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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말씀묵상/고린도후서

[고린도후서 1장 묵상] 바울조차 살 소망을 포기했던 그 끔찍한 날

by 킹덤빌더 2026.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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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성경 속 위대한 인물들은 어떤 고난 앞에서도 "할렐루야!"를 외치며 강철 같은 멘탈로 이겨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다"며 자신의 멘탈이 완전히 박살 났던 과거의 끔찍한 기억을 고백합니다. 도대체 1세기 로마 제국 한복판에서 바울에게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 위대한 사도조차 삶을 포기하고 싶었을까요? 막연한 묵상을 넘어, 바울이 마주했던 피 말리는 역사적 현실을 들여다보며 오늘 내 삶의 고난을 해석하는 진짜 위로를 찾아봅니다.

 

 

 

 

01. 성경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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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
고린도후서 제 1 장

고난과 위로와 구원과 감사

 

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또 온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3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6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7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9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10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11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

 

02. 바울조차 살 소망을 포기했던 '아시아의 환난'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고린도후서 1:8-9)

 

바울이 말한 '아시아'는 지금의 아시아 대륙이 아니라, 당시 로마 제국의 속주였던 소아시아(현재 튀르키예 서부 지역)를 말하며, 그 중심 도시는 '에베소'였습니다.

성경이 이 환난이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인지 정확한 이름을 꼬집어 말해주지는 않기 때문에 우리가 100% 하나로 확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의 다른 기록들을 통해 그 끔찍했던 시대적 배경과 근거를 명확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9장의 에베소 폭동
에베소는 아르테미스(아데미) 여신을 섬기는 거대한 신전으로 막대한 돈을 버는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은 신이 아니다"라고 복음을 전하자, 우상 모형을 팔아 돈을 벌던 은장색 데메드리오는 사람들을 선동하여 거대한 폭동을 일으켰습니다.

수만 명의 흥분한 군중이 원형 극장으로 몰려가 바울의 일행을 붙잡고 두 시간 동안이나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죽이려 했습니다.

 

마치 수만 명의 폭주족이나 훌리건들에게 둘러싸여 언제 돌에 맞아 죽을지 모르는 공포를 상상해 보십시오.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32절에서 이 사건을 가리켜 "내가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고 표현할 정도였습니다.

이 외에도 극심한 질병이나 치명적인 감옥 수감 등 목숨을 잃을 뻔한 여러 위기가 겹쳤을 것입니다.

바울은 이 피 말리는 현실 앞에서 자신의 알량한 능력으로는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음을 깨닫고, 스스로 "이제 내 인생은 끝났다(사형 선고)"며 깊은 절망의 바닥을 쳤던 것입니다.

 

03. 내 힘을 빼고 부활의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바울이 이토록 처절한 '사형 선고'의 바닥까지 떨어지도록 내버려 두셨을까요?

우리 역시 일상에서 감당할 수 없는 재정의 붕괴나, 사랑하는 사람의 배신, 혹은 치명적인 질병이라는 거대한 폭동(환난) 앞에 서면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나?" 하며 원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고통의 진짜 이유를 이렇게 선포합니다.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고후 1:9)."

인간은 코끝에 숨이 조금이라도 붙어 있으면, 끝까지 내 능력, 내 돈, 내 인맥을 의지하려는 지독한 습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로 우리가 쥐고 있던 그 썩은 동아줄을 완전히 끊어버리십니다.

내 통제력이 100% 상실된 그 절망의 바닥에서야 비로소, 우리는 내 스펙을 포기하고 '죽은 자도 살리시는 부활의 하나님'만을 온전히 바라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04. 새 언약 백성에게 부어지는 파라클레시스의 은혜

 

이 죽음의 공포 속에서 하나님은 바울을 홀로 버려두지 않으시고 '모든 위로의 하나님'으로 다가오십니다.

여기서 쓰인 '위로(파라클레시스, παράκλησις)'는 단순히 "괜찮아, 다 잘 될 거야"라고 등을 두드려 주는 가벼운 감성적 위로가 아닙니다.

이 단어는 법정에서 내 옆에 바짝 붙어 나를 끝까지 대신 변호해 주는 든든한 조력자(보혜사)를 의미합니다.

