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말씀묵상/신명기

[신명기 14장 묵상] 십일조를 내면서도 늘 손해 보는 기분이 드는 결정적 이유

킹덤빌더 2026. 9. 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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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땀 흘려 번 소득에서 십일조와 헌금을 떼어 드릴 때, 감사와 기쁨이 넘치기보다 "이 돈이면 당장 내 쓸 것도 빠듯한데"라며 아까운 마음과 손해 보는 듯한 억울함에 마음이 무거워진 적은 없으신가요? 우리는 흔히 십일조를 생각할 때 하나님께 바쳐야 하는 종교적 세금이나 내 재산을 강제로 빼앗아가는 율법의 부담스러운 짐으로 오해하곤 합니다. 하지만 매년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가지고 중앙 성소로 나아가 온 가족과 함께 먹고 즐거워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우라 명하셨던 하나님. 십일조가 내 소유를 빼앗는 족쇄가 아니라 삶의 참된 풍요와 나눔의 축제로 인도하는 거룩한 통로임을 신명기 14장의 본문으로 정직하게 대면해 봅니다.

 

 

 

 

01. 성경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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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14장

 

22   너는 마땅히 매 년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23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24   그러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 네게서 너무 멀고 행로가 어려워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풍부히 주신 것을 가지고 갈 수 없거든
25   그것을 돈으로 바꾸어 그 돈을 싸 가지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으로 가서
26   네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그 돈으로 사되 소나 양이나 포도주나 독주 등 네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구하고 거기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너와 네 권속이 함께 먹고 즐거워할 것이며
27   네 성읍에 거주하는 레위인은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자이니 또한 저버리지 말지니라
28   매 삼 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의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29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오늘의 핵심 원어 해설] 아사르 (Asar)와 사마흐 (Samach)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아사르) 드릴 것이며... 네 권속이 함께 즐거워할(사마흐) 것이며" (신명기 14장 22절, 26절)

 

오늘 본문을 관통하는 두 기둥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아사르 (아사르, עָשַׂר)와 은혜 안에서 누리는 참된 기쁨 사마흐 (사마흐, שָׂמַח)입니다.

아사르는 물질의 우상화를 깨뜨리고 내 모든 소유의 진짜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확인하는 거룩한 구별입니다. 그리고 사마흐는 그 주권의 인정 위에서 하나님과 이웃과 더불어 누리는 인색함 없는 참된 안식과 나눔의 기쁨입니다.

개혁주의 신학의 거장인 존 칼빈 (John Calvin)은 그의 신명기 강해에서 다음과 같이 단언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십일조와 나눔을 명하신 이유는 하나님이 물질에 굶주리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의 탐욕스러운 마음을 훈련하여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시고, 궁핍한 형제를 돌아보아 온 공동체가 함께 기쁨을 누리게 하시려는 사랑의 배려입니다."

 

하나님이 백성들과 맺으신 바리트 (바리트, בְּרִית), 즉 모세 언약은 이 아사르의 훈련을 통해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마흐의 축제를 이웃과 함께 누리는 거룩한 백성의 삶 속에서 완성됩니다.

 

 

02. 물질을 내 소유라 착각하며 십일조를 아까워하는 찌질함

"너는 마땅히 매 년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매 삼 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의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신명기 14장 22~23절, 28~29절)

 

모세는 가나안 정복을 앞둔 출애굽 2세대를 향해 십일조의 참된 구속사적 의미를 선포합니다. 백성들은 매년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떼어 여호와께서 이름을 두신 성소로 가지고 올라가 온 가족과 함께 먹고 마시며 즐거워해야 했습니다. 그 목적은 분명했으니, 바로 내 삶의 모든 공급자가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우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매 3년 끝에는 성읍에 십일조를 모아 땅의 분깃이 없는 레위인과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고아와 과부 같은 사회적 약자들이 배불리 먹도록 나눔의 잔치를 베풀어야 했습니다.

