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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말씀묵상/신명기

[신명기 20장 묵상] 왜 하나님은 평화의 제안과 완전한 진멸을 동시에 명하실까요?

by 킹덤빌더 2026.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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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과 싸움의 자리에서 먼저 평화와 화해의 손을 내밀기보다 내 자존심을 세우며 무조건 끝장을 보려 하거나, 반대로 절대로 타협해서는 안 될 치명적인 죄의 습관 앞에서는 어설픈 동정심을 발휘해 슬그머니 뒤로 물러선 적은 없으신가요? 우리는 흔히 이웃과의 관계에서는 잔인한 보복과 정죄를 즐기면서도, 내 영혼을 갉아먹는 은밀한 죄악 앞에서는 관대한 척 타협하곤 합니다. 하지만 먼 성읍에는 먼저 화평을 선포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명하시면서도, 가나안 본토 족속은 죄의 전염을 막기 위해 호흡 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고 진멸하라 엄히 명하셨던 하나님. 화평을 베풀 대상과 철저히 도려내야 할 죄악을 명확히 가르는 진짜 믿음의 분별력을 신명기 20장의 본문으로 정직하게 대면해 봅니다.

 

 

 

 

01. 성경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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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20장

 

10   네가 어떤 성읍으로 나아가서 치려 할 때에는 그 성읍에 먼저 화평을 선언하라
11   그 성읍이 만일 화평하기로 회답하고 너를 향하여 성문을 열거든 그 모든 주민들에게 네게 조공을 바치고 너를 섬기게 할 것이요
12   만일 너와 화평하기를 거부하고 너를 대적하여 싸우려 하거든 너는 그 성읍을 에워쌀 것이며
13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네 손에 넘기시거든 너는 칼날로 그 안의 남자를 다 쳐죽이고
14   너는 오직 여자들과 유아들과 가축들과 성읍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을 너를 위하여 탈취물로 삼을 것이며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적군에게서 빼앗은 것을 먹을지니라
15   네가 네게서 멀리 떠난 성읍들 곧 이 민족들에게 속하지 아니한 성읍들에게는 이같이 행하려니와
16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이 민족들의 성읍에서는 호흡 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지니
17   곧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네가 진멸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명령하신 대로 하라
18   이는 그들이 그 신들에게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을 너희에게 가르쳐 본받게 하여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게 할까 함이니라
19   너희가 어떤 성읍을 오랫동안 에워싸고 그 성읍을 쳐서 점령하려 할 때에도 도끼를 둘러 그 곳의 나무를 찍어내지 말라 이는 너희가 먹을 것이 될 것임이니 찍지 말라 들의 수목이 사람이냐 너희가 어찌 그것을 에워싸겠느냐
20   다만 과목이 아닌 수목은 찍어내어 너희와 싸우는 그 성읍을 치는 기구를 만들어 그 성읍을 함락시킬 때까지 쓸지니라

 

[오늘의 핵심 원어 해설] 샬롬 (Shalom)과 헤렘 (Cherem)

"먼저 화평을(샬롬) 선언하라... 가나안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네가 진멸하되(헤렘)" (신명기 20장 10절, 17절)

 

오늘 본문을 관통하는 두 기둥은 하나님의 긍휼을 담은 샬롬 (샬롬, שָׁלוֹם)과 공의의 엄중함을 담은 헤렘 (헤렘, חֵרֶם)입니다.

샬롬은 세상의 피 흘림과 보복의 악순환을 멈추고 하나님의 생명 통치 안으로 초청하는 선행된 자비입니다. 반면 헤렘은 언약 백성의 생명을 좀먹는 가증한 우상과 부패한 죄의 싹을 아픔을 딛고 도려내는 거룩한 결단입니다.

개혁주의 신학의 거장인 존 칼빈 (John Calvin)은 그의 신명기 강해에서 다음과 같이 단언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을 진멸하라 명하신 것은 잔인한 피 흘림을 기뻐하셔서가 아닙니다. 온전한 거룩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죄의 전염원을 철저히 차단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이웃을 향해서는 온유한 화평을 품어야 하지만, 영혼을 파멸로 이끄는 죄악을 향해서는 단 한 치의 자비도 베풀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백성들과 맺으신 바리트 (바리트, בְּרִית), 즉 모세 언약은 이 샬롬의 화평과 헤렘의 성결이 온전히 조화를 이룰 때 약속의 땅 한복판에서 참된 생명력을 유지합니다.

