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려운 이웃을 돕거나 헌금을 내야 할 때, 순간적으로 지갑 앞에서 멈칫하며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기를 두드려 본 적 있으신가요? '이 돈이면 우리 아이 학원비가 얼만데, 이 돈이면 내가 그토록 사고 싶었던 물건을 살 수 있는데…'
우리는 입으로는 주님이 내 삶의 주인이라고 고백하지만, 막상 내 통장의 잔고가 줄어드는 일 앞에서는 한없이 인색해지고 맙니다. 돈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고, 내게 당장 이익이 돌아오지 않으면 단돈 만 원도 내놓기 아까워하는 우리의 찌질한 재물관을 고린도전서 16장의 '연보(헌금)' 말씀을 통해 정직하게 직면해 봅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식사를 대접하거나 돈을 쓸 때, 무의식중에 '내가 이 사람에게 돈을 쓰면 나중에 나에게 어떤 유익이 돌아올까?'를 치밀하게 계산합니다.
내 평판을 높여줄 사람, 내 인맥에 도움이 될 사람에게는 기꺼이 지갑을 열지만, 나에게 아무런 보답도 해줄 수 없는 가난하고 이름 없는 사람 앞에서는 철저히 눈을 감아버립니다.
헌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이렇게 바쳤으니, 하나님이 나중에 더 크게 뻥튀기해서 갚아주시겠지?"라는 투자와 보상 심리가 깔려 있습니다.
돈을 하나님보다 더 굳게 믿고 의지하며, 철저히 내 배만 불리려는 이 지독한 탐욕. 이것이 거룩한 척 포장된 우리의 찌질한 실존입니다.
01. 성경본문
고린도전서 16장
1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2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3 내가 이를 때에 너희가 인정한 사람에게 편지를 주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
4 만일 나도 가는 것이 합당하면 그들이 나와 함께 가리라
5 내가 마게도냐를 지날 터이니 마게도냐를 지난 후에 너희에게 가서
6 혹 너희와 함께 머물며 겨울을 지낼 듯도 하니 이는 너희가 나를 내가 갈 곳으로 보내어 주게 하려 함이라
7 이제는 지나는 길에 너희 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만일 주께서 허락하시면 얼마 동안 너희와 함께 머물기를 바람이라
8 내가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머물려 함은
9 내게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렸으나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라
10 디모데가 이르거든 너희는 조심하여 그로 두려움이 없이 너희 가운데 있게 하라 이는 그도 나와 같이 주의 일을 힘쓰는 자임이라
11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를 멸시하지 말고 평안히 보내어 내게로 오게 하라 나는 그가 형제들과 함께 오기를 기다리노라
12 형제 아볼로에 대하여는 그에게 형제들과 함께 너희에게 가라고 내가 많이 권하였으되 지금은 갈 뜻이 전혀 없으나 기회가 있으면 가리라
02. 보상이 없는 헌신은 거부했던 고린도의 거래 문화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고린도전서 16:1-2)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요청한 '연보(로기아, λογία)'는 단순한 교회 운영비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극심한 기근으로 굶주려 죽어가던 예루살렘 교회의 유대인 성도들을 돕기 위한 긴급 구제 헌금이었습니다.
하지만 1세기 고린도와 같은 로마 제국의 도시들은 철저한 '후견인-고객' 문화가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돈을 베푸는 것은 곧 내 명예를 드높이고 상대방을 나의 지배 아래 두는 '권력 행위'였습니다.
그러니 한 번도 본 적 없는, 심지어 이방인들을 은근히 무시하던 유대인들을 위해 돈을 내라는 바울의 요구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도무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팀 켈러(Timothy Keller) 목사님은 인간의 이런 본성을 향해 "돈은 인간이 가장 마지막까지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는 최후의 우상"이라고 꼬집었습니다.
내 이름이 빛나지 않고, 내게 아무런 보답도 돌아오지 않는 곳에 내 피 같은 돈을 흘려보내는 것은 타락한 인간의 이기심으로는 결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03. 돈이라는 우상을 깨뜨리고 하나 됨을 빚으시는 아버지

