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4장 묵상] 불신자가 보기에 우리의 예배는 미친 것 같지 않나요?

처음 교회에 온 새가족 옆에 앉아, 나 홀로 눈물을 흘리며 알 수 없는 방언으로 뜨겁게 기도해 본 적 있으신가요?
나는 깊은 은혜를 받았다고 만족할지 모르지만, 옆에 있는 새가족은 두려움과 소외감을 느끼며 다신 교회에 오지 않겠다고 다짐했을지도 모릅니다.
이웃의 영혼에는 관심 없이, 오직 내 영적 카타르시스만 채우려 하는 이기적인 예배자의 민낯을 고린도전서 14장을 통해 정직하게 직면해 봅니다.
목차
교회에 갓 등록한 친구를 예배에 초대해 놓고, 정작 예배가 시작되자 나 혼자 감정에 취해 찬양하고 부르짖느라 친구를 완전히 방치한 적은 없으신가요?
친구는 예배 내내 무슨 말인지 몰라 뻘쭘하게 앉아 있는데, 예배가 끝난 후 나는 "오늘 은혜가 참 넘치지 않았니?"라며 엉뚱한 소리를 합니다.
우리는 예배를 '하나님과 공동체를 향한 섬김'이 아니라, 일주일간 쌓인 내 스트레스를 풀고 영적 쾌감을 얻는 '종교적 소비재'로 여깁니다.
타인의 구원과 유익에는 철저히 무감각한 채, 내 종교적 만족이라는 우상에만 빠져 있는 지독한 이기심이 바로 우리의 찌질한 모습입니다.
01. 성경본문
고린도전서 14장
13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14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15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16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알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
17 너는 감사를 잘하였으나 그러나 다른 사람은 덕 세움을 받지 못하리라
18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9 그러나 교회에서 내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20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
21 율법에 기록된 바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방언을 말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이 여전히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22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라
23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알지 못하는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24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알지 못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25 그 마음의 숨은 일들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신다 전파하리라
02. 이교도 신전의 광란을 교회로 끌고 온 사람들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알지 못하는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고린도전서 14:23)
1세기 고린도 사회에는 밀의 종교(Mystery Religions)라 불리는 이교도 제의가 유행했습니다.
사람들은 신전에 모여 이성을 잃고 광란(마니아, μανία) 상태에 빠져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뱉는 것을 신과 하나 된 최고의 증거로 여겼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교만한 성도들은 이 세속적인 관습을 교회에 그대로 들여왔습니다.
그들은 공적인 예배 시간에도 통역 없이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을 쏟아내며, "우리가 이렇게 신령한 영적 엘리트 집단이다"라며 자기들만의 배타적인 클럽을 만들었습니다.
고린도전서 강해로 유명한 신학자 D.A. 카슨은 이를 두고 "고린도 교인들은 성령의 은사를 형제를 섬기는 도구가 아니라, 자신의 영적 지위를 과시하는 장난감으로 전락시켰다"고 꼬집었습니다.
만약 불신자가 예배에 들어왔을 때 이 무질서한 모습을 본다면, 그들은 복음을 듣기는커녕 "너희가 미쳤다!"며 돌아서고 말 것입니다. 거룩한 예배마저 내 영적 쾌락과 우월감을 위해 변질시키는 것, 그것이 타락한 인간의 본성입니다.
03. 죄인을 엎드리게 하시는 질서와 계시의 하나님