 

 

02. 이웃에겐 잔인하고 죄와는 타협하는 이중적 찌질함

"네가 어떤 성읍으로 나아가서 치려 할 때에는 그 성읍에 먼저 화평을 선언하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이 민족들의 성읍에서는 호흡 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지니 곧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네가 진멸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명령하신 대로 하라 이는 그들이 그 신들에게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을 너희에게 가르쳐 본받게 하여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게 할까 함이니라" (신명기 20장 10절, 16~18절)

 

모세는 가나안 정복 전쟁의 세부적인 전투 수칙을 선포하며, 가나안 밖의 원거리 성읍을 대하는 태도와 가나안 본토 족속을 대하는 태도를 엄격하게 구분합니다. 먼 성읍을 칠 때는 반드시 먼저 화평을 선언하여 그들이 평화를 받아들이면 살육하지 말고 조공을 바치는 화친의 관계를 맺어야 했습니다. 성을 포위할 때조차 먹을 수 있는 과일나무는 도끼로 찍어내지 말고 보존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기업으로 주신 가나안 땅 안의 타락한 여섯 족속에 대해서는 호흡 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고 완전히 진멸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가나안의 음란하고 가증한 우상 숭배 문화가 백성들의 심령 안으로 침투하여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괴하는 영적 바이러스가 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것은 연약한 이웃과 지체들의 작은 실수 앞에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화평을 거절하며 잔인한 비난의 칼날을 휘두르면서도, 정작 내 영혼을 썩어 문드러지게 만드는 음란과 탐욕, 세상적 가치관 앞에서는 어설픈 자비를 베풀며 공존을 꾀하는 우리의 찌질한 실존을 직격합니다. "상처받았으니 끝까지 복수하겠다"며 이웃을 향해서는 살벌한 전쟁을 선포하고, 하나님이 증오하시는 죄 앞에서는 "사람이 완벽할 수 있나"라며 뻔뻔하게 손을 잡는 영적 도덕 불감증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의 기준은 완전히 거꾸로 뒤집어 놓은 채 내 감정과 정욕대로 행동하는 이 비겁함이 바로 타락한 우리 내면의 서글픈 민낯입니다.

03. 평화의 선포와 가나안의 철저한 진멸, 샬롬과 헤렘

 

신명기 20장 10절부터 20절은 성도의 전쟁이 맹목적인 파괴와 학살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로운 화평의 원리와 죄에 대한 타협 없는 거룩한 척결 위에서 세워짐을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첫째, 화평의 선제적 선포입니다. 10절에서 전쟁에 앞서 선포해야 할 평화의 원어는 샬롬 (샬롬, שָׁלוֹם)이며, 이는 단순한 전쟁의 부재를 넘어 하나님이 주시는 온전한 생명과 안녕, 조화로운 질서를 뜻합니다. 하나님은 이방 민족이라 할지라도 먼저 회개와 평화(샬롬)의 기회를 베풀기를 원하셨습니다.

 

둘째, 타협 없는 거룩한 진멸입니다. 17절에서 가나안 족속을 진멸하라 명합니다. 진멸의 원어는 헤렘 (헤렘, חֵרֶם)이며,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짐으로 죄의 오염원을 철저히 불사르고 격리하는 거룩한 수술입니다. 18절에 명시된 대로 그들의 가증한 우상 숭배를 본받아 여호와께 범죄하지 않도록 영적 순결을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공의의 조치였습니다.

 

셋째, 피조 세계를 향한 세심한 생명 보호입니다. 19절과 20절에서 모세는 적의 성을 오래 포위하더라도 과목(과일나무)은 도끼로 찍어 없애지 말라 명합니다. 인간의 잔혹한 광기와 파괴 본능 속에서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 질서를 훼손하지 말라는 거룩한 헤세드 (헤세드, חֶסֶד)였습니다. 모세는 이 구속사적 진리를 차세대 백성들의 심령에 풀어서 가르칩니다(바아르).

 

 

04. 무분별한 파괴를 멈추고 거룩한 구별을 세우는 법

 

고대 근동의 이방 제국들이 행하던 무자비한 초토화 작전과, 모압 평야에서 모세가 차세대 백성들에게 전쟁의 윤리와 경계선을 선포하는(바아르) 신명기 20장의 메시지 사이에는 심오한 신학적 진보가 존재합니다.

당시 앗수르나 바벨론 같은 제국들의 전쟁은 정복지 주민에 대한 맹목적인 학살과 환경 파괴, 즉 '인간의 잔혹한 정복욕과 초토화 폭력'으로 점철되었습니다.

반면 신명기 20장 10~20절은 전쟁의 승리보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생명 존중을 앞세우며, '먼저 화평(샬롬)을 제안하는 관용'과 '과일나무를 보존하는 생태적 배려', 그리고 오직 '죄의 전염을 차단하기 위한 영적 수술로서의 진멸(헤렘)'이라는 엄격한 구별을 세웁니다. 군사적 목적을 위해 닥치는 대로 부수고 죽이는 세상의 폭력을 멈추고, 하나님의 공의와 창조 질서의 테두리 안에서만 움직이게 하는 성숙한 하나님 나라의 전쟁 윤리로 진보한 것입니다.

이러한 차이는 신명기 20장이 구약 백성의 신앙을 맹목적인 야만성에서 건져내어, 살려야 할 생명과 멸해야 할 죄악의 경계를 명확히 분별하는 주도적인 하나님 나라 백성의 거룩한 구별력으로 끌어올리는 위대한 구속사의 진보임을 증명합니다.

