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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말씀묵상/고린도후서

[고린도후서 13장 묵상] 남들의 신앙만 매섭게 평가하느라 바쁘지 않나요?

by 킹덤빌더 2026.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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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은 기도가 부족해, 저 집사는 말만 번지르르하지 사랑이 없어."

교회나 일상에서 다른 사람들의 믿음 상태를 이 잡듯 뒤지며 엄격하게 평가하면서도, 정작 "당신 마음에는 진짜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 계십니까?"라는 질문 앞에서는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버린 적 없으신가요?

우리는 남의 허물을 찾아내어 정죄할 때는 누구보다 명석한 판사가 되지만, 정작 내 안의 썩어가는 영적 실존을 들여다보는 것은 무서워하고 회피하는 찌질한 방관자들입니다.

그동안 고린도 교회의 온갖 오해와 비난 속에서도 오직 십자가만을 선포해 온 바울이 편지를 마무리하며 던지는 이 마지막 엄중한 질문을 통해, 타인을 향한 날 선 칼을 내려놓고 내 심령을 정직하게 수술대 위에 올려놓는 거룩한 직면을 대면해 봅니다.

 

 

 

 

01. 성경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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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13장

 

1   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가리니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정하리라
2   내가 이미 말하였거니와 지금 떠나 있으나 두 번째 대면하였을 때와 같이 전에 죄 지은 자들과 그 남은 모든 사람에게 미리 말하노니 내가 다시 가면 용서하지 아니하리라
3   이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증거를 너희가 구함이니 그는 너희에게 대하여 약하지 않고 도리어 너희 안에서 강하시니라
4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시니 우리도 1)그 안에서 약하나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와 함께 살리라
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6   우리가 버림 받은 자 되지 아니한 것을 너희가 알기를 내가 바라고
7   우리가 하나님께서 너희로 악을 조금도 행하지 않게 하시기를 구하노니 이는 우리가 옳은 자임을 나타내고자 함이 아니라 오직 우리는 버림 받은 자 같을지라도 너희는 선을 행하게 하고자 함이라
8   우리는 진리를 거슬러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
9   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가 강한 것을 기뻐하고 또 이것을 위하여 구하니 곧 너희가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떠나 있을 때에 이렇게 쓰는 것은 대면할 때에 주께서 너희를 넘어뜨리려 하지 않고 세우려 하여 내게 주신 그 권한을 따라 엄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1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하게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하며 평안할지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12   모든 성도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02. 남의 눈의 티는 보면서 정작 내 안의 예수님은 놓치는 찌질한 회피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고후 13:5)

 

그동안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을 향해 끊임없이 사도로서의 스펙과 증거를 요구했습니다.

"진짜 사도라면 얼굴에 수건을 쓰지 않아도 될 만큼 화려한 영광을 보여라", "말도 잘하고 추천서도 들이밀어 봐라" 하며 바울의 자격 심사를 엄격하게 진행했습니다.

그들은 바울의 약함과 고난을 트집 잡으며 자신들의 세속적 가치관을 정당화하려 했습니다.

 

바울은 이 마지막 편지에서 그 화살을 그들의 심장으로 완벽하게 돌려버립니다.

"너희가 내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는 증거를 구하고 있느냐? 정작 너희 자신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서 작동하고 있는지는 시험해 보았느냐?"

이것은 남들을 판단하느라 내 영적 파산 상태를 보지 못하는 우리의 찌질한 방어기제입니다.

우리는 직장 동료, 교인들, 심지어 내 가족들의 작은 실수와 신앙적 연약함은 귀신같이 찾아내어 정죄하지만, 내 마음의 깊은 탐욕과 인색함, 상업주의적인 인간관계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며 교묘하게 뭉개고 회피합니다.

남의 믿음만 이 잡듯 뒤지며 정작 내 안에 계신 주님과의 관계는 텅 빈 껍데기처럼 방치해 둔 위선적인 종교인이 바로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입니다.

 

03. 약함 속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원한 살아 계심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시니 우리도 그 안에서 약하나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와 함께 살리라" (고후 13:4)

 

남의 허물만 들춰내며 자신을 완벽하게 포장하려는 우리를 향해, 하나님은 십자가의 가장 거대한 역설로 응답하십니다.

예수님은 세상이 요구하는 화려한 힘과 군대라는 육신의 무기를 쥐고 오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철저하게 무기력한 모습으로, 가장 약한 자의 모습으로 십자가에 피 흘려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은 그 철저한 패배와 약함 속에서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부활의 승리를 완성하셨습니다.

존 칼빈(John Calvin)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우리의 겉사람이 복음을 위해 철저히 부서지고 약해지는 그 자리에서만 부활의 하나님의 능력(듀나미스, δύνα미ς)이 비로소 완전하게 꽃을 피운다고 강조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겉포장으로 우리 자신을 증명하려 애쓰는 대신, 우리의 약함을 인정하고 내 안에서 살아 움직이시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전적으로 의지하기를 원하십니다.

 

 

04. 모세 언약의 정죄를 깨고 삼위일체의 사랑으로 완성된 새 언약

 

바울이 고린도후서 전체를 마무리하며 고백하는 이 마지막 권면과 축도는, 구속사를 관통하는 새 언약(카이네 디아데케, καινὴ διαθήκη)의 가장 웅장한 도달점입니다.

 

구약 시대의 모세 언약(율법)은 밖에서 조문으로 주어졌기에 끊임없이 정죄와 고발을 일삼는 '죽이는 직분'이었습니다.

