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묵상/사순절

[사순절 묵상 23일차] 은혜 | 효율성을 비웃는 목자의 낭비하는 사랑 (눅 15:3-7)

킹덤빌더 2026. 3. 16. 08:00
반응형

 

사순절 24일차, 누가복음 15장의 잃어버린 양 비유를 묵상합니다.

나의 종교적 쓸모를 계산하는 바리새인의 교만을 내려놓고, 스스로 돌아올 힘이 없는 나를 끝까지 찾아내어 어깨에 둘러메시는 목자의 압도적인 은혜(개혁주의생명신학)와 이웃을 향한 조건 없는 사랑을 나눕니다.

 

 

기업을 경영하는 CEO나 경제학자의 관점에서 오늘 본문의 목자는 당장 해고감입니다.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찾겠다고, 멀쩡한 99마리를 맹수가 우글거리는 들판에 내버려 두는 것은 미친 짓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중동 문화권에서 양 한 마리를 찾았다고 동네 사람들을 불러 잔치를 열면, 양의 가치보다 잔치 비용이 훨씬 더 많이 듭니다. 철저히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비즈니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이토록 비효율적이고 앞뒤가 맞지 않는 비유를 당시의 종교 엘리트들(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들려주셨을까요?

그들은 철저한 '효율성' '종교적 자격'으로 사람을 차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쓸모없어 보이는 세리와 죄인 하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시는 하나님의 그 '비합리적이고 낭비하는 사랑'으로, 굳어버린 인간의 계산기를 산산조각 내십니다.

 

01. 성경본문

더보기

누가복음 15장

 

3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4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5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02. 비용을 아끼지 않는 낭비하는 사랑

 

오늘 성경에서는 예수님을 '잃어버린 자를 찾아낼 때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며, 기꺼이 자신의 어깨를 내어주시는 참된 목자'로 선포합니다.

 

중동 문화의 권위자인 신학자 케네스 베일리(Kenneth Bailey)는 이 비유의 핵심이 '목자가 감당하는 엄청난 비용'에 있다고 설명합니다.

목자는 양이 매여 있는 가시덤불을 맨손으로 헤쳐야 했고, 무거운 양을 홀로 어깨에 메고 험한 산길을 내려와야 했으며, 이웃을 위한 잔치 비용까지 모두 홀로 감당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하고 똑바로 살면 그때 구원해 주겠다고 기다리시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죄악의 가시덤불에 찢긴 우리를 위해 친히 가시관을 쓰셨고, 우리의 죄악이라는 무거운 짐을 당신의 어깨(십자가)에 온전히 짊어지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방식은 합리적인 계산이 아닙니다.

아들의 목숨을 잔치 비용으로 기꺼이 지불해 버리시는, 압도적이고 눈먼 사랑입니다.

03. '회개할 것 없는 의인 99'에 숨겨진 서늘한 풍자

 

 

반면 성경이 고발하는 우리의 뼈아픈 모습은 '하나님의 은혜를 내가 이룩한 율법적 성취로 착각하는 바리새인의 교만'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결론부에서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에 회개할 필요가 없는 완벽한 의인이 정말 99명이나 있을까요?

 

결코 아닙니다.

 

이것은 자신이 율법을 잘 지켰기에 잃어버린 양(죄인)들과는 수준이 다르다고 착각하던 바리새인들을 향한 예수님의 아주 예리하고 서늘한 반어법(풍자)입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종종 이 '거짓된 99마리'의 자리에 앉으려 합니다.

내 신앙적 헌신과 봉사의 이력서를 자랑하며, 아직 다듬어지지 않고 방황하는 누군가(잃은 양)를 정죄하거나 무시합니다.

 

"하나님, 저렇게 쓸모없는 1마리에게 낭비하지 마시고, 헌금 잘하고 예배 잘 드리는 우리 99마리에게 집중해 주십시오"라고 요구하는 지독한 종교적 기득권.

내가 누리는 구원이 나의 노력 때문이라고 착각하는 이 무서운 위선이 복음의 생명력을 가로막습니다.