 

05. 십자가로 참된 평화를 주사 죄를 멸하신 예수님

 

구약 신명기 20장의 먼저 선포되던 샬롬(화평)과 우상 숭배를 차단하던 헤렘(진멸)은, 신약에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의 성육신과 십자가의 대속, 그리고 내주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완벽하게 완성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를 향해 먼저 찾아오사 십자가의 피로 영원한 화평(샬롬)을 선포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2장에서 이 복음의 완성을 선포합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한가운데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에베소서 2:14, 16~17).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를 영원한 죽음으로 끌고 가던 사탄의 권세와 죄의 몸을 완전히 멸하심으로(로마서 6:6), 영적인 헤렘(진멸)을 완성하셨습니다! 주님은 사람을 멸망시키신 것이 아니라, 사람을 옭아매던 죄악 자체를 십자가에서 도려내셨습니다.

구약의 백성들은 가나안 족속을 다 쫓아내지 못하고 타협하다가 그들의 가증한 우상에 물들어 패망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사 성령의 내주로 우리 마음에 찾아오셨습니다! 차디찬 돌판이 아닌 우리 마음에 심겨진 말씀이 되신 성령 하나님은, 이웃을 향해서는 먼저 용서와 화평(샬롬)의 손을 내밀게 하시고, 내면의 은밀한 우상과 정욕은 단호히 진멸(헤렘)하는 거룩한 성령의 열매를 주도적으로 맺게 하십니다.

 

 

 

 

06. 결론

 

모세는 출애굽 2세대를 향해 먼 성읍에는 먼저 화평을 선포하고 생명과 자연을 보존하되, 가나안의 가증한 우상 숭배의 싹은 호흡 있는 자를 남기지 말고 철저히 진멸하라고 단호하게 촉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이유는, 이웃을 향해 피의 복수극을 벌이거나 내면의 정욕과 수동적으로 타협하는 노예로 살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형제를 향해서는 용서하지 못해 이를 갈면서도 내 안의 은밀한 죄악 앞에서는 관대하게 손을 잡았던 우리의 찌질한 이중성을 십자가 앞에 철저히 매장해야 합니다. 나를 죄에서 건져내시고 은혜의 언약 바리트 (바리트, בְּרִית)를 맺어주신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을 기억하며, 내게 주신 자유의지로 오늘 내 삶의 자리에서 이웃에게 먼저 샬롬(화평)을 선포하고 내 안의 죄악은 헤렘(진멸)하는 주도적 거룩을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 함께 조금 더 예수님 닮아가기 위해 일상에서 실천해 봅시다.

  • 하나님을 향한 고백: 오늘 하루, 사람과의 사소한 다툼에서는 자존심을 굽히지 않고 보복의 칼을 갈면서도,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내면의 음란과 탐욕, 게으름의 우상 앞에서는 슬그머니 타협했던 영적 불감증을 회개합시다. "주님, 원수 되었던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영원한 샬롬(화평)을 이루시고 죄의 권세를 헤렘(진멸)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바라봅니다. 이웃을 정죄하던 잔인한 마음을 내려놓사오니, 내 마음에 심겨진 복음을 따라 사람에게는 화평을 전하고 내 안의 죄악은 단칼에 베어내는 거룩한 순종을 주도적으로 결단하게 하옵소서."
  • 이웃을 향한 실천: 오늘 하루, 직장이나 가정, 교회 공동체 안에서 갈등과 오해로 불편해진 관계가 있다면, 상대방이 먼저 사과하기를 기다리지 말고 내가 먼저 찾아가 화평(샬롬)의 손을 내미십시오. 이웃의 작은 허물에 대해서는 과일나무를 아끼듯 너그러운 배려와 사랑으로 품어주되, 공동체를 부패하게 만드는 불의나 음란, 거짓의 문화 앞에서는 단호히 거절하고 타협하지 마십시오. 사람과의 관계는 끊임없이 깨뜨리면서 세속적인 죄악에는 관대한 이웃이 있다면, 율법적 비난 대신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이웃에게 평화를 주고 죄악을 멸하는 사랑의 능력"임을 내 삶의 온유함과 단호함으로 증언해 주십시오. 마음에 심겨진 평화를 일상의 온유한 화해와 거룩한 구별로 증명해 내는 그 능동적인 결단이, 척박한 일상 한복판에 하나님 나라의 영광스러운 샬롬을 선포하는 첫걸음입니다.

 


"남에게 작은 상처만 받아도 잠이 안 올 정도로 괘씸하고 분노가 치미는데, 왜 내 영혼을 갉아먹는 은밀한 죄악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지고 타협하게 될까?" 혹시 사람을 향해서는 복수심의 칼날을 갈고, 죄를 향해서는 무기력하게 무릎 꿇은 채 깊은 영적 곤고함 속에 갇혀 계시진 않나요? 세상은 너를 무시하는 자를 짓밟아야 강자라고 속이지만, 이웃에게 먼저 평화를 선포하고 내 안의 죄를 단호히 쳐부수는 자가 하나님 나라의 진짜 용사입니다!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우리 마음에 심겨진 복음은 미움을 녹여내고 죄악의 사슬을 끊어내는 생명의 능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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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채널 '킹덤빌더즈' 오늘 밤 11시 30분, 내 비루한 분노와 타협의 사슬을 시원하게 끊어버리고, 참된 샬롬과 거룩함으로 당당히 일어서는 영광스러운 회복의 자리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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