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2장 묵상] 연대 | 가장 높은 분이 가장 낮은 나를 (내 형제)라 부르시는 이유 (히 2:10-13)

히브리서 묵상, 고난의 숲을 지나 가족의 식탁으로 나아갑니다.
세상의 평가에 위축되어 스스로를 부끄러워했던 마음을 회개하고, 나를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시는 예수님의 자부심을 입어 이웃의 수치를 덮어주는 생명력을 나눕니다.
브랜드를 기획하고 시장에 내놓을 때, 우리는 흔히 '품격'과 '이미지'를 고민합니다.
만약 공들여 만든 브랜드가 저급한 이미지와 엮인다면 기획자로서는 몹시 부끄럽고 치명적인 일이 될 것입니다.
로마 제국은 바로 이런 '명예와 수치'의 논리로 돌아가는 거대한 기획사였습니다. 십자가에 처형된 죄수를 주님이라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제국의 눈에 가장 '부끄러운 오점'이자 '수치스러운 집단'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세상의 성공 기준에 미치지 못할 때, 신앙 때문에 손해를 볼 때, 우리는 스스로를 부끄러워하고 위축됩니다.
하지만 오늘 히브리서 기자는 제국이 매긴 수치의 가격표를 찢어버리며, 우주의 왕이 우리에게 주신 새로운 이름을 선포합니다.
01. 성경본문
히브리서 2장
10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11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12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13 또 다시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하시고 또 다시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하셨으니
02. 고난의 비명 끝에 터져 나온 가족의 노래

12절에서 기자는 시편 22편을 인용합니다.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시편 22편은 '내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처절한 비명으로 시작하는 메시아의 고난시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철저히 버림받으셨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죽음의 고통을 통과한 주님이 가장 먼저 하신 일은, 자신을 배신하고 도망쳤던 자들을 향해 '내 형제들'이라고 부르신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고난을 당하면 숨고 싶어 하지만, 주님은 그 고난을 통해 우리와 '한 피를 나눈 가족'이 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우리의 수치가 주님의 고난과 만나 '영광스러운 가족의 연대'로 변모된 것입니다.
03. 창조주와 죄인이 한 피를 나눈 신비

11절은 이 연대의 신비를 더 깊이 파고듭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하늘의 통치자이신 예수님과 땅의 죄인인 우리가 '한 근원'에서 났다는 것은, 개혁주의 신학이 말하는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의 절정입니다.
주님은 하늘의 보좌에서 우리를 구경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친히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우리의 형제가 되셔서, 우리의 비참함과 연약함을 '자신의 것'으로 삼으셨습니다.
무엇보다 감격적인 선언은 11절 하반절에 있습니다.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로마 황제는 비천한 자를 부끄러워했지만,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은 핍박받고 초라한 우리를 세상 앞에 내놓으며 '이들이 내 형제다!'라고 자랑스러워하십니다.
주님의 자부심은 우리의 어떠함에 있지 않고, 주님의 신실하신 사랑에 있습니다.
04. 고난을 통해 온전해지신 구원의 창시자

하나님은 왜 자신의 아들을 고난의 길로 몰아넣으셨을까요?
10절은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라고 말합니다.
주님이 부족해서 온전해지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와 같은 고난을 직접 겪으셔야만, 우리의 고난을 체휼하는 완벽한 '구원의 창시자'가 되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참으신 이유는 단순히 법적인 죄 사함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우리를 '주님의 가족'으로 입양하시기 위한 처절한 사랑의 지불이었습니다.
05. 결론

여러분.
오늘 당신은 무엇을 부끄러워하고 있습니까?
내 초라한 스펙입니까, 아니면 세상과 다른 나의 믿음입니까? 우주의 왕이 당신을 형제라 부르시며 자랑스러워하고 계신데, 왜 당신은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까?
1. 나를 향한 주님의 자부심을 받아들이는 5분 감사:
오늘 5분간, 스스로를 (부끄러운 존재)라 낙인찍었던 모든 열등감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으십시오.
"주님, 만왕의 왕이 나를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시는데, 내가 감히 나 자신을 부끄러워했습니다.
나를 위해 고난의 쓴맛을 보시고 가족 삼아주신 그 사랑을 입어, 오늘 내 영혼의 어깨를 펴게 하옵소서. 주님의 자부심이 나의 자부심이 되게 하옵소서."
2. 수치 가운데 있는 지체를 '형제와 자매'로 대우하기:
주님이 나의 수치를 덮어 형제 삼아주셨다면, 오늘 우리도 누군가의 수치를 덮어주는 가족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직장이나 공동체에서 실수하여 고개를 숙이고 있는 동료, 혹은 사회적으로 소외되어 '부끄러운 존재' 취급을 받는 이웃을 찾아가십시오.
"주님, 내가 세상의 평가로 저 사람을 판단하지 않게 하옵소서."
그에게 다가가 '당신은 존귀한 나의 형제, 자매입니다'라는 따뜻한 눈빛과 인사를 건네며, 주님이 우리에게 하신 그 '거룩한 연대'를 실천해 보십시오.
기독교는 내 품격을 높여 세상의 인정을 받는 종교가 아닙니다.
세상이 부끄러워하는 나를 영광스러운 형제로 불러주신 창조주의 그 벅찬 사랑에 압도되어, 오늘을 당당히 살아내고 이웃의 눈물을 닦아주는 가족의 공동체입니다.
P.S. 킹덤빌더즈: 수치가 물러가고 영광스러운 가족이 모이는 밤
세상의 냉혹한 평가에 마음이 베이고,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을 지나고 계신가요?
당신을 내 형제라 부르며 세상 끝까지 당신의 편이 되어주시는 영원한 맏형, 예수 그리스도의 품으로 오십시오.
유튜브 채널 '킹덤빌더즈' 오늘 밤 11시 30분, 고독한 부속품이었던 우리가 영광스러운 왕의 가족으로 다시 태어나는 은혜의 자리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