서 평생 예배만 드리고 살면 안 될까?"
누구나 고통스러운 현실을 피하고, 내가 은혜받은 그 황홀하고 안전한 공간에 영원히 머물고 싶어 합니다.
오늘 예수님을 따라 높은 산(변화산)에 올라간 제자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산 위에서 인간의 언어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압도적이고 눈부신 영적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황홀경 앞에서, 베드로는 인간이 가진 아주 이기적이고 교만한 종교성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맙니다.
01. 성경본문
마태복음 17장
1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2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3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4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02. 감출 수 없는 신적 본질을 드러내신 분

오늘 성경에서는 예수님을 '단순한 위인이 아니라, 감출 수 없는 하나님의 영광을 눈부시게 드러내신 창조주'로 선포합니다.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메타모르포오, μεταμόρφωσις)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이 원어는 단순히 옷을 갈아입거나 겉모습이 바뀐 위장(Masquerade)이 아닙니다.
예수님 내면에 있는 완전한 신성과 창조주의 본질이 밖으로 뚫고 나온 엄청난 사건입니다.
게다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인 모세(율법의 대표)와 엘리야(선지자의 대표)가 나타나 예수님과 대화를 나눕니다.
유명한 신학자 D.A. 카슨(D.A. Carson)의 통찰처럼, 예수님은 율법과 선지자 중 한 명이 아닙니다.
주님은 그 모든 구약의 예언을 완성하시는 유일한 실체이자 영광의 왕이십니다.
주님이 이 영광을 미리 보여주신 이유는, 산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는 가장 수치스러운 '십자가'의 길을 제자들이 능히 걸어갈 수 있도록 부활의 실체를 미리 당겨서 보여주신 완벽한 배려였습니다.
03. 십자가는 피하고, 영광스러운 은혜만 독점하려는 인간의 교만

반면 성경 주석들이 짚어내는 우리의 뼈아픈 모습은 '치열한 일상과 십자가는 회피한 채, 은혜를 내 맘대로 통제하려는 영적 도피주의'에 있습니다.
압도적인 영광을 본 베드로의 첫 반응을 보십시오.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내가 초막(σκηνή, 텐트)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 하나는 모세,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베드로의 마음 깊은 곳에는 두 가지 무서운 교만이 숨어 있었습니다.
첫째, 산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는 십자가의 고난은 건너뛰고, 산 위에서 달콤한 영광(초막절의 축제)만 평생 누리겠다는 '십자가 회피'입니다.
둘째, 만물을 덮는 하나님의 영광(메타모르포오)을 고작 자기가 만든 초라한 임시 텐트(초막) 안에 가두어 내 입맛대로 통제하고 독점하겠다는 '은혜의 사유화'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척하지만, 결국 내가 텐트를 짓고 주도권을 쥐어 예수님을 위대한 종교 영웅 중 하나로 소비하려는 지독한 이기심이었습니다.
04. 초막을 덮어버린 구름, 내가 주도하는 종교에서 '말씀을 듣는 생명'으로

베드로가 헛된 초막을 짓겠다고 횡설수설할 때, 하나님 아버지는 그 얄팍한 계획을 어떻게 중단시키시는지 주목해야 합니다.
R.T. 프랑스(R.T. France) 같은 주석가들은 본문 5절의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를 핵심으로 봅니다.
하나님은 베드로가 자기 열심에 취해 말을 끝내기도 전에,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찬란한 구름(쉐키나)으로 덮어버리시며 그의 입을 다물게 하십니다.
그리고 선언하십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개혁주의생명신학에서는 신비한 영적 체험이나 감정에 흠뻑 빠져 내가 주도하는 신앙을 가장 경계합니다.
신앙은 내가 텐트를 짓고 내 계획을 하나님께 브리핑하는 것이 아닙니다.
떠들던 입을 다물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적인 '말씀'에 압도당하여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진짜 생명은 황홀한 환상 속에 머무는 데 있지 않고, 그 말씀을 품고 산 아래의 먼지 나는 일상(십자가)으로 당당히 걸어 내려가는 교제 속에 있습니다.
05. 결론

여러분.
오늘 당신은 은혜받았던 감정의 온실 속에 초막을 짓고 내 계획만 떠들고 계십니까, 아니면 주님과 함께 당신을 필요로 하는 치열한 산 아래의 일상으로 내려가 십자가를 지고 계십니까?
사순절 20일차, 영적 안일함을 깨고 삶의 현장에서 예수의 생명으로 살아가기 위해 두 가지를 실천해 보길 원합니다.
1. '내가 주도하는 기도' 멈추기:
오늘 기도할 때, 내 계획(초막 셋을 짓겠다는 식의 요구)을 하나님께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것을 잠시 멈추십시오.
그리고 5분간 침묵하며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주님, 제가 말하기를 멈춥니다. 이제 주님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2. '영적 온실' 밖으로 한 걸음 내딛기:
나 혼자 성경을 읽고 은혜받는 안전한 자리에만 머물지 말고, 오늘 하루 직장이나 가정에서 내 헌신과 낮아짐이 필요한 '산 아래의 현실'을 찾아 작은 섬김(십자가)을 실천하십시오.
참된 생명은 산꼭대기의 황홀경 속에 박제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 생명은 먼지를 뒤집어쓰고 십자가를 져야 하는, 바로 지금 당신의 치열한 산 아래 일상 속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P.S. 킹덤빌더즈: 산 아래의 일상을 변화시키는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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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밤 11시 30분, 당신의 일상을 변화시키는 그분의 생생한 음성이 기다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