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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말씀묵상/고린도전서

[고린도전서 14장 묵상] 내 목소리를 내느라 질서를 깨뜨리진 않나요?

by 킹덤빌더 2026.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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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 시간이나 대화 중, 남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불쑥 끼어들어 내 주장을 펼친 적은 없으신가요?

"내 의견이 더 중요하고, 내 방식이 더 옳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우리는 기꺼이 무례해집니다.

 

교회 안에서도 성령의 인도하심이라는 핑계로 내 목소리를 높이며 공동체의 평안을 깨뜨리고 있지는 않은지, 나만 돋보이려는 이기적인 질서 파괴의 민낯을 정직하게 직면해 봅니다.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 가만히 스스로를 관찰해 보십시오. 남이 이야기할 때 진심으로 경청하기보다, '그다음 내가 무슨 멋진 말을 할까'를 궁리하고 있지 않나요?

그러다 틈이 보이면 여지없이 말을 끊고 들어가 대화의 주도권을 빼앗아 옵니다.

우리는 세상뿐만 아니라 신앙 공동체 안에서도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어 안달이 나 있습니다.

내 기도 소리가 가장 커야 하고, 내 봉사가 가장 돋보여야 하며, 내 깨달음이 제일 먼저 선포되어야 직성이 풀립니다.

남을 배려하는 질서보다는 내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 훨씬 중요한, 지독히 자기중심적인 관종. 이것이 바로 거룩함으로 포장된 우리의 찌질한 실존입니다.

 

01. 성경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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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4장

26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27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28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29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
30   만일 곁에 앉아 있는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으면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지니라
31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
32   예언하는 자들의 영은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33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함과 같이
34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35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
36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로부터 난 것이냐 또는 너희에게만 임한 것이냐
37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은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는 이 글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
38   만일 누구든지 알지 못하면 그는 알지 못한 자니라
39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40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

 

02. 자유를 핑계로 공동체를 무법지대로 만든 교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고린도전서 14:26)

 

1세기 고린도 교회 예배는 오늘날처럼 정형화된 순서가 아니라 성도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형태였습니다.

그런데 서로 "내가 성령의 감동을 받았다!"며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 예언과 방언을 쏟아냈습니다.

 

심지어 본문 34절의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말씀 역시 성차별적 규제가 아닙니다.

당시 여성들은 교육의 기회가 적었는데, 자유로운 복음의 분위기에 취한 일부 성도들이 예배 도중 불쑥불쑥 일어나 예언의 말씀을 향해 무질서한 질문을 던지며 공적인 예배의 흐름을 뚝뚝 끊어버린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합니다.

 

복음이 준 '자유'를 방종으로 착각하여, 타인에 대한 예의와 질서를 깡그리 무시해 버린 것입니다. C.S. 루이스는 명저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서 지옥을 '끊임없는 소음의 세계'로 묘사합니다.

악마들은 천국의 고요함과 음악을 혐오하며, 자기주장만 내세우는 시끄러운 소음으로 세상을 채우려 합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형제를 존중하여 '잠잠히 기다려주는 법(28, 30절)'을 잃어버린 채, 예배당을 마귀가 좋아하는 끔찍한 자기 과시의 소음 통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03. 억압이 아닌 생명의 화음을 빚어내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고린도전서 14:33)

우리는 흔히 '질서(탁시스, τάξις)'라고 하면 군대처럼 억압적이고 딱딱한 통제를 떠올립니다.

그러나 본문은 무질서(아카타스타시아, ἀκαταστασία)의 반대말을 통제나 억압이 아닌 '화평(에이레네, εἰρήνη)'이라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질서는 누군가를 찍어 누르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소리가 서로를 배려할 때 만들어지는 아름다운 교향곡과 같습니다.