 

이것은 내 통장에 들어온 소득과 재물을 오직 내 손의 수고와 피땀으로 일군 내 소유라 착각하며,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내어놓는 것을 몹시 아까워하는 우리의 찌질한 실존을 직격합니다. 십일조를 마지못해 바치는 벌금처럼 여기며 액수에만 연연하고, 주변의 가난한 이웃과 연약한 지체들을 돌아보는 나눔의 마음은 닫아버린 영적 인색함입니다. 나를 노예 상태에서 건져내시고 모든 복을 거저 주신 주님의 주권을 물질 앞에서 내팽개치는 이 비겁함이 바로 타락한 우리 내면의 서글픈 민낯입니다.

 

 

 

03. 여호와 경외를 배우는 거룩한 축제와 구제, 아사르와 사마흐

 

신명기 14장 22절부터 29절은 십일조가 단순한 헌금 행위를 넘어, 하나님과의 거룩한 교제와 약자를 품는 공동체적 사랑의 완성임을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첫째, 십일조를 통한 주권의 인정입니다.

22절에서 모세는 마땅히 매년 토지 소산의 십분의 일을 구별하라 명합니다. 십일조를 떼어 드리다의 원어는 아사르 (아사르, עָשַׂר)이며, 이는 내 모든 수확물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았음을 고백하는 신앙적 결단입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궁극적 이유는 23절 말씀처럼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우는 라마드 (라마드, לָמַד)에 있었습니다.

 

둘째, 함께 누리는 거룩한 기쁨과 축제입니다.

모세는 26절에서 성소가 멀어 현물을 가져가기 힘들 경우 은으로 바꾸어 성소에 가 마음에 원하는 것을 사서 권속과 함께 먹고 즐거워하라 명합니다. 여기서 즐거워하다의 원어는 사마흐 (사마흐, שָׂמַח)이며, 이는 하나님이 주신 풍요를 감사함으로 온 가족이 함께 누리는 거룩한 영적 잔치입니다.

 

셋째, 약자를 향한 제3년 십일조의 나눔입니다.

28절과 29절에서 3년마다 드리는 십일조는 성읍의 레위인과 나그네, 고아와 과부를 배불리 먹이는 구제 십일조였습니다. 하나님은 이 나눔을 행할 때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주시겠다 약속하십니다. 모세는 이 구속사적 진리를 백성들의 심령에 풀어서 가르칩니다(바아르).

 

 

04. 종교적 의무를 넘어 기쁨의 나눔으로 확장되는 법

 

레위기 27장에서 선포되었던 제사장과 레위인의 생계를 위한 십일조 법과, 모압 평야에서 모세가 가나안 정착을 앞둔 차세대 백성들에게 선포하는(바아르) 신명기 14장의 십일조 규례 사이에는 심오한 신학적 진보가 존재합니다.

 

레위기 27장에서는 땅의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이라는 '성물로서의 십일조와 제의적 의무 규정'이 엄격하게 강조되었습니다.

반면 신명기 14장 22~29절은 십일조를 제단에 바치고 끝나는 의무를 넘어, 성소에서 가족과 함께 먹고 마시며 기뻐하는 '예배의 축제화'와 3년마다 가난한 고아와 과부를 먹이는 '사회적 나눔의 확장'으로 그 의미를 심화시킵니다. 십일조가 딱딱한 종교적 세금이 아니라, 하나님 경외함을 배우고 이웃의 굶주림을 채우는 공동체적 사랑의 잔치로 발전한 것입니다.

이러한 차이는 신명기 14장이 구약 백성의 헌금을 율법적인 의무감에서 건져내어, 하나님이 주신 풍요를 감사함으로 누리고 약자에게 흘려보내는 주도적인 하나님 나라 백성의 청지기적 영성으로 끌어올리는 위대한 구속사의 진보임을 증명합니다.

05. 십자가로 모든 것을 내어주사 참된 부요를 주신 예수님

 

구약 신명기 14장의 십일조와 고아와 과부를 배불리 먹이던 나눔의 잔치는, 신약에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의 성육신과 십자가의 자기 비움, 그리고 내주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완벽하게 완성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8장에서 십자가의 복음이 가져온 참된 나눔의 본질을 선포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린도후서 8:9).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단순히 소득의 십분의 일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당신의 모든 생명과 피와 물을 남김없이 우리를 위해 쏟아부어 주셨습니다! 주님의 그 전적인 희생과 대속 덕분에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부요를 값없이 상속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9장에서 십자가 은혜를 입은 성도의 헌금 생활을 이렇게 확증합니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린도후서 9:7).