"내가 이를 때에 너희가 인정한 사람에게 편지를 주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 (고린도전서 16:3)
하나님은 돈이 부족해서 우리에게 헌금을 요구하시는 가난한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구제와 연보를 명령하신 이유는, 우리 영혼을 파먹는 '돈이라는 우상'으로부터 우리를 해방하시기 위함입니다.
존 칼빈(John Calvin)은 '청지기 의식'을 강조하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남들보다 더 많은 재물을 주신 것은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라, 가난한 이웃에게 그것을 흘려보내는 유통의 통로로 우리를 부르셨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바울은 이 연보를 '은혜(카리스, χάρις)'라고 부릅니다.
이방인인 고린도 교인들의 돈이 유대인인 예루살렘 성도들의 굶주린 배를 채울 때, 결코 섞일 수 없었던 두 민족이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하나의 교회'로 묶이는 위대한 기적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헌신을 사용하셔서 찢어진 세상을 꿰매고 회복시키시는 놀라운 섭리의 아버지이십니다.
04. 구약의 만나를 넘어 친히 가난해지신 십자가의 은혜

"내게는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렸으나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라" (고린도전서 16:9)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먹이시고 돌보시는 이 구속사의 섭리는 구약의 '만나' 사건과 정확히 병행됩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탐욕을 부려 만나를 내일 먹기 위해 몰래 쌓아두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모두 썩게 만드셨습니다.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람이 없게(출 16:18)"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법칙이었습니다.
이 광야의 법칙은 신약에 이르러,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가장 찬란하게 완성되었습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은 이 연보의 본질을 이렇게 선포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온 우주의 주인이셨지만, 헨리 나우웬(Henri Nouwen)의 통찰처럼 기꺼이 '하향성'의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우리의 영적 파산 상태와 비참함을 온몸으로 체휼(쉼파데오, συμπαθέω)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철저히 가난해지셨고, 자신의 물과 피를 한 방울도 남김없이 연보로 내어주셨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내가 하나님께 무언가를 바쳤기 때문이 아니라,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털어주신 예수님의 그 엄청난 희생에 '접붙임' 당했기 때문입니다. 이 십자가의 빚진 자 된 마음을 깨달을 때, 우리는 비로소 움켜쥐었던 손을 펴고 계산기 없이 이웃을 향해 내 것을 흘려보낼 수 있습니다.
05. 결론

신앙은 내 통장 잔고를 지키며 하나님의 축복을 얻어내는 재테크가 아닙니다.
만물의 주인이시면서도 나를 살리기 위해 기꺼이 가장 가난한 자가 되신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기억하며, 내게 주어진 재물을 이웃을 향해 기쁘게 흘려보내는 훈련입니다.
우리 함께 조금 더 예수님 닮아가기 위해 일상에서 실천해 봅시다.
- 하나님을 향한 고백: 오늘 하루, 내 지갑이 얇아지는 것이 두려워 돈을 하나님 자리에 올려놓고 전전긍긍했던 물질의 우상숭배를 십자가 앞에 내어놓읍시다. "주님, 내 것인 양 돈을 움켜쥐고 이웃의 아픔을 외면했던 이기적인 청지기였음을 회개합니다. 나를 위해 기꺼이 생명을 내어주신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가 내 굳은 손을 펴게 하옵소서."
- 이웃을 향한 실천: 이번 주, 내가 평소에 먹는 맛있는 커피나 간식 비용을 딱 한 번만 아껴서,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몰래 흘려보내 보십시오. 평소 눈여겨보았던 어려운 이웃의 계좌로 익명으로 송금하거나, 이름 없는 구제 헌금 봉투에 담아 올려보십시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권리를 포기하고 조용히 흘려보내는 그 작은 돈이, 돈의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는 첫걸음입니다.
"열심히 일해서 번 내 돈인데, 왜 남을 위해 써야 하는지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으로는 너무 아까워요."
혹시 헌금이나 구제 앞에서 자꾸만 인색해지는 내 모습에 실망하셨나요?
유튜브 채널 '킹덤빌더즈' 오늘 밤 11시 30분, 움켜쥐려는 세상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기꺼이 가난해지신 예수님의 풍요로운 식탁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성경말씀묵상 > 고린도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고린도전서 에필로그] 눈에 보이는 문제가 하나님보다 훨씬 크게 느껴지나요? (1) | 2026.06.25 |
|---|---|
| [고린도전서 16장 묵상] 주님이 당장 오신다면 진짜 반가우신가요? (1) | 2026.06.24 |
| [고린도전서 15장 묵상] 십자가 희생은 피하고 영광만 바라고 있나요? (0) | 2026.06.22 |
| [고린도전서 15장 묵상] 천국보다 이 땅의 축복에 더 목숨 걸고 있진 않나요? (0) | 2026.06.20 |
| [고린도전서 15장 묵상] 내 스펙과 노력으로 나를 증명하려 애쓰고 있진 않나요? (1) | 2026.06.19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