04. '아폴롤로스', 내 발로 걷는 종교에서 목자의 어깨에 실려 가는 생명으로

 

잃은 양의 상태를 원어로 묵상해 보면, 우리가 받은 은혜가 전적인 하나님의 작품임을 알게 됩니다.

 

잃은 (아폴롤로스, πολωλός - 4):

단순히 길을 잃고 헤매는 정도가 아닙니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단 한 발자국도 목자에게 돌아갈 수 없는 완전한 파산, '죽어가고 있는' 상태를 뜻합니다.

 

개혁주의신학에서는 이것을 전적 타락과 전적 은혜로 설명합니다.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진리를 깨닫고 뚜벅뚜벅 교회로 걸어 들어온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아폴롤로스, 죽어가던 자들입니다.

구원은 잃은 양이 길을 찾은 것이 아니라, 목자가 끝까지 추적하여 그 양을 들어 올려 자기 어깨(에피티데신)에 메고 오는 사건입니다.

나의 의지나 공로가 1%도 섞이지 않은 절대적인 은혜, 이 사실을 인정할 때 우리의 교만은 무너지고 진짜 생명력 있는 감사와 찬양이 터져 나옵니다.

 

05. 결론

 

여러분.

오늘 당신은 내가 잘나서 구원받았다고 착각하는 99마리의 무리에 서 계십니까, 아니면 나의 무력함을 인정하고 목자의 어깨에 매달린 1마리의 양이십니까?

 

사순절 24일차, 목자의 낭비하는 사랑을 우리 삶에 녹여내기 위해 수직적인 하나님 사랑과 수평적인 이웃 사랑의 두 가지 십자가를 실천해 보길 원합니다.

 

1. 내 발로 걷기를 포기하고 주님 어깨에 힘 빼기:

오늘 삶의 무거운 문제를 내 힘으로 해결하려다 지칠 때, 아등바등하던 내 발걸음을 멈추십시오.

그리고 기도하십시오.

"주님, 내 힘으로 구원을 이루려는 99마리의 교만을 버립니다. 나는 스스로 걸을 수 없는 '아폴롤로스(잃은 양)'입니다.

오늘 하루도 오직 주님의 어깨에 실려 가는 은혜만을 의지합니다."

 

2. '계산 없는 환대'로 이웃에게 다가가기

오늘 직장이나 가정, 혹은 교회에서 내 기준에 미치지 못하거나 '비효율적'이라고 무시했던 한 사람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리고 목자가 쓸모없는 양을 위해 잔치를 열었듯, 오늘 그 사람에게 따뜻한 커피 한 잔이나 진심 어린 격려의 문자를 보내며 조건 없는 작은 환대를 실천해 보십시오.

 

신앙은 내가 99마리의 의인임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자격 없는 나를 위해 목숨을 낭비하신 그 십자가의 사랑을 나도 누군가에게 기꺼이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P.S. 킹덤빌더즈: 잃어버린 자들을 위한 목자의 잔치

내 자격을 증명하느라 지치셨다면, 세상의 효율성을 비웃고 당신 하나를 위해 천국 잔치를 여시는 목자의 품으로 오십시오.

유튜브 채널 '킹덤빌더즈' 매일 밤 11 30, 아무 자격 없는 자를 어깨에 메고 가시는 그 압도적인 사랑의 잔치로 초대합니다!

 

킹덤빌더즈 바로가기

 

목자가 잃은 양을 찾아 기뻐하는 비유는, 잃어버린 동전을 찾는 여인의 비유를 지나, 복음서 전체에서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이야기인 '탕자의 비유'로 절정을 맞이합니다.

돼지 쥐엄 열매를 먹던 탕자가 돌아올 때, 체면을 버리고 맨발로 달려나가 아들을 끌어안는 아버지의 찢어지는 사랑이 우리를 기다립니다.

 

다음 시간, [사순절 묵상 25일차] 탕자의 귀향 | 체면을 버리고 맨발로 달려오신 아빠 아버지 ( 15:20-24) 편에서 계속됩니다.

 

킹덤빌더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