"그 마음의 숨은 일들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신다 전파하리라" (고린도전서 14:25)
하나님은 우리가 황홀경에 빠져 이성을 잃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우리가 맑은 정신으로(이성으로) 알아들을 수 있는 말씀, 즉 예언(프로페테이아, προφητεία)을 통해 그분의 뜻을 깨닫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의 궁극적인 목적은 믿지 않는 자가 말씀을 알아듣고, 죄를 깨달아(엘렝코, ἐλέγχω) 하나님 앞에 엎드리게 하는 것입니다.
팀 켈러 목사님은 '복음 전도적 예배'를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예배 안에서 서로를 진실하게 사랑하고 알아듣기 쉬운 복음의 언어로 찬양할 때, 불신자들은 그 예배의 신비와 질서 속에서 '하나님이 참으로 이곳에 계신다'고 고백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끼리만 아는 암호로 소통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이방인도 알아듣고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당신을 계시하시고 초대하시는 은혜의 아버지이십니다.
04. 알아들을 수 있는 육신이 되신 성육신의 신비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알지 못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고린도전서 14:24)
불신자가 말씀을 듣고 엎드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신다"고 고백하는 이 본문의 장면은, 구약 이사야 45장 14절("하나님이 과연 네게 계시고")과 스가랴 8장 23절에서 이방인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인정하며 나아올 것이라는 영광스러운 종말론적 예언이 성취되는 모습입니다.
이 놀라운 구속사의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통해 완벽하게 완성되었습니다.
영원하신 말씀(로고스)이신 하나님은, 우리가 도무지 닿을 수 없는 하늘의 신비로운 암호로 남아있지 않으셨습니다.
존 칼빈의 표현처럼, 하나님은 마치 말을 배우는 어린아이에게 맞춰 혀를 짧게 내어 말씀하시는 유모처럼 기꺼이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일상과 고통 속으로 들어오셔서, 우리가 가장 알아듣기 쉬운 '인간의 몸과 십자가의 피'라는 언어로 하나님의 사랑을 번역해 주셨습니다.
자신의 영광을 숨기고 우리 눈높이로 내려오신 예수님의 성육신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예언입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깊이 맛본 자는 나만의 영적 쾌락에 빠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이 그러하셨듯, 아직 복음을 모르는 이웃이 알아들을 수 있는 가장 친절하고 따뜻한 언어로 내 삶을 번역하여 흘려보내는 참된 예배자가 됩니다.
05. 결론

우리의 예배는 나만의 영적 스트레스를 푸는 감정의 배출구가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친히 알아들을 수 있는 육신이 되어 우리에게 찾아오신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아직 믿지 않는 이웃이 복음을 알아듣고 엎드릴 수 있도록 기꺼이 나의 편안함을 양보하는 자리입니다. 우리 함께 조금 더 예수님 닮아가기 위해 일상에서 실천해 봅시다.
- 하나님을 향한 고백: 오늘 하루, 공동체의 유익이나 불신자의 영혼에는 관심 없이 내 영적 쾌락과 만족만을 좇았던 종교적 이기심을 십자가 앞에 내어놓읍시다. "주님, 나 홀로 은혜받았다고 착각하며 이웃을 배척했던 찌질한 교만을 용서하소서. 나를 위해 기꺼이 인간의 몸을 입으신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내 이기적인 예배를 고쳐 주옵소서."
- 이웃을 향한 실천: 이번 주일 예배나 일상에서, 교회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새가족, 혹은 아직 믿지 않는 지인)의 '번역기'가 되어 주십시오. 예배 중 성경을 못 찾아 헤매는 분에게 조용히 성경을 펴서 건네주거나, 직장에서 믿지 않는 동료에게 종교적인 어려운 단어를 빼고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일상의 언어로 따뜻한 위로와 친절을 베풀어 보십시오. 내 영적 우월감을 내려놓고 눈높이를 맞추는 그 친절함이, 불신자를 하나님께 엎드리게 하는 위대한 예배입니다.
"교회에 갔는데 다들 자기들만의 세상에 빠져 있는 것 같아 소외감이 들었어요."
혹시 알아듣지 못하는 신앙의 언어들 틈에서 외로움을 느껴본 적 있으신가요?
얇고 가느다란 팔다리로 무거운 왕관을 쓴 킹덤빌더 친구를 보십시오.
주님은 하늘의 높고 어려운 언어로 당신을 억누르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 얇고 투박한 팔로 당신의 눈높이까지 내려와, 가장 따뜻한 일상의 언어로 당신의 상처를 안아주십니다.
유튜브 채널 '킹덤빌더즈' 오늘 밤 11시 30분, 배타적인 클럽이 아니라 모두를 환대하는 십자가의 너른 품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