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부럽지 않은 의식주와 안락한 환경을 누리면서도, 조금만 내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감사하기는커녕 끝없는 불평과 원망을 쏟아낸 적은 없으신가요? 우리는 흔히 부족해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 이미 손에 쥐여주신 풍성한 은혜를 망각한 채 더 많은 욕망을 채우지 못해 영혼의 굶주림을 자초하곤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넉넉히 주셨을 때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섬기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은 채 쇠 멍에를 메고 적군에게 끌려가게 되며 포위된 성읍 안에서 자기 자녀의 살을 몰래 뜯어먹는 아비규환의 참상을 겪게 될 것이라 경고하셨던 하나님. 감사를 잃어버린 풍요가 도달하는 가장 처절한 파멸의 밑바닥을 신명기 28장의 본문으로 정직하게 대면해 봅니다.
목차
03. 감사의 결여가 낳은 쇠 멍에와 자녀를 먹는 참상, 아바드와 마초르
04. 탐욕의 불평을 멈추고 복음의 멍에를 짊어지는 법
01. 성경본문
신명기 28장
36 여호와께서 너와 네가 세울 네 임금을 너와 네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나라로 끌어 가시리니 네가 거기서 목석으로 만든 다른 신들을 섬길 것이며
37 여호와께서 너를 끌어 가시는 모든 민족 중에서 네가 놀람과 속담과 비방거리가 될 것이라
38 네가 많은 종자를 들에 뿌릴지라도 메뚜기가 먹으므로 거둘 것이 적을 것이며
39 네가 포도원을 심고 가꿀지라도 벌레가 먹으므로 포도를 따지 못하고 포도주를 마시지 못할 것이며
40 네 모든 경내에 감람나무가 있을지라도 그 열매가 떨어지므로 그 기름을 네 몸에 바르지 못할 것이며
41 네가 자녀를 낳을지라도 그들이 포로가 되므로 너와 함께 있지 못할 것이며
42 네 모든 나무와 토지 소산은 메뚜기가 먹을 것이며
43 너의 중에 우거하는 이방인은 점점 높아져서 네 위에 뛰어나고 너는 점점 낮아질 것이며
44 그는 네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그에게 꾸어주지 못하리니 그는 머리가 되고 너는 꼬리가 될 것이라
45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지 아니하고 네게 명령하신 그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므로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와서 너를 따르고 네게 이르러 마침내 너를 멸하리니
46 이 모든 저주가 너와 네 자손에게 영원히 있어서 표징과 훈계가 되리라
47 네가 모든 것이 풍족하여도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48 네가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모든 것이 부족한 중에서 여호와께서 보내사 너를 치게 하실 적군을 섬기게 될 것이니 그가 철 멍에를 네 목에 메워 마침내 너를 멸할 것이라
49 곧 여호와께서 멀리 땅 끝에서 한 민족을 독수리가 날아오는 것 같이 너를 치러 오게 하시리니 이는 네가 그 언어를 알지 못하는 민족이요
50 그 용모가 흉악한 민족이라 노인을 보살피지 아니하며 유아를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51 네 가축의 새끼와 네 토지의 소산을 먹어 마침내 너를 멸망시키며 또 곡식이나 포도주나 기름이나 소의 새끼나 양의 새끼를 너를 위하여 남기지 아니하고 마침내 너를 멸절시키리라
52 그들이 전국에서 네 모든 성읍을 에워싸고 네가 의뢰하는 높고 견고한 성벽을 다 헐며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의 모든 성읍에서 너를 에워싸리니
53 네가 적군에게 에워싸이고 맹렬한 공격을 받아 곤란을 당하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자녀 곧 네 몸의 소생의 살을 먹을 것이라
54 너희 중에 온유하고 연약한 남자까지도 그의 형제와 그의 품의 아내와 그의 남은 자녀를 미운 눈으로 바라보며
55 자기가 먹는 그 자녀의 살을 그 중 누구에게든지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 적군이 네 모든 성읍을 에워싸고 맹렬히 너를 쳐서 곤란하게 하므로 아무것도 그에게 남음이 없는 까닭일 것이며
56 또 너희 중에 온유하고 연약한 부녀 곧 온유하고 연약하여 자기 발바닥으로 땅을 밟아 보지도 아니하던 자라도 자기 품의 남편과 자기 자녀를 미운 눈으로 바라보며
57 자기 다리 사이에서 나온 태와 자기가 낳은 어린 자식을 남몰래 먹으리니 이는 네 적군이 네 생명을 에워싸고 맹렬히 쳐서 곤란하게 하므로 아무것도 얻지 못함이리라
[오늘의 핵심 원어 해설] 아바드 (Avad)와 마초르 (Matsor)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지(아바드) 아니함으로... 네 모든 성읍을 에워싸고(마초르)" (신명기 28장 47절, 52절)
오늘 본문을 관통하는 두 기둥은 참된 신앙의 척도인 예배적 섬김 아바드 (아바드, עָבַד)와 감사를 잃은 자를 가두어 파멸시키는 포위망 마초르 (마초르, מָצוֹר)입니다.