 

이는 십자가로 완성된 '새 언약'의 가장 영광스러운 결과입니다.

구약 시대의 모세 언약은 우리가 율법을 어기면 그 차가운 돌판의 기준으로 우리에게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그러나 신약에 이르러,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영원한 속죄를 단번에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임하신 성령의 내주하심을 통해, 위로자(파라클레토스)이신 성령 하나님이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영원히 함께하게 되셨습니다.

 

이로써 성경의 가장 웅장한 공식인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는 언약이 내 삶에 실제가 되었습니다.

성령이 내 안에 계시기에, 우리는 폭동이 일어나는 에베소 한복판이나 사형 선고를 받은 것 같은 고난 속에서도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이 새 언약의 강력한 파라클레시스(위로)가 우리를 절망에서 건져내어 다시 일으켜 세우는 진짜 능력입니다.

 

05. 상처 입은 치유자로 빚어가시는 하나님의 섭리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고후 1:4)

 

우리가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위로를 받는 궁극적인 이유는, 단순히 내 문제가 해결되고 나 혼자 편안해지기 위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흘린 눈물과 상처를 통해, 나와 똑같은 고통 속에 있는 누군가를 살려내는 생명의 통로로 우리를 사용하길 원하십니다.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는 듯한 환난을 통과하며 십자가의 위로를 뼛속 깊이 경험해 본 사람만이, 절망에 빠진 다른 형제의 손을 진짜로 꽉 잡아줄 수 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의 그 끔찍한 폭동을 겪었기에, 환난 속에 있는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 진짜 위로의 편지를 쓸 수 있었습니다.

의미 없이 버려지는 고난은 없습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경험한 내가 누군가의 곁으로 다가가 파라클레시스(함께 걷는 위로자)가 되어줄 때, 우리는 함께 성장하며 세상을 살리는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됩니다.

 

06. 결론

 

에베소 폭동과 같은 거대한 고난은 내 힘의 한계를 폭로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진짜 위로를 경험하게 하는 은혜의 시작점입니다. 하나님은 고난 한가운데서 우리를 부활의 백성으로, 그리고 이웃을 살리는 치유자로 길러내십니다.

우리 함께 조금 더 예수님 닮아가기 위해 일상에서 실천해 봅시다.

  • 하나님을 향한 고백: 오늘 하루, 내 뜻대로 풀리지 않는 거대한 벽(환난) 앞에서 하나님보다 내 인맥과 통장 잔고를 먼저 의지하려 했던 찌질함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읍시다. "주님, 살 소망이 끊어질 것 같은 막막함 속에서도 내 힘을 빼고 부활의 주님만 의지하게 하옵소서. 새 언약 백성으로 내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의 든든한 위로를 신뢰합니다."
  • 이웃을 향한 실천: 이번 주, 과거에 내가 겪었던 실패나 억울한 일(건강, 재정, 관계의 단절 등)과 똑같은 문제로 지금 아파하고 있는 지체를 한 명 떠올려 보십시오. 조언이나 설교를 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그저 조용히 따뜻한 차 한 잔을 대접하며 "나도 예전에 그 일로 죽을 만큼 힘들었어. 그런데 하나님이 내 곁에서 함께 버텨 주시더라"라며 나의 솔직한 연약함을 나누어 주십시오.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말하며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주는 그 한 걸음이, 우리를 작은 예수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도대체 이 고통의 터널은 언제 끝날까요?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것처럼 숨이 막히는데, 왜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걸까요?"

에베소의 끔찍한 폭동 한가운데 갇힌 것처럼 두려워 떨고 계신가요?

세상은 네 힘으로 살아남아야 한다고 소리치지만, 우리 주님은 당신이 모든 통제력을 잃고 주저앉은 바로 그 바닥에서 가장 강력한 위로의 손길을 내미십니다.

유튜브 채널 '킹덤빌더즈' 오늘 밤 11시 30분, 내 알량한 스펙을 내려놓고 새 언약의 든든한 보혜사 성령님의 품 안에서 다시 살 소망을 회복하는 자리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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