율법의 심판 앞에서 이스라엘은 늘 낙제점이었고, 서로를 정죄하고 반목하다가 멸망의 길로 걸어갔습니다.

 

그러나 신약에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영원한 속죄'의 제물로 피 흘려 죽으심으로 그 정죄의 율법을 단번에 완성하셨습니다. 오순절 '성령의 내주'하심을 통해 우리의 부드러운 '육의 심비(새 마음)'에 생명의 법을 완전히 이식해 주셨습니다.

 

이로써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는 거대한 공식은, 본문 13절에 나오는 위대한 삼위일체 축도를 통해 온전히 완성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고후 13:13)

 

성부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이 베이스가 되고,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진리가 우리를 구원하는 '은혜'가 되며,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살아 역사하심으로 사랑과 진리를 풍겨내며 '교통(코이노니아, κοινωνία)'하게 하십니다. 새 언약 백성이 된 우리는 더 이상 정죄의 눈으로 남을 판단하지 않고, 내 마음에 살아 계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 세상 만방에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이 드러나는' 거룩한 한 몸의 교회를 이 땅에 세워가는 것입니다.

 

05. 버려진 자가 되지 않기 위해 주도적으로 믿음을 증명하는 삶

 

"우리가 진리를 거슬러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 우리가 바라는 바는 이것이니 곧 너희가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 (고후 13:8, 9)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자기가 얼마나 대단한 사도인지를 주입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자신이 가짜 사도로 취급받아 세상의 눈에 '버림받은 자(아도키모스, ἀδόκιμος)'처럼 보일지라도, 고린도 교인들만큼은 진짜 진리 위에 온전히 세워지기를 바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이유는, 상황과 타인의 눈치에 수동적으로 끌려다니며 그럴듯한 흉내를 내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내게 주어진 자유의지의 운전대를 꽉 쥐고, 남들을 칼로 찌르던 정죄의 눈을 돌려 나 자신을 향해 주도적인 수술용 칼날을 대야 합니다. "내 마음에 진짜 십자가가 있는가?

나는 정말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화목의 길을 걷고 있는가?" 내 믿음을 주도적으로 시험하고(페이라조, πειράζω) 확증해 내야(도키마조, δοκιμάζω) 합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불안해하는 수동적 나태함을 깨부수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 안에서 기꺼이 내 약함을 오픈하며 내 곁의 형제들과 삼위일체의 깊은 교제를 주도적으로 빚어가는 것, 이것이 고린도후서가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강력하고 능동적인 영적 삶의 결론입니다.

 

 

06. 결론

 

남을 헐뜯고 판단하느라 정작 내 안에 예수님이 내주하고 계신 줄조차 잊어버렸던 찌질한 영적 게으름을 십자가 밑에 온전히 묻어야 합니다.

약함 속에서 능력을 완성하신 주님을 믿고, 내게 주신 자유의지로 나 자신을 먼저 정직하게 대면하여 삼위일체의 사랑의 교통하심을 주도적으로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 함께 조금 더 예수님 닮아가기 위해 일상에서 실천해 봅시다.

 

하나님을 향한 고백:

오늘 하루, 사람들의 부족한 신앙과 겉모습을 손가락질하며 정작 내 마음의 어둠은 정직하게 들여다보지 못했던 찌질한 영적 회피를 회개합시다.

"주님, 내 자존심을 지키느라 남의 눈의 티만 보고 내 눈의 들보는 무시했던 저를 용서하소서.

삼위일체의 사랑으로 나를 성전 삼으신 새 언약을 믿고, 성령의 조명하심을 따라 내 믿음을 스스로 정직하게 시험하며 주도적으로 그리스도께 순종하게 하옵소서."

 

이웃을 향한 실천:

오늘 하루, 직장이나 가정, 혹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누군가의 마음에 안 드는 행동을 볼 때 즉각 정죄의 칼을 휘두르려던 마음을 단호히 멈추십시오.

"내가 과연 이 사람을 판단할 만한 완벽한 자격이 있는가?" 자문하며 타인을 향한 지적의 말 대신, 내 마음에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먼저 확인하십시오.

그리고 "나 같은 죄인도 살리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오해와 허물이 가득한 그 형제를 향해 먼저 따뜻한 용서와 화평의 눈빛을 주도적으로 흘려보내 보십시오.

정죄의 수건을 벗어 던지고 스스로 먼저 낮아져 평화를 돕는 자(위로자)가 되는 그 주도적인 결단이, 고린도후서 전체가 지향하는 가장 눈부신 은혜의 승리입니다.


"저 사람은 저래서 문제고, 우리 교회는 이래서 개판이야!" 남들의 위선과 세상의 더러움에 치를 떨며 분노의 칼을 갈고 계신가요?

하지만 세상의 썩어감을 탓하는 날 선 비판 속에서, 혹시 당신 자신의 영혼 또한 사랑을 잃고 차갑게 메말라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 주님은 세상의 화려한 힘을 짓밟는 대신 스스로 가장 무기력하게 십자가를 지심으로, 당신의 텅 빈 심령 속에 삼위일체의 꺼지지 않는 영원한 사랑을 콱 심어주셨습니다.

유튜브 채널 킹덤빌더즈 오늘 밤 11시 30분, 남들을 판단하던 찌질한 돋보기를 부숴버리고, 내 마음에 살아 숨 쉬는 예수 그리스도의 진짜 능력을 시험하고 회복하는 영광스러운 고린도후서 최종 완결판의 자리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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