아바드는 내게 주어진 모든 자원과 생명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인정하고 자원하는 기쁨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거룩한 제사입니다. 그러나 이 거룩한 아바드를 저버릴 때, 인간은 반드시 사탄과 세상의 쇠 멍에 아래서 비참하게 아바드(종노릇)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초르는 내가 의지하던 세상의 스펙과 물질의 견고한 성벽이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도리어 나를 질식시키는 감옥이 되는 비참한 고립입니다.
개혁주의 신학의 거장인 존 칼빈 (John Calvin)은 그의 신명기 강해에서 다음과 같이 단언했습니다.
"인간은 풍요로울 때 하나님을 찬양하기보다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은혜를 짓밟는 가장 완악한 괴물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자녀를 삶아 먹는 끔찍한 형벌까지 묘사하신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적 사랑이 파괴된 곳에서는 인간성 자체가 완전히 마비되어, 짐승보다 더 잔인하게 자기 피붙이마저 삼키는 지옥이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백성들과 맺으신 바리트 (바리트, בְּרִית), 즉 모세 언약은 이 아바드(섬김)의 기쁨을 회복하고 마초르(포위)의 절망 속에서 내 헛된 성벽을 부수고 돌아올 때 비로소 참된 생명의 길을 다시 열어줍니다.
02. 풍요 속에서도 투덜대며 감사를 잃어버린 찌질함

"네가 모든 것이 풍족하여도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네가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모든 것이 부족한 중에서 여호와께서 보내사 너를 치게 하실 적군을 섬기게 될 것이니 그가 철 멍에를 네 목에 메워 마침내 너를 멸할 것이라 곧 여호와께서 멀리 땅 끝에서 한 민족을 독수리가 날아오는 것 같이 너를 치러 오게 하시리니... 그들이 전국에서 네 모든 성읍을 에워싸고 네가 의뢰하는 높고 견고한 성벽을 다 헐며... 네가 대적에게 에워싸이고 맹렬한 공격을 받아 곤란을 당하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자녀 곧 네 몸의 소생의 살을 먹을 것이라" (신명기 28장 47~49절, 52~53절)
모세는 가나안 정복을 앞둔 출애굽 2세대를 향해 신명기 28장의 저주 목록 중에서도 가장 모골이 송연해지는 포로 됨의 비극과 극한의 포위 공격 속 참상을 선포합니다. 백성이 왕과 함께 알지 못하던 이방 나라로 끌려가 목석 우상을 섬기며 천하 만민 중에 속담거리와 조롱거리가 될 것입니다. 많은 종자를 뿌려도 메뚜기가 먹어치우고, 포도원을 가꾸어도 벌레가 갉아먹으며 열매를 거두지 못합니다. 이 모든 파멸의 핵심 원인은 47절에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모든 것이 풍족함에도 불구하고 기쁨과 감사로 여호와를 섬기지 않은 배은망덕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감사 없는 풍요를 거두어 가시고, 멀리서 언어가 통하지 않는 독수리 같은 사나운 민족을 불러와 견고한 성벽을 에워싸게 하십니다. 성읍이 포위되어 극한의 굶주림에 처하자, 온유하고 고상하던 남녀들조차 눈이 악해져 자기 살붙이인 자녀를 잡아먹으면서도 남은 가족에게 한 조각도 나누어주지 않으려 움켜쥐는 지옥 같은 타락을 겪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베풀어주신 셀 수 없는 은혜와 일상의 안락함 속에서도 감사는 잃어버린 채, 남과 비교하며 더 갖지 못했다고 투덜거리는 우리의 찌질한 실존을 직격합니다. "왜 이것밖에 안 주냐", "남들은 저렇게 잘 나가는데 내 꼴은 왜 이 모양이냐"며 끊임없이 불평을 쏟아내고, 손에 쥔 풍요를 오직 내 쾌락과 안전만을 위해 소비하다가 영혼의 쇠 멍에를 자초하는 영적 배은망덕입니다. 주신 복을 기쁨으로 섬기지 못한 대가로 내면의 지옥과 영적 기근이 닥쳐와, 결국 가장 가까운 가족과 이웃의 살점을 뜯어먹듯 서로를 물어뜯는 이 비열함이 바로 타락한 우리 내면의 서글픈 민낯입니다.