팀 켈러 목사님은 "진정한 자유는 아무런 제약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나에게 가장 알맞은 제약'을 찾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물고기가 물이라는 제약 속에 있을 때 가장 자유롭게 헤엄치듯, 우리는 하나님이 정하신 사랑과 질서의 테두리 안에서 서로 양보할 때 가장 안전하고 풍성한 영광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혼란스러운 무법지대가 아니라, 따뜻한 질서 안에서 모두가 평안의 쉼을 누리길 원하십니다.

04. 십자가의 낮아짐으로 창조의 질서를 회복하신 은혜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 (고린도전서 14:40)

 

무질서와 혼돈(카오스)을 평정하고 질서(코스모스)를 부여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은 창세기 1장의 천지창조에서부터 시작된 구속사의 거대한 테마입니다.

흑암과 혼돈뿐이던 땅에 하나님이 말씀하시자, 해와 달과 생물들이 제자리를 찾는 '질서'가 잡혔고 그제야 세상은 '보시기에 심히 좋았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죄와 교만은 이 아름다운 피조 세계를 다시 약육강식의 혼란과 무질서로 망가뜨렸습니다.

 

이 망가진 창조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신약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남들 위로 올라가 호령하는 방식이 아니라 완전히 반대의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헨리 나우웬이 강조한 위대한 기독교의 영성, 바로 '하향성'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만물을 통제하실 수 있는 창조주이셨지만, 십자가라는 가장 낮고 수치스러운 자리로 스스로 내려가셨습니다.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심"으로,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는 우리의 시끄러운 교만을 잠잠하게 하셨습니다.

나를 내세우지 않고 기꺼이 생명을 내어주신 이 십자가의 낮아지심(체휼)만이, 엉망진창이 된 우리 삶의 무질서를 바로잡아 줍니다. 십자가에 엎드린 자는 더 이상 남을 짓밟고 일어서려 하지 않습니다.

기꺼이 내 순서를 양보하고, 입을 다물어 형제의 소리를 경청하는 가장 품위 있고 질서 있는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회복됩니다.

05. 결론

 

공동체의 질서는 규칙을 강요해서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창조주이시면서도 기꺼이 입을 다무시고 십자가의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신 예수님의 '하향성'을 본받을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내 주장을 멈추고 형제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것, 그것이 가장 영적이고 품위 있는 예배자의 모습입니다.

우리 함께 조금 더 예수님 닮아가기 위해 일상에서 실천해 봅시다.

  • 하나님을 향한 고백: 오늘 하루, 남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지 않고 내 생각과 깨달음만을 고집하며 공동체의 평안을 깼던 찌질한 무례함을 십자가 앞에 내어놓읍시다. "주님, 나만 옳다는 교만으로 화평의 질서를 깨뜨린 저를 용서하소서. 십자가에서 말없이 자기를 내어주신 예수님의 그 거룩한 하향성으로 내 시끄러운 자아를 잠잠하게 하옵소서."
  • 이웃을 향한 실천: 오늘 하루, 대화 중에 불쑥 끼어들고 싶은 강력한 충동이 들 때 '딱 3초만 입을 다물고 삼키는 연습'을 해보십시오. 내 지식으로 상대를 가르치고 싶은 마음을 십자가에 못 박고, 끝까지 경청하며 고개를 끄덕여 주는 것입니다. 내 말할 권리를 포기하고 이웃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그 짧은 침묵이, 무질서한 우리 일상에 하나님의 평안을 불러오는 가장 위대한 실천입니다.

 

"난 왜 이렇게 남들 앞에 서지 못하면 불안하고, 무시당하는 것 같아 화가 날까요?"

스포트라이트에서 밀려나는 것 같아 조바심이 나시나요?

가장 높은 왕관은 남을 밟고 올라서는 시끄러운 자의 머리가 아니라, 기꺼이 자신을 낮추어 형제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온유한 자의 머리 위에 씌워집니다.

 

유튜브 채널 '킹덤빌더즈' 오늘 밤 11시 30분, 내 목소리를 높이려는 조바심을 내려놓고 십자가의 깊고 따뜻한 침묵 안에서 안식을 누리는 자리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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