구약의 백성들은 십일조를 드리면서도 마음의 탐욕을 버리지 못하고 약자를 착취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사 성령의 내주로 우리 마음에 찾아오셨습니다! 차디찬 돌판이 아닌 우리 마음에 심겨진 말씀이 되신 성령 하나님은, 물질의 노예 상태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억지가 아닌 기쁨과 자발적인 나눔(사마흐)으로 이웃을 섬기는 거룩한 성령의 열매를 주도적으로 맺게 하십니다.

 

 

 

 

06. 결론

 

모세는 출애굽 2세대를 향해 매년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성소에 가져가 하나님 경외하기를 항상 배우고, 제3년에는 성읍에 저축하여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배부르게 하라고 단호하게 촉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이유는, 세상의 물질과 돈에 눈이 멀어 수동적으로 통장 잔고의 노예가 되어 살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물질을 내 실력으로 번 내 소유라 착각하며 하나님과 이웃을 향해 인색하게 굴었던 우리의 찌질한 탐욕을 십자가 앞에 철저히 매장해야 합니다. 나를 죄에서 건져내시고 은혜의 언약 바리트 (바리트, בְּרִית)를 맺어주신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을 기억하며, 내게 주신 자유의지로 오늘 내 삶의 자리에서 물질의 주권을 주께 드리고 이웃을 배불리는 주도적 나눔을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 함께 조금 더 예수님 닮아가기 위해 일상에서 실천해 봅시다.

  • 하나님을 향한 고백: 오늘 하루, 내 모든 소득과 일터의 결실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잊은 채 헌금과 물질의 사용 앞에서 인색하고 아까워했던 영적 교만을 회개합시다. "주님, 나를 영적으로 부요케 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사합니다. 그동안 내 손의 힘으로 얻은 양 착각하며 아사르(십일조)를 짐으로 여겼던 비겁함을 회개하오니, 내 마음에 심겨진 복음을 따라 오직 하나님만을 삶의 유일한 공급자로 경외하게 하옵소서."
  • 이웃을 향한 실천: 오늘 하루, 가정이나 직장에서 내 몫과 이익만을 챙기기에 급급하여 주변의 연약한 동료나 소외된 이웃의 결핍을 외면했던 수동적인 태도를 차단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제3년 십일조로 객과 고아와 과부를 배불리 먹이라 명하신 것처럼, 내게 주신 재정과 시간의 일부를 떼어 힘들어하는 지체와 약자들에게 따뜻한 식사와 위로를 주도적으로 흘려보내십시오(사마흐). 물질의 불안감 때문에 헌금과 나눔을 주저하는 지체가 있다면, 율법적 비난 대신 "하나님의 청지기로 흘려보낼 때 하나님이 범사에 복을 주신다"는 복음의 확신을 내 삶의 나눔과 정직함으로 증언해 주십시오. 마음에 심겨진 은혜를 일상의 풍성한 나눔으로 증명해 내는 그 능동적인 결단이, 척박한 일상 한복판에 하나님 나라의 영광스러운 축제를 선포하는 첫걸음입니다.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인데, 왜 십일조를 내고 헌금을 드릴 때마다 마음에 기쁨 대신 아까움과 손해 보는 기분만 가득할까?" 혹시 물질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잊어버린 채, 헌금을 종교적 벌금이나 강요된 의무로 여기며 영적 메마름 속에 갇혀 계시진 않나요?

세상은 네 통장에 꽉 쥐고 있어야 안전하다고 속이지만,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을 경외하며 이웃과 나눌 때 세상이 줄 수 없는 완벽한 하늘의 풍요와 기쁨이 시작됩니다!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우리 마음에 심겨진 복음은 탐욕을 깨부수고 온 공동체를 축제로 바꾸는 생명의 능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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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채널 '킹덤빌더즈' 오늘 밤 11시 30분, 내 비루한 인색함의 사슬을 시원하게 끊어버리고, 참된 부요를 누리며 당당히 일어서는 영광스러운 회복의 자리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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