03. 감사의 결여가 낳은 쇠 멍에와 자녀를 먹는 참상, 아바드와 마초르

신명기 28장 36절부터 57절은 언약 백성이 감사를 잃어버리고 자기를 위해 쌓아 올린 견고한 성벽이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지며, 하나님의 통치를 벗어난 인간의 잔인성이 어디까지 치닫는가를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첫째, 기쁨의 섬김을 버린 자에게 임하는 쇠 멍에의 노예살이입니다.
47절과 48절에서 하나님을 섬기지 않은 자는 적군을 아바드 (아바드, עָבַד, 섬기다, 종노릇하다)하게 됩니다. 섬김의 대상이 하나님에서 잔혹한 적군으로 바뀌는 비극입니다. 목에 메워지는 철 멍에의 원어는 올 바르젤 (올 바르젤, עֹל בַּרְזֶל)이며, 이는 결코 벗을 수 없는 무자비한 영적·육체적 속박을 의미합니다.
둘째, 타인의 긍휼을 기대할 수 없는 극한의 포위 공격입니다.
49절과 52절에서 독수리처럼 날아오는 이방 민족이 모든 성읍을 에워쌉니다. 포위의 원어는 마초르 (마초르, מָצוֹר)이며, 이는 생명의 공급이 완전히 끊긴 채 서서히 말라 죽어가는 갇힘의 형벌입니다. 스스로를 지켜줄 것이라 맹신했던 높고 견고한 성벽은 마초르(포위) 앞에서 아무런 방패가 되지 못했습니다.
셋째, 가장 천륜적인 사랑마저 파괴하는 탐욕의 광기입니다.
53절부터 57절까지 굶주림에 눈이 멀어 자기 자녀의 고기를 먹는 비극이 묘사됩니다. 평소에 섬세하고 온유하던 자들조차 눈이 라아 (라아, רָע, 악한, 인색한)해져서, 자신이 삶아 먹는 자녀의 고기를 아내나 남편, 다른 자녀에게조차 숨기며 홀로 독식하려 듭니다. 언약의 은혜가 사라진 인간 심령의 밑바닥이 얼마나 흉측한 식인마와 같은지를 고발합니다. 모세는 이 구속사적 진리를 백성들의 심령에 풀어서 가르칩니다(바아르).
04. 십자가에서 영적 굶주림과 쇠 멍에를 대신 메신 예수님

고대 근동 사회에서 제국들이 정복지의 성읍을 포위하여 잔혹하게 굶겨 죽이고 노예로 끌고 가던 야만적인 제국주의 전쟁과, 모압 평야에서 모세가 차세대 백성들에게 선포하는(바아르) 신명기 28장의 메시지 사이에는 심오한 신학적 진보가 존재합니다.
당시 이방 국가들은 외적의 침략과 성읍 포위를 '군사력의 열세나 적국 신들의 강함 때문에 당하는 불가항력적 패배'로 여겼습니다.
반면 신명기 28장 36~57절은 독수리 같은 적군의 침략과 마초르(포위망)의 원인을 군사력의 문제가 아니라, '풍요 속에서 감사를 잃어버리고 하나님을 섬기지(아바드) 않은 영적 반역'으로 명쾌하게 규명합니다. 견고한 성벽이 허물어지고 자녀를 먹는 비극은 백성들이 맹신하던 물질주의와 안보 우상의 허상을 적나라하게 폭로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수술대였습니다. 운명론적 비관주의를 깨부수고, 모든 풍요의 자리에서 기쁨의 섬김과 감사를 회복해야만 공동체가 보존된다는 성숙한 언약적 도덕성으로 진보한 것입니다.
이러한 차이는 신명기 28장이 구약 백성의 역사의식을 눈앞의 군사적 힘에서 건져내어, 하나님 앞에서의 내면적 감사와 약자를 향한 천륜의 사랑을 지켜내는 주도적인 하나님 나라 백성의 청지기 영성으로 끌어올리는 위대한 구속사의 진보임을 증명합니다.
05. 삶으로 증명하는 순종의 결단과 일상의 실천사항

구약 신명기 28장에서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아 목에 메어야 했던 쇠 멍에(올 바르젤)와, 포위된 성읍(마초르) 안에서 겪어야 했던 처절한 기근과 자녀의 죽음은, 신약에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의 성육신과 십자가의 대속, 그리고 내주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완벽하게 완성됩니다.
훗날 이스라엘 역사는 신명기 28장의 예언대로 북이스라엘 사마리아 성의 포위와(열왕기하 6장), 남유다 예루살렘의 바벨론 포위, 그리고 서기 70년 로마 티투스 장군의 포위 속에서 실제로 부모가 자식을 삶아 먹는 끔찍한 파멸을 겪었습니다. 이 모든 아루르(저주)는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 배만 채우려던 우리 인류가 영원한 지옥에서 겪어야 할 형벌의 모형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받아야 할 모든 쇠 멍에와 굶주림의 저주를 짊어지시고 골고다 언덕으로 나아가셨습니다! 주님은 십자가라는 가장 잔인하고 무거운 쇠 멍에를 목에 메셨고, "내가 목마르다"(요한복음 19:28)고 절규하시며 우리 대신 영적·육체적 갈증과 헐벗음을 온몸으로 감당하셨습니다!
더욱 놀라운 복음의 신비는, 타락한 부모들이 굶주림에 눈이 멀어 제 자식의 살을 먹었던 그 흉측한 저주의 자리에,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유일하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살을 찢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양식으로 내어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6장에서 선포하셨습니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요한복음 6:55, 54).
주님은 십자가에서 당신의 온몸을 찢으사 생명의 떡이 되어주심으로, 마초르(포위망)에 갇혀 굶어 죽어가던 우리를 영원한 풍요와 구원으로 건져내셨습니다!
구약의 백성들은 쇠 멍에의 공포 속에서 신음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사 성령의 내주로 우리 마음에 찾아오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태복음 11:28, 30). 돌판이 아닌 우리 마음에 심겨진 말씀이 되신 성령 하나님은, 탐욕스러운 불평의 쇠 멍에를 부수어 버리시고, 주님이 주시는 가벼운 은혜의 멍에를 메고 매사에 기쁨과 감사로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성령의 열매를 주도적으로 맺게 하십니다.
06. 결론

섬기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쇠 멍에를 메고 적군에게 끌려가 자녀를 먹는 비극을 자초하지 말라고 준엄하게 경고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이유는, 손에 쥔 풍요를 당연하게 여기며 남과 비교하다가 끝없는 탐욕의 노예로 전락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매일 누리는 건강과 식탁, 가족의 평안을 당연한 권리로 착각하며 입만 열면 투덜대던 우리의 찌질한 배은망덕을 십자가 앞에 철저히 매장해야 합니다. 나를 영원한 기근과 쇠 멍에에서 건져내시고 은혜의 언약 바리트 (바리트, בְּרִית)를 맺어주신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을 기억하며, 내게 주신 자유의지로 오늘 내 삶의 자리에서 불평을 멈추고 자원하는 기쁨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아바드) 주도적 감사를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 함께 조금 더 예수님 닮아가기 위해 일상에서 실천해 봅시다.
