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로마서 9장 14-29절) 묵상 | 토기장이와 진흙 비유 (진노의 그릇과 긍휼의 그릇)

킹덤빌더 2026. 1. 13.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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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불공평하신가?" 

우리의 항변에 바울은 토기장이 비유로 답합니다. 

진흙이 주인을 심문할 수 없듯, 피조물은 창조주의 주권을 판단할 수 없습니다. 

마땅히 깨질 진노의 그릇이었던 우리를 긍휼의 그릇으로 빚으신 은혜를 묵상합니다.

 

 

 

로마서 9장 전반부를 읽고 나면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무슨 짓을 하기도 전에 내 운명을 결정하셨다고?" 

현대인들은 '공정'과 '상식'을 중요하게 여기기에, 하나님의 이런 '선택'을 불공평하다고 느낍니다.

바울도 이 반발을 예상했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14절)

우리는 자꾸 하나님을 내 도덕 수준으로 끌어내려 재판하려 합니다. 

 

"내가 보기에 이건 옳지 않아요." 

 

이것이 바로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의 교만, 즉 '내가 재판장이 되어 나를 보호하려는 본능'입니다.

바울은 이 교만함을 깨뜨리기 위해 가장 원초적인 관계를 소환합니다.

 

01. 성경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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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
로마서 제 9 장

하나님의 진노와 긍휼
19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 하리니
20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22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23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24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25   호세아의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26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27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
28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고 속히 시행하시리라 하셨느니라
29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02. 달리기 실력이 아니라 '긍휼'입니다

 

바울의 대답은 단호합니다. 

 

"그럴 수 없느니라." 

 

그리고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구원의 원리를 바로잡습니다.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16절)

우리는 구원을 '달리기 시합'이라고 착각합니다.

 

"내가 열심히 달렸으니(노력/선행), 상(구원)을 주셔야죠. 안 주면 불공평하죠."

하지만 구원은 시합이 아닙니다. 

 

'구조 활동'입니다.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을 건져내는 것은 그의 수영 실력 때문이 아닙니다.

구조대원(하나님)의 '긍휼' 때문입니다.

모두가 죄로 인해 죽어 마땅한 상황에서, 누군가를 건져주신 것은 '불공평'이 아니라 '압도적인 은혜'입니다.

 

03. '바로'의 완악함

 

바울은 출애굽기 때의 '바로 왕'을 예로 듭니다. 

 

"하나님이 바로를 억지로 나쁜 놈으로 만드신 거 아니냐?"라고 묻지만, 사실은 다릅니다. 

 

바로는 스스로 하나님을 거부하고 자기보호(완악함)를 선택한 자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막지 않고 '내버려 두심(유기)'으로써, 하나님의 능력을 온 세상에 알리는 도구로 사용하셨을 뿐입니다. (17절)

하나님의 주권은 죄 없는 사람을 죄인 만드는 폭력이 아닙니다. 

죄인들이 자기 길을 가도록 내버려 두기도 하시고, 그중 누군가를 건져내기도 하시는 '주인의 고유 권한'입니다.

 

04. 토기장이와 진흙 

 

그래도 억울해하는 인간에게 바울은 결정적인 비유를 듭니다.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20절)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꽃병)'을 만들고, 하나는 '천히 쓸 그릇(요강)'을 만들 권한이 없습니까?

있습니다.

그것은 주인의 마음입니다.

진흙(인간)의 입장에서 가장 큰 죄는 무엇입니까? 

자신이 진흙임을 망각하고, 토기장이(창조주)를 향해 "당신 틀렸어!"라고 따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분리(죄)되었다는 증거는, 우리가 자꾸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서 맞먹으려 한다는 점입니다.

05. 진노의 그릇 vs 긍휼의 그릇

 

이 비유의 결론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듭니다. 

원래 우리는 모두 죄로 인해 깨져버릴 '진노의 그릇'이었습니다. (22절)

스스로 하나님을 떠나 멸망을 향해 달려가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중 얼마를 택하사 영광을 담는 '긍휼의 그릇'으로 삼으셨습니다. (23절)

이것이 기적입니다.

우리가 따져야 할 질문은 "왜 저 사람은 버렸습니까?(불공평)"가 아닙니다.

"왜 나 같은 진노의 그릇을 깨뜨리지 않고, 긍휼의 그릇으로 빚으셨습니까?(은혜)"여야 합니다.

 

06. 결론

 

로마서 9장은 하나님의 독재를 말하는 장이 아닙니다. 

우리의 구원이 나의 노력(달음박질)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긍휼에 달려있음을 선포하는 장입니다.

첫째, 하나님을 심판하지 마십시오. 

내 작은 머리로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이 틀린 게 아닙니다. 

"내가 누구이기에 감히..."라는 피조물의 겸손을 회복하십시오. 

자기보호의 교만을 내려놓을 때 은혜가 보입니다.

둘째, 긍휼 입은 자로 감사하십시오. 

나는 깨져 마땅한 그릇이었습니다. 

그런 나를 예수의 피로 덮어 귀한 그릇으로 삼아주셨습니다. 

"왜 하필 나입니까?"라는 질문이 불만이 아니라, 감격의 눈물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럼 하나님이 다 정해놓으셨으니, 인간은 아무 책임이 없습니까?" 아닙니다. 

바울은 이제 시선을 돌려 인간의 '책임'을 묻습니다.

하나님은 긍휼을 베푸셨지만,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의'를 세우려고 하나님의 의를 거부했습니다.

 

믿음으로 얻는 의 vs 행위로 얻는 의.

다음 이야기, "그들이 넘어진 이유 : 열심은 있었으나 지식은 없었다 (로마서 9장 30절 - 10장 4절)"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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