- 하나님을 향한 고백: 오늘 하루, 먹을 양식과 따뜻한 보금자리, 일터와 가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것을 갖지 못했다고 불평하며 기쁨 없는 예배와 메마른 섬김(아바드)을 드렸던 영적 게으름을 회개합시다. "주님, 십자가에서 쇠 멍에를 대신 메시고 살과 피를 찢어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먹여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내 안의 끝없는 불평과 탐욕을 십자가에 못 박사오니, 내 마음에 심겨진 십자가 복음을 따라 지극히 작은 일상 속에서도 감사를 고백하며 기쁨으로 주님을 섬기게 하옵소서."
- 이웃을 향한 실천: 오늘 하루, 가정이나 직장, 공동체 안에서 스트레스와 결핍을 핑계로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부하 직원, 동료들에게 날 선 말을 쏟아내며 그들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영적 식인 행위를 즉시 멈추십시오. 내가 가진 물질과 시간의 견고한 성벽 뒤에 숨어 타인의 곤경을 외면하지 말고, 오히려 내 것을 쪼개어 영적·육체적 결핍에 처한 이웃들에게 예수님의 마음으로 따뜻한 밥 한 끼를 대접하십시오. 세상의 각박한 생존 경쟁 속에서 영혼이 포위된 채(마초르) 불안과 원망으로 질식해 가는 이웃이 있다면, 차가운 훈계 대신 "주님의 십자가 사랑 안에 참된 만족과 쉼이 있다"는 복음의 확신을 내 삶의 밝은 미소와 따뜻한 나눔으로 증언해 주십시오. 마음에 심겨진 은혜를 일상의 온전한 감사와 이웃을 살리는 나눔으로 증명해 내는 그 능동적인 결단이, 메마른 일상 한복판에 하나님 나라의 영광스러운 잔치를 선포하는 첫걸음입니다.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왜 마음은 늘 쫓기듯 불안하고, 조금만 틀어져도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날카로운 가시를 곤두세우며 서로의 살을 뜯어먹듯 싸우게 될까요? 내 목을 짓누르는 이 무거운 삶의 멍에는 도대체 언제 벗어날 수 있을까요?" 혹시 감사를 잃어버린 채 영혼의 지독한 결핍과 고립감 속에 갇혀 계시진 않나요? 세상은 더 많이 쌓아야 평안하다고 속이지만, 십자가에서 우리의 쇠 멍에를 부수시고 당신의 살을 참된 양식으로 내어주신 예수님을 만날 때 비로소 진정한 감사의 샘물이 터져 나옵니다!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우리 마음에 심겨진 복음은 모든 탐욕의 족쇄를 풀고 참된 부요함으로 인도하는 생명의 능력입니다.
유튜브 채널 '킹덤빌더즈' 오늘 밤 11시 30분, 내 비루한 불평과 쇠 멍에의 사슬을 시원하게 끊어버리고, 기쁨의 예배자로 당당히 일어서는 영광스러운 회복의 자리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성경말씀묵상 > 신명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신명기 29장 묵상] 왜 기적을 수없이 보고도 깨닫는 마음이 열리지 않을까요? (0) | 2026.10.06 |
|---|---|
| [신명기 28장 묵상] 왜 하나님은 다시 애굽의 노예 시장으로 되돌리실까요? (0) | 2026.10.05 |
| [신명기 28장 묵상] 왜 대적에게 쫓기고 대낮에도 더듬는 영적 맹인이 될까요? (0) | 2026.10.02 |
| [신명기 28장 묵상] 왜 하는 일마다 막히고 하늘이 놋처럼 굳어버릴까요? (0) | 2026.10.01 |
| [신명기 28장 묵상] 왜 하나님은 말씀 순종 뒤에 따라오는 복을 약속하실까요? (1) | 